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 밑에 낀 흙 때가 가르쳐주는 것들
정서(情緖). 사람의 마음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감정. 또는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기분이나 분위기.
19살,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시골에서 자란 소설가를 만났다. 그의 어머니는 면 소재지에서 칼국수집을 차렸고, 그는 칼국수집 홀 가운데 놓인 피아노 건반에 두 손을 올려 칼국수를 먹는 손님들에게 ‘아를르의 여인’ 연주곡을 들려주던 시골의 한낮 풍경을 들려주곤 했다. 그는 소설에서도 어머니를 등장시켜, 칼국수 빚는 밀가루 반죽이 덩어리가 되면 그것을 넓게 펼쳐 엄마의 칼자국이 몸에 배었다고 묘사한 적이 있었다. 유년 시절을 지나는 아이의 몸에는 무언가가 스며들기 마련이다. 그것은 부모의 습관과 말, 행동, 그 모든 것을 포함하리라 생각한다.
통영에서 열렸던 김애란 소설가의 북토크. 으레 주어지듯 북토크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질문 시간. 아이들 셋을 시골에서 키우는 40대 엄마인 나는 물었다. 유년 시절 시골에서의 삶이 지금의 김애란 소설가를 만드는 데 얼마나 영향을 끼쳤는지. 아이의 언어가 아닌 어른의 언어가 필요했다. 내가 시골에서 아이를 키우는 일이 잘하고 있는 일이라는 어떤 격려가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최근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AI와 인간의 차별점에 대한 질문을 받고 그에 대한 대답으로 ‘망설임’을 꼽았다. 그 대답은 온라인에서 많이 회자되었는데, AI에 ‘망설임’을 추가하면 된다는 식의 댓글이 달렸다고 했다. 인간의 망설임과 인공지능의 망설임은 과연 같을까. 인간의 망설임이 허공에 흩날리는 민들레 씨앗 같다면, 인공지능의 망설임은 예측 가능한 범위 안의 수학적 계산처럼 느껴진다.
김애란 소설가는 나의 질문에 조금 망설이며 답해주었다. 유년 시절을 시골에서 보낸 것의 영향력을 ‘정서’라는 단어로 짚어내며, 이 정서는 어디서 과외나 사교육으로 채울 수 없지 않겠냐고 했다.
“정서 과외나 정서 사교육이란 말은 너무 이상하지 않나요?”
아이의 정서를 200% 함양해 드립니다.
아이의 정서 불안을 해소해 드립니다. 뭐 이런 광고 문구를 상상할 수 있으려나.
남의 시선이 아주 중요한 첫째가 4학년 2학기 무렵, 틱 증상을 겪었다. 놀이터에서 아이들과 놀다가 가족이 나타나면 고개를 오른쪽으로 45도 정도 빠르게 돌렸다가 다시 정면을 보는 행동을 반복했다. 처음에는 가볍게 여겼다가 ‘틱’을 검색어에 넣기 시작하면서 내 눈은 점점 동그래졌다. 틱의 범주와 행동이 너무나 다양했다.
이런 이야기를 온라인 게임 동료에게 했었더랬는데, 그 언니도 자기 아들이 틱이 있어 전문 병원에 간 일이 있다고 했다. 병원 대기실에 앉아 있는데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고 했다. 말인즉슨, 자기 애는 목을 거북이처럼 빼는 행동이었는데 대기실에 앉아 있던 다른 아이들의 틱으로 보이는 행동들이 보통이 아니더라는 것이다. 그 동료는 ‘우리 애는 새발의 피도 아니구나’ 싶어 미안하게도 안심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 언니는 말을 이었다.
“근데 우리 남편이 알고 보니, 거북이처럼 목을 쑥 빼며 앉는 습관이 있더라고.”
우리는 또 웃기다며 마주 보고 웃었다. 그나저나 틱 전문 병원을 찾는 아이들의 특이한 행동들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아이들에게 ‘강박’이라는 것은 왜 생겨나게 됐을까 생각하면 안타깝고 안쓰러웠다. 적당히를 모르는 인간들의 새로운 질병처럼 느껴졌다.
틱 증상은 이곳 시골로 오고 나서도 당분간 계속됐고, 학교에 상주하시는 상담 선생님께 상담을 신청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큰아이는 선생님과 1:1 대화를 통해 틱 증상이 호전되면서 감사하게도 서서히 사라져 갔다. 30대 청년으로 보이는 선생님과의 밀접한 대화를 통해 1:1 케어를 받으면서 마음이 편해졌던 것이다. 상담이 끝나면 짬짜미 시간을 이용해 선생님이랑 보드게임도 했다는데, 어쩌면 그 다정한 시간들이 아이에게 진짜 치료 효과를 발휘했을지도 모른다. 세 아들을 키우는 바쁜 부모가 주지 못한 여유와 온기를 상담 선생님을 통해 온전히 채웠으리라.
고즈넉한 시골 풍경이 아들의 정서에 편안함과 평화로움을 선물했는지는 정확히 알 길이 없다. 그것은 산과 바람, 물, 햇빛 같은 계절이 하는 일. 계절이 하는 일은 참으로 많기도 하다. 밭에 심어진 구근의 싹을 피워 올리거나 흙으로 덮인 초록 잎들을 깨워 땅 위로 올리게도 한다. 이 모두 바람과 태양, 흙이 협심해서 조화롭게 해내는 일이다.
결국 생각하게 된다. 우리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진짜 ‘정서 과외’란 이런 게 아닐까.
시원한 물에 뽀송한 상추 헹구기
연잎에 앉은 청개구리가 물 마시는 모습 들여다보기
하늘에 천천히 떠다니는 구름 바라보기
단풍잎을 모아 가을 꽃다발 만들기
깻잎 딴 손에 밴 깻잎 향 맡아보기
가을밤, 반딧불이를 손아귀에 넣어보기
나란히 줄지어 가는 개미 떼들의 목적지 찾아보기
한 아름에 안 들어오는 큰 나무를 안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하기
내 몸을 마음껏 뛰어놀게 하기
땀 흘리기
손톱에 낀 흙 때
정서 과외의 흔적을 이야기하는 일은 참 쉽다. 그리고 그것을 가만히 상상하는 일 역시 싱그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