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모리슨 - 빌러비드

역사의 아픔이 남긴 흉터의 시간

by세인트

'124번지는 한이 서린 곳이었다. 갓난아이의 독기가 집안 가득했다.'


토니 모리슨의 <빌러비드>는 이 기이하고 섬뜩한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 집에는 노예 삶에서 탈출한 여성 세서와 그녀의 딸 덴버가 살고 있다. 그리고 그 집에는 십수 년 전, 도망치다 다시 노예주에게 잡힐 위기에서 세서가 추적자의 손에 빼앗느니 차라리 목을 베어 죽인 아기의 유령이 함께 살고 있다.


그러나 이야기는 아이를 죽이던 그날의 사건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미 18년 전에 일어난 과거의 일이고, 소설의 달력은 노예제가 폐지된 후인 1873년을 가리킨다. 그러나 124번지에서 시간은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집 안의 그릇이 저절로 바닥에 떨어져 깨지고, 붉은 빛이 복도에 감돌며, 케이크 위에 아기의 손자국이 찍힌다. 124번지의 유령은 초자연적인 괴담이 아니다. 그것은 노예제의 폭력, 아이를 제 손으로 죽여야 했던 어머니의 죄바카라감, 그리고 절망이 한 공간에 갇혀 사라지지 않고 고스란히 남아 있는 시간의 물리적인 모습니다.


세서에게 시간은 달력의 숫자가 아니다. 그녀에게 미래란 그저 '과거가 다가오지 못하도록 막아내는 일'에 불과하다. 세서의 등 뒤에는 노예주에게 채찍질을 당해 살이 터지고 부풀어 오른, 매화나무 모양의 거친 흉터가 단단하게 박혀 있다. 정작 자신은 볼 수도 없는 이 등 뒤의 흉터처럼, 노예제의 참혹한 기억은 그녀의 일상을 끊임없이 위협한다. 세서는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집안일을 맴돌며 몸을 혹사한다. 오직 몸을 끊임없이 움직이는 육체 노동을 통해서만, 등 뒤에서 밀려오는 피비린내 나는 기억이 떠오르지 않도록 강제로 눌러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세서에게 일상이란 삶을 영위하는 과정이 아니라, 현재를 덮칠 기회를 노리는 과거의 폭력을 막아내는 고된 작업이다.


그러던 어느 날, 세서와 함께 노예농장 '스위트 홈'에서 온갖 굴욕을 견뎠던 남편의 동료 '폴 D'가 124번지에 찾아온다. 폴 D는 집 안에 떠도는 아기의 유령을 고함을 질러 쫓아내고, 세서와 함께 정상적인 하루하루를 살아보려 시도한다. 그러나 유령이 쫓겨난 직후, 집 앞 물가에서 검은 드레스를 입은 젊은 여자 하나가 걸어 나온다. 여자의 이름은, 바로 세서가 18년 전에 아이를 죽이고 석공에게 몸을 팔아 묘비에 새긴 일곱 글자, '빌러비드(Beloved)'였다. 이 정체불명의 여자는 노예의 참혹한 노동을 거친 사람의 몸이 아니다. 신발 뒤축 하나 닳지 않은 매끈한 외모의 빌러비드는, 세서가 평생 몸을 혹사하며 억누르고 가두려 했던 그날의 피비린내 나는 기억을 집안 한가운데로 다시 불러들인다.


시간 속에 묻어두었다고 믿었던 과거가 한 인간의 몸을 입고 현재의 거실로 걸어 들어온 것이다. 빌러비드가 들어서면서 124번지는 단순한 거처가 아니라, 지워지지 않는 과거가 현재를 집어삼키는 장소가 된다. 세서는 빌러비드의 존재를 깨달아가는 과정에서 시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나는 시간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 시간은 믿기가 너무 어려워. 어떤 것들은 가버리고, 어떤 것들은 그냥 남아. 나는 내 리메모리(rememory)가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했어. 무슨 뜻인가 하면, 내가 어떤 일을 떠올리는 거 말이야. 하지만 아니야. 그건 바로 내가 아닌 바깥에 존재하는 거였어."


세서는 인간의 기억이 뇌 속에서 사라지는 관념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녀가 쓰는 '리메모리'라는 단어는, 한 번 일어난 비극과 폭력의 현장은 장소와 공간에 그대로 남아 떠돌며, 세월이 흘러도 그 자리를 지나가는 누군가의 시선과 발걸음에 언제든 다시 부딪혀 그대로 재현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서는 덴버에게 이렇게 경고한다.


"어떤 집이 불타 없어져도, 그 집이 서 있던 장소는 남아 있어. 내 머릿속뿐 아니라, 바깥세상 어딘가에 떠돌고 있는 거야. 그러니까 네가 그 자리에 가면, 이미 사라진 그 집이 다시 네 눈앞에 나타나는 거지."


세서가 두려워하는 것은 지나간 일을 떠올리는 자신의 기억이 아니다. 공간에 냄새와 환영으로 박혀 있는 과거가, 자식들의 눈앞에 언제든 튀어나와 그들을 다시 끔찍한 노예제도 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세서에게 과거는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바깥에 서서 현재를 덮칠 기회를 노리는 거대한 폭력의 덩어리다.


124번지에 정착한 빌러비드는 단순한 환영이 아니라, 세서의 일상과 시간을 파먹기 시작한다. 빌러비드는 설탕물과 단것을 끝없이 탐하며, 세서의 모든 동선을 따라다닌다. 세서가 의자에 앉으면 그 발밑에 바짝 붙어 앉아 세서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고, 다른 사람이 세서에게 말을 걸거나 다가오는 것조차 몸으로 막아선다. 세서는 다른 일을 전혀 하지 못한 채, 자신을 뚫어지게 올려다보는 빌러비드의 눈앞에 묶여 목이 쉴 때까지 자식에게 과거를 변명하고 고백해야 하는 처지가 된다.


세서는 일터로 나가는 것을 그만두고, 집안의 물건을 팔아 빌러비드에게 입힐 화려한 옷을 사들이며, 하루 종일 빌러비드의 발밑에 엎드려 자신이 왜 그날 아이의 목을 벼랑 끝에서 잘라야만 했는지 변명하고 고백한다.

그러나 빌러비드의 요구는 끝이 없다. 세서가 과거를 설명하면 할수록 빌러비드는 더욱 거대해지고 탐욕스러워진다. 빌러비드의 배는 임산부처럼 부풀어 오르는 반면, 세서는 뼈만 남은 채 점점 시들어간다. 과거의 죄바카라감이 현재의 생명을 직접 갉아먹는 것이다. 세서는 매일 18년 전 '그날의 오후'를 다시 살며, 아이를 죽였던 그 순간의 피비린내 속에 갇혀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집안의 시간을 집어삼킨 이 파괴적인 광경을 견디다 못한 폴 D마저 결국 124번지의 문을 열고 떠나버린다.


이 기괴하게 정지된 시간을 깨뜨리는 것은 124번지 안에 갇힌 세서가 아니라, 집 바깥에 있던 마을의 흑인 여성들이다. 집안에 갇혀 죽어가는 세서와 덴버의 모습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었던 마을 여성들은 124번지 마당 앞으로 모여든다. 그들은 바카라을 주문을 외거나 기도를 올리는 것이 아니다. 124번지 집 주변을 둘러싸고 몸 깊숙한 곳에서 끌어올린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다. 문장이나 단어가 아닌 외마디의 울부짖는 고함과 통곡은, 노예로 살며 자식을 빼앗기고 채찍에 맞았던 그들 모두의 짓밟힌 시간으로부터 터져 나온 소리다. 그들 지르는 이 소리가 124번지의 들보와 공기를 때리는 순간, 세서의 시간을 옥죄고 있던 빌러비드는 거짓말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빌러비드가 사라졌다고 해서 세서의 등에 새겨진 매화나무 흉터가 없어지거나, 죽은 아이가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세서는 기력을 다한 채 침대에 누워 여전히 고통스러워한다. 그러나 마을 여성들이 124번지 앞으로 찾아와 소리를 질렀던 그 순간을 기점으로, 세서의 시간은 비로소 혼자만 감당해야 했던 어두운 지하실에서 벗어난다. 혼자서만 억누르고 막아야 했던 과거가, 같은 상처를 몸에 새긴 사람들의 목소리와 눈빛 속으로 쏟아져 나온 것이다. 다시 돌아온 폴 D는 침대에 누워 울고 있는 세서의 발을 잡고 이렇게 말한다.


"세서, 당신과 나는 그 어떤 사람들보다 많은 과거를 함께 가지고 있소. 이제 우리는 미래가 필요하오. 당신이야말로 당신이 가진 가장 소중한 보물이어야 해요."


<빌러비드>는 끝난 줄 알았던 폭력과 비극의 시간이 어떻게 한 사람의 몸과 집을 현재진행형으로 잠식하는지 생생하게 증명한다. 노예제라는 거대한 역사적 폭력은 달력의 숫자가 바뀐다고 해서 지워지지 않는다. 그것은 124번지의 벽면에, 세서의 등껍질 같은 흉터에, 그리고 물가에서 걸어 나온 젊은 여자의 신발 밑창에 그대로 박혀 현재를 덮친다.


토니 모리슨은 이 소설을 통해, 어두운 과거를 깔끔하게 잊고 앞으로 나아가라는 말이 얼마나 가혹한 거짓인지를 보여준다. 어제 일어난 폭력을 물리적으로 직시하고, 그 고통을 같이 소리 내어 부르지 않는 한, 인간은 결코 지나간 시간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124번지의 차가운 마루판 위에서 똑똑히 확인시켜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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