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국에서 설레면 안 되는 이유

by김분주


나이가 들수록 몸이 여기저기서 쾌속노화 신호를 보낸다. 덕분에 집에는 비상약이 점점 영양제 만큼이나 늘어났다. 겨우 한살 늙은건데, 30대에서 40대가 되니, 한살이 아니라 열살이 늙은 기분이다.


최근에 긁힌 상처들이 늘어나 연고를 선크림 바르듯 낭비하다 보니 똑 떨어졌다. 때마침, 동네에 대형 약국이 새로 열었다고 해서 주말에 한 번 들러봤다. 생각보다 사람이 많고, 직원도 많았다. 가격표도 다 붙어 있어서 약사 눈치 볼 일 없이 천천히 비교하면서 고를 수 있다는 점은 확실히 편했다. 어마어마한 약 종류에 압도되어 두리번거리며 구경하던 중, 파란 유니폼을 입고 약을 정리하던 직원과 눈이 마주쳤다.



브라보.

잘생겼다.



내 혈압보다 더 안정적인 얼굴이었다.

내 미래보다 더 밝은 그의 건치를 보니, 괜히 내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약국에서 치유를 받는다는 말, 이때 쓰는 거구나 싶었다.



그렇게 정신이 잠깐 흐트러진 채 이것저것 고르다가, 오빠에게 문자가 왔다.



'두통약, 소화제, 파스

터비뉴 있으면 3개 정도 사줘.'



터비뉴.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보통 이럴 땐 검색하면 되는데, 굳이 그러지 않았다.

그 직원에서 괜히 한마디 말이나 걸어볼 겸 물어볼 핑계가 필요했다.

그래서 일부러 모르는 척, 직원 앞에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기… 혹시 터비뉴 있나요? 3개 정도…”



수줍게 앞니 플러팅 'ㅠ'으로 웃어보였다. 뀨.

그는 잠깐 검색을 하더니 나를 따라오라 말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를 따라갔다. 요즘 재밌는 일이 없어 지루했는데, 그의 뒷통수를 보니 웃음이 절로 났다. 늙어도 잘생긴게 좋은건 어쩔수 없구나.



그가 멈춰 섰다.

손가락으로 무심한듯 약을 툭 가리켰다.

나도 따라 시선을 옮겼다. 감사하다고 수줍게 웃어보이고선,



터비뉴 3개를 집으려는 그 순간—



아 시발

무좀약이었네 ?



더블액션!

가려운 무좀엔 역시 터비뉴!

무좀이 굉장하니 3개 주세요!




하악

내꺼 아니예여ㅕㅕㅕㅕ

저 무좀 없어요 믿어주세요ㅛ 제발ㄹㄹㄼ여



라고 뒤돌아 걸어가는 그의 뒷통수에 대고 소리치고 싶었다.




아

건치남과의 시작도 못한 로맨스가 30초 만에 무좀박멸제로 박멸됐다. 무좀보다 먼저 사망된 나의 설레임. 오빠새끼는 정말 도움이 안된다.



그가 샌들을 신은 내 발가락을 슬쩍 내려다본 건... 결코 기분 탓이 아니었을 것이다.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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