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보기 아까운 육아의 순간을 나눠요. 이.맛.육#16
바닥을 보고 걷는 사람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무슨 심각한 걱정이 있나? 조심성이 많은 사람인가? 휴대폰을 보고 걷고 있나?'
직관적으로 머리 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은 대게 긍정적인 방향은 아닌 경우가 태반이겠지만, 기회가 된다면 나는 오늘 만나는 모든 지인들에게 한번쯤 바닥을 보고 걸어보라는 말을 건네고 싶다.
그게 출근길이든. 퇴근길이든. 그냥 마음이 내키는대로 처음걸어보는 초행길 어디든.
여느때처럼 하원을 하고 아이들과 집으로 향하던 때였다.
이미 집까지 데려오는 길에 봄의 끝자락을 따라 시들해진 진달래 잎도 색깔별로 주워다가 한참을 관찰했고, 머리가 하얗게 새버린 민들레도 한송이씩 꺾어들어 힘껏 불어보기도 했겠다. 공동현관문에 이르기까지의 길에는 더이상 새로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저만치 멀어진 똘군의 뒷모습을 눈으로 쫓던 똘양이 말했다.
"엄마, 보세요! 우리가 보석 길을 걷고있어요. 반짝반짝 빛나는거 보여요?"
매일 걷는, 그래서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아스팔트 벽돌길 위로 지고있는 햇빛이 내리쬐면서 반짝반짝 빛이 나고 있었다. 정말 보석같은 길이었다. 정말이지 특별한 일이 하나도 없었던 오후 5시경 나의 하루는 그 말 하나로 뭔가 반짝여지는 것만 같았다.
우리는 '당신의 앞날에 행운이 가득하길 바란다'는 뜻으로 '꽃길만 걸으세요'라는 말을 무심코 쓰는데 생각해보면 우리가 매일 걷는 길에 꽃잎이 휘날려도, 비 내린뒤 생긴 웅덩이에 하늘이 투명하게 비쳐도, 목적지까지 가는데 급급해 딱히 길을 걸으며 감상에 젖지는 않는 것 같다. (기껏한다는 감상이래봐야 '앗, 똥밟았네!' 정도가 아닐까)
그 사람이 자주하는 말, 그 사람이 자주짓는 표정이 그 사람의 삶을 결정한다는 유명한 말처럼 어쩌면 우리가 매일 걷고 있는 길도 우리 삶을 특정한 방향으로 이끌어주고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매일 걷는 길에서 반짝임을 찾는 사람의 삶은 목적지에 도달하지 않은 순간에도 반짝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이가 던진 말로 시작된 생각이지만 그렇게 생각하니 아직도 어디로 가야할지 갈피를 못잡고 있는 나의 갑갑한 일상이 해가 들면서 화사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쌍둥이들의 이름을 지을 때 우리는 '보배'라는 뜻을 가진 한자어를 하나씩 넣어주면서 아이들이 자기 안에서 보석을 찾는 삶을 살기를 바랬다. 지금도 가끔 아이들의 특정 모습을 보면서 '이러다 자존감이 낮은 아이가 되면 어쩌지' 같은 걱정을 마음 속에서 키워나가고 있었는데, 그 걱정이 무색하게도 아이들 마음의 보석은 이미 조금씩 싹을 틔우고 있었다.
아이들의 일상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아이들은 이미 자기만의 방식으로 삶의 보석을 찾고 있으니 말이다. 이제 그렇게 찾아낸 보석의 반짝임에 감탄할 수 있는 엄마의 마음만 오래도록 간직해주면 될 일인것 같다.
PS. 오늘의 반짝임에 대해 AI와 나눈 대화.
이 글을 읽는 당신의 하루 어느순간에도 우연히 '찬란한 햇빛'과 '우연히 아래를 내려다본 당신의 눈'과 '평범한 길'이 마주쳐 눈부신 반짝임을 내길 바래본다.
26.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