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슴 반, 사람 반!

나라(奈良)에서 보낸 하루

by김별

얼마 전 두 나라 정상이 만나며 화제가 된 곳,

8세기에 지어진 일본 최초의 계획도시,

천년 고도 교토의 남쪽이라 '남도'라 불리던 곳

1,300년의 역사 유적 사이로

1,300마리 야생 사슴이 제 세상인 듯 뛰노네

고개 숙여 인사하는 모습은 귀엽지만

센베이 과자 얻어먹고

배설물도 자유롭게 투하하니

길바닥은 어느새

천연 지뢰밭


사찰 안까지 따라 들어오는 사슴들 덕분에

사람 구경인지

사슴 구경인지

정신이 없다

동대사(도다이지)

이름 값하며 거대한 대불전.

입구부터

"아~ 크다"가 터져 나온다

16미터 청동 대불은

말없이 앉았는데도 압도적

뒤편 액운을 쫓는 기둥 구멍으로

들어가려는 사람들의 긴 줄

어쩌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건 마음먹기에 달렸으니

나는 쿨하게

패스~!




아들이 눈독 들이던 흑모와규 규마부시,

검은 털 소고기 장어덮밥 방식으로 즐기는 별미란다.

한 점 먹고

"오..."

두 점 먹고

"음..."

간장에 조려낸 보드라운 고기 한 점

살살 녹는 맛이 과연 일품이로구나


미식이 빠진 여행은 앙꼬 없는 찐빵이지

달콤하게 배를 채우고

다시 뚜벅이 여행길 나선다


외국인에겐 공짜라는 요시키엔 정원,

여권을 야무지게 챙겼건만

우리끼리 한국말 듣더니

확인도 안 한다.

자동 입장 완료

고즈넉한 일본식 정원은

자연을 축소해 툇마루 앞에 툭 던져놓으니

연못은 하늘을 담고

툇마루는 쉼을 담고

이끼정원은 초록 융단을 깔아놓았다


고풍스러운 다실 앞에 앉으니,

차를 마시지 않아도

바람 한 잔,

그늘 한 잔이면 충분하다

볼 수록 일본 정원은 신기하다

자연을 줄여놓았는데

내 마음은 더 넓어진다


일본 화엄종 사찰 동대사
엄청난 불상을 모신 동대사 대불전


사슴 반 사람 반


사슴이 도로 무단횡단 마치 인도의 소처럼 걸어다닌다




금 도금이라는데....



요시키엔 정원 휴식




나라마치 산바카라.

에도와 메이지 시대가

골목에 아직 살고 있다

격자창 너머 카페,

작은 공방,

오래된 잡화점 힐끔거리며 걷다

말차 한 잔 하려 했더니

생각보다 빨리 문을 닫는다

결국

골목 탐험 시작.

한참 헤매다 발견한 찻집

주인장의 "어서 오세요"가

그날의 가장 반가운 일본어


다시 오사카.

하루의 끝은

언제나 기대하는 저녁 메뉴

숙소 근처 야요이켄에서

고등어 소금구이 정식 주문


정갈한 밥상에

흰쌀밥은 무한 리필

맞은편 청년은

한 그릇,

두 그릇,

세 그릇.


일본 어디서나 만나는 다정한 체인점 야요이켄

가성비 최고라는 일본 가정식 백반집이다

비린내 없이 담백한 고등어 한 점에

문득 생각한다.

"아, 여긴 일본이지."


사슴도 많고

절도 크고

밥도 맛있는 나라의 하루가

그렇게 저물어 갔다


나라마치 산바카라


말차 찻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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