마도로스의 첫 항해
할머니의 점괘는 서슬 퍼런 작두날 같았다. "물가를 멀리하라"는 그 한마디는 평생 나를 가둬둘 창살이 될 법도 했지만, 내 가슴속엔 이미 고향 변산면 대항리의 붉은 낙조가 심어놓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갈망이 들끓고 있었다. 결국 나는 할머니의 금기를 기필코 어겼다. 변산에서 가까운 해양과학대학 기관공학과에 입학, 기름 냄새와 엔진소리를 견디며 승선실습을 마치고 해기사 3급 기관사 면허를 취득했고, 마침내 졸업장과 함께 꿈에 그리던 먼바다로의 티켓을 손에 쥐었다.
바다는 넓고 배의 세계는 그보다 더 깊었다. 배는 운항 구역에 따라 연해, 근해, 원양으로 나뉘고, 그 목적에 따라 어선과 상선, 군함과 여객선으로 제각각의 운명을 지닌다. 어선만 해도 참치, 명태, 오징어 등 어종에 따라 수십 종이며, 헬리콥터를 싣고 어군을 찾는 선망 어선부터 낚시 하나에 생을 거는 채낚기 어선까지 그 모습이 천차만별이다. 내가 몸담은 화물선 역시 컨테이너, 유조선, LNG선 등으로 나뉘어 대양 위에 수십만 척이 떠다니니, 바다는 그야말로 또 하나의 거대한 인류 문명이었다.
선박의 심장을 움직이는 것은 크게 두 부류다. 배의 길을 묻는 '항해사'와 심장을 돌보는 '기관사'. 항해사는 선장이 되고 기관사는 기관장이 된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기관사가 선장이 될 수 없고, 항해사가 기관장이 될 수 없는 이 엄격한 위계는 바다 위에서 각자의 전문성을 지키는 불문율이다.
나는 거대한 컨테이너 운반선의 **3등 기관사(3rd Engineer)**로 첫 승선을 했다. 항로는 부산을 기점으로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 필리핀, 일본을 거쳐 다시 돌아오는 장정이었다. 부산항을 떠나 주야로 일주일, 첫 기항지인 싱가포르를 향해 배는 속도를 냈다. 제주도를 지나 동중국해에 접어들자 바다는 본색을 드러냈다.
집채만 한 파도가 배를 뒤흔들었다. 식탁 위 컵과 밥그릇은 제 마음대로 춤을 췄고, 배는 비포장 산악도로를 달리는 트럭처럼 덜컹거리며 요동쳤다. 난생처음 겪는 지독한 멀미가 오장육부를 뒤틀어 놓았다. 그렇게 사흘을 앓고 나서야 비로소 멀미가 잦아들고 바다의 평온함이 눈에 들어왔다.
어릴 적 채석강에서 그토록 궁금해했던 수평선 너머의 세계. 그곳엔 오직 수평선과 이따금 마주치는 먼 외항 선뿐이었다. 호기심은 풀렸으나 이제 이것은 내 직업이자 치열한 삶의 현장이었다. 갑판 위에 잠시 쉬어가는 제비 떼와 먼 길을 떠나는 기러기를 보며 나는 대자연의 질서 속에 내가 들어와 있음을 실감했다.
적도에 가까워지자 바다는 마치 거울처럼 매끄러워졌다. 태풍도 파도도 없는 고요한 청정의 구역.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과 검푸른 바다가 만나는 그곳에선 매일 장엄한 일출과 일몰이 반복됐다. 밤이 되면 오직 별자리만이 동서남북을 알려주었고, 고요한 어둠 속에서 들리는 것은 우리 배의 육중한 엔진이 내뿜는 '쿵더쿵'거리는 심장소리뿐이었다.
운이 좋은 날엔 대자연이 선물하는 수중 발레를 감상하기도 했다. 분수처럼 물을 뿜는 밍크고래와 뱃머리를 따라 군인처럼 일사불란하게 춤추는 돌고래 떼. 초음파로 대화하며 어선과 상선을 구별할 만큼 영리한 돌고래들은 인간의 어구를 비웃듯 파도를 갈랐다. 그 활기찬 생명력을 보노라면 바다는 한없이 아름다운 낙원 같았다.
그러나 바다는 고래가 춤추는 낭만만을 허락하지 않는다. 산더미 같은 파도가 배를 삼키려 들 때도 있고, 특정 항로에선 칼을 든 해적들이 어둠 속에서 나타나기도 한다. 폐쇄된 공간에서 반복되는 일과는 선원들의 정신을 갉아먹어 때론 선상 난동이라는 비극을 낳기도 한다. 그래서 선장은 자연의 노여움뿐만 아니라 인간의 마음속 파도까지 다스려야 하는 고독한 통치자여야 한다.
나는 엔진 소리를 들으며 다시금 새겼다. 거대한 자연 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겸손하게 그 순리에 따르는 것뿐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