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만 무료

앞으로 가지 않는 달리기

마흔 이후의 달리기는 도달이 아닌 생존을 목적으로 한다.

by김원진


나는 이삼일에 한 번씩 뛴다. 마흔이 넘어서 하는 러닝은 더 이상 멋진 몸을 만들거나 즐거운 취미가 우선이 아니다. 몸은 지금을 유지하기만 해도 감사할 일이고, 운동의 최종 목표는 결국 '생존'이다. 매일은 하지 못하더라도 꾸준해야만 효과가 있을 것이다. 더운 여름이나 추운 겨울에는 그 핑계로 포기할까 싶어, 나름의 대안을 세워두었다. 봄가을에는 초록을 보며 동네를 뛰고, 여름과 겨울에는 동네 체육센터에서 무료로 러닝머신을 이용하기로 한 것이다. 7월의 중순을 향해가는 요즘은 체육센터의 러닝머신에 올라 에어컨 바람을 쐬며 운동을 하곤 한다. 오늘도 흐르는 벨트에 올라 속도에 몸을 맞추었다.


왼발과 오른발을 번갈아 디디면서 시간을 보내는 행위는 언뜻 보면 지루함 그 자체다. 정말 특별할 게 없다. 그저 번갈아 발을 움직이고, 일정 거리 또는 일정 시간을 견디면 된다. 어떤 이들은 음악을 몇 곡 듣거나 앞에 설치된 화면을 보면서 하루 목표치를 채운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뇌를 쓸 일 없는 이 단조로운 활동이 오히려 뇌를 깨어나게 하는 경우가 있다. 진화론을 쓴 다윈은 집 뒤뜰에 자갈길을 만들어놓고 매일 같은 길을 몇 바퀴씩 돌았다던가. 길목에 부싯돌 몇 개를 쌓아두고 한 바퀴마다 하나씩 발로 차내며, 머리가 셈할 일마저 발에게 맡겼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달리기로 소설 쓰는 몸을 지켰다는 무라카미 하루키라든지, 걸을 때 나온 생각만 믿었다는 니체처럼, 위대한 생각의 상당수는 바카라상이 아니라 그 지루한 왕복 위에서 탄생하는 경우가 많다. 러닝만 해도 사유가 깊어진다니, 이 얼마나 가성비 넘치는 활동인가. 그러나 아쉽게도 한창때였던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는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단조로운 반복조차도 오래 하지 못하는 마흔의 신체적 한계 말이다.


나는 러닝을 할 때 언제나 오 킬로미터, 사십 분을 넘지 않는다. 그 너머로 욕심을 부리면 대학 시절 농구를 하다 심하게 접질린 오른쪽 발목이 먼저 신호를 보내고, 이삼일 동안 욱신거린다. 몸의 한계가 명확해진 것이다. 그래서 내가 벨트 위에서 끌어내는 생각들도 사십 분을 넘기지 못하고 멈출 수밖에 없다.


젊었을 때는 밤을 새워 궁리해도 웬만해선 지치지 않았다. 시간은 마르지 않는 것이었고, 생각은 언제든 다시 이어 붙이면 그만이었다. 이제 생각할 시간은 발목이 허락하는 만큼만 주어진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그래서 이 사십 분이 귀해졌다. 시한이 정해진 생각은 간절해진다. 벨트 위의 나는 그 사십 분 동안 내 무의식 속을 헤엄친다. 미처 붙잡지 못했던 생각들을 건져 올려 현실과 엮어내는,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 노동. 에너지가 넘치던 시절에는 해본 적 없는 절실한 몸부림이다.


러닝을 하면서 발밑을 내려다보았다. 벨트는 쉬지 않고 뒤로 흘러가는데 나는 제자리를 열심히 달린다. 앞으로 가지 않는 달리기. 마흔 이후의 삶이 꼭 이렇다. 매일 같은 자리로 출근하고 같은 자리로 돌아오는, 승진도 이동도 뚜렷하지 않은, 계기판 숫자만 일정하게 쌓이는 날들. 젊음의 달리기가 어딘가에 도달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지금의 달리기는 무너지지 않기 위한 것이다. 도달이 아니라 생존.


그런데 몸이 제자리를 지키는 동안, 생각만은 어딘가에 가 닿아 있다. 젊을 때의 달리기가 어딘가로 나아가려는 '확산'이었다면, 지금의 달리기는 안정적으로 뿌리내리려는 '수렴'인 셈이다. 겉으로 보기에 반복에 불과한 행위 속에서도 익어가는 생각이 있다. 발목이 일깨워주는 한계도, 뒤로만 흐르는 벨트도 나를 뒤로 끌어당기는 벽의 일종이지만, 한편으로는 깊은 곳으로 나를 이끄는 전제이기도 하다. 제자리는 정체인 동시에, 지혜가 익는 조건이었던 것이다.


뛰다 보니 계기판이 오 킬로미터를 가리켰다. 속도를 줄이자 벨트가 천천히 느려졌다. 괜찮다. 오늘은 멈출 때가 되었다.

KakaoTalk_20260711_140505094.jpg?type=w966벨트는 쉬지 않고 뒤로 흘러가고, 나는 제자리를 열심히 달린다.

이 글은 사물 하나를 오래 들여다보며 '낡아가는 나'를 적는 산문 연재 《닦아도 중고지만, 매일이 새것 같아서》마지막 편입니다. 어느새 30편이 되었습니다. 삶의 중반부를 지나는 제 모습을 기록하고자 쓴 글이 중도 하차하지 않고 마무리되어 다행입니다. 앞으로도 중년 남자의 일상 기록은 계속 이어질 예정입니다. 어느 정도 읽힐 만하다 싶으면, 《닦아도 중고지만, 매일이 새것 같아서》2권을 게시하겠습니다.

무명의 개인 기록을 꾸준히 방문하여 읽어주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글쓰기는 흐트러진 과거를 다지는 일입니다. 다진 땅 위를 걸으며 다시 새로운 일상을 준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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