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력이 신생아 머리카락 높이만큼 떨어졌다.
의사 선생님은 안경을 꼭 쓰고 다니라고 했지만, 요즘처럼 더운 날 안경을 쓰면 안경과 얼굴 사이로 땀이 흐른다. 기저귀를 찬 것처럼 불쾌하다. 그래서 그냥 눈뜬장님으로 다니고 있다.
얼마 전 출근을 하려고 온라인 게임 건물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 옆에는 택배 상자가 산처럼 쌓인 수레와 함께 기사님도 서 계셨다.
잠시의 기다림 끝에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기사님이 수레와 함께 안쪽으로 먼저 들어가 12층을 눌렀고, 나는 3층을 눌렀다. 문이 닫히려던 순간이었다.
“잠시만요!”
멀리서 다급한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엘리베이터를 향해 뛰어오고 있는 모양이었다.
12층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1층으로 내려오려면 꽤 오래 걸린다. 이 엘리베이터를 놓치면 아침부터 얼마나 짜증이 날까. 나는 망설이지 않고 열림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열림 버튼을 눌렀는데도 문이 계속 닫히려고 했다.
어?
나는 버튼을 더 세게 눌렀다.
문은 스르르 닫히고 있었다. 건물이 오래돼서 버튼이 잘 안 먹히나 싶어 여러 번 눌렀다.
탁-타탁—
문은 야속하게도 계속 닫히고 있었다.
“어? 잠시만-요!”
목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나는 더욱 필사적으로 버튼을 눌렀다. 저 여자분을 살려야 한다는 오지랖에 오락실 게임기에서 장풍을 쏘는 캐릭터처럼 버튼을 연신 버튼을 눌러댔다.
다다다 다다-다.
열려라. 열리라고. 사람 온다고.
문틈 사이로 뛰어오는 여자가 보였다.
나는 버튼을 더 빠르게 눌렀다.
다다다다다다 다다.
다행히 여자는 문이 완전히 닫히기 직전, 스스로 바깥 버튼을 눌러 가까스로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손을 뗐다.
여자는 숨을 고르며 7층을 눌렀다. 그리고 내가 방금까지 미친 듯이 누르고 있던 버튼을 눌렀다. 나는 그 여자를 태웠다는 안도감에 무심히 그 버튼을 봤다.
닫힘.
아까부터 목탁 치듯 두드린 건 열림 버튼이 아니라 닫힘 버튼이었다. 애원하듯 뛰어오는 사람을 빤히 바라보면서 문을 닫아버린 셈이다.
아 ㅆ발
손가락에 귀신이 씌었었나.
그제야 뒤에 서 있던 택배기사님이 생각났다.
기사님은 처음부터 모든 걸 보고 있었다.
“잠시만요!”라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닫힘 버튼을 누르는 나를.
사람이 뛰어오는 걸 보면서도 계속 누르는 나를.
문이 닫힐수록 더 필사적으로 누르는 나를.
다다다 다다-다.
택배기사님은 생각했겠지.
와, 이 년 인성 보소.
내가 필요한 건 안경이 아니라
인성인가 보다.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