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화 촌각을 다투는 강철의 병원

하얼빈에서 온 구원투수

by최경열

선박 수리는 자동차 정비와는 차원이 다른 '거대 공정'이다. 자동차가 동네 공업사에서 몇 시간이면 검사 합격증을 받아 나오지만, 수만 톤급 선박은 그렇지 않다. 바다 위를 떠다니는 거대한 공장이나 다름없는 배를 플로팅 도크(Floating Dock) 위로 끌어올리는 순간, 수백 명의 기술자가 달려드는 '강철과의 전쟁'이 시작된다.


2주간의 사투, 신부의 단장

도크 위로 배가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면, 가장 먼저 선체에 다닥다닥 붙은 해초와 따개비들을 고압수와 쇼트 브라스팅(모래알을 초고속으로 쏘는 작업)으로 사정없이 긁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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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 프로세스는 정교하고도 방대하다.

10톤이 넘는 거대한 프로펠러를 탈거해 밸런스를 잡고, 거울처럼 반짝이게 폴리싱(광택)을 한다.

프로펠러 샤프트 베어링 계측을 한다

주기관(main engine)은 피스톤을 들어 올리는 오버홀(Overhaul) 작업을 거쳐 부품별로 정밀 검사하고,

누설되는 파이프도 수리하고 교체한다.

발전기와 모터 같은 전기 제품들은 절연 저항(Mega)을 측정한다. 측정치에 미달하면 교환 및 수리를 해야 한다

외판 및 밸브는 바닷물과 직접 맞닿는 씨 밸브(Sea Valve)를 뜯어내 교체하거나 래핑 하고, 부식된 철판 두께를 측정해 기준치 이하면 가차 없이 새 철판으로 갈아 끼운다.

이 모든 과정을 마친 배는 마치 시집가는 신부처럼 깨끗하게 페인트를 칠하고 웅장한 위용을 되찾는다. 하지만 이 과정은 낭만과는 거리가 멀다. 선주 입장에서는 배가 서 있는 하루하루가 막대한 손해다. 수리 기한을 단 몇 시간이라도 넘기면 화물 운송 스케줄이 꼬이고 어마어마한 페널티를 물어야 한다. 그야말로 '촌각을 다투는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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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장벽, 1995년의 고충

문제는 이곳이 한국이 아닌 중국이라는 점이었다. 작업자는 중국인, 관리자는 한국인, 선주는 영어를 쓰는 외국인. 단순 노동이라면 눈치껏 하겠지만, 정밀한 선박 용어와 조선 전문 용어들이 오가는 현장에서 "말이 안 통한다"는 것은 곧 대형 사고나 공기 지연으로 이어졌다.

1995년 당시, 한국 대학의 중국어과 졸업생은 드믈었고 인재도 귀했다. 기업 입장에서 고급 인력을 현장 통역으로만 쓰기엔 한계가 있었다. 그때 우리의 눈에 들어온 구원투수가 바로 '조선족'이었다.

중국 실정에 밝고 우리말도 능통한 조선족 인재들은 조선소의 혈관을 뚫어줄 최고의 적임자였다. 우리는 대련과 동북 3성을 샅샅이 뒤졌다. 그중에서도 하얼빈 쪽 인재들이 발군이라는 소문이 들렸다. 북경어(보통말) 구사가 완벽하고, 우리말 역시 북한 말투가 섞이지 않은 표준어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하얼빈에는 중국 최고의 명문 공대이자 조선·해양 전문성을 갖춘 '하얼빈 공정대학'이 있었다. 조선 및 해양대학은 바닷가에 위치하지만 하얼빈 공정대학은 바다가 없는 내륙에 있는 것도 이해를 못 했다.


프로펠러 비행기, 그리고 하얼빈의 봄

우리는 하얼빈에서 인재를 수급하기로 결단을 내렸다. 다행히 지인을 통해 하얼빈 공정대학의 조선족 교수인 김병철 교수님을 소개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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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3월, 남통의 들판에는 유채꽃이 막 꽃망울을 터트리며 따스한 봄기운이 차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향하는 북쪽 땅 하얼빈은 아직 동장군이 기세를 떨치고 있을 터였다. 남통에는 직항로가 없어 상해 홍차오 공항으로 이동해 하얼빈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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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정말 날 수 있을까?"

내 눈을 의심했다. 활주로에 대기 중인 비행기는 마치 제2차 세계대전 영화에서나 본 듯한 구식이었다. 비행기 코앞에서 거대한 프로펠러가 돌고 있고, 양옆 날개에서도 요란한 소리를 내며 프로펠러가 회전하고 있었다. 3시간의 비행 동안 작은 기압 차에도 비행기는 마치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트럭처럼 덜컹거렸다. 식은땀을 쥐며 도착한 하얼빈 공항.

나는 차가운 북풍을 뚫고 약속 장소인 호텔 로비로 향했다. 그곳에서 김병철 교수님과 조선소의 미래를 바카라임질 인재들을 만나기 위한 운명적인 면접이 기다리고 있었다. 배를 타는 마도로스에서 조선소를 짓는 기술자로, 이제는 사람을 찾는 리크루터로 변신한 나의 또 다른 도전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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