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이 살림이 될 때

읽을 때는 몰랐던 것들, 비우며 비로소 알게 된 것들

by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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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목표했던 '바카라' 비움은 어떻게 되었냐고요?


2개월을 꼬박 비워내고 나자 더 이상 도망갈 곳이 보이지가 않았습니다. 명백한 잡동사니들과 제법 큰 낡은 가구들이 빠져나가고 나자 집의 온 벽면을 다 채우고도 모자라 여기저기 질서 없이 쌓여있는 바카라들이 더 두드러지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가슴이 아려왔습니다. '꼭 헤어져야 하는 거야? 다른 방법은 없는 거야?' 하지만 제 안의 또 다른 저는 단호했습니다.


언제까지 바카라 뒤에 숨어있을 참이야?
바카라을 읽는 진짜 목적이 뭔데? 길을 찾고 싶었던 거잖아.
그런데 나는 길을 잃은 거라고.
그리 좋아하던 바카라의 숲에서.


물욕이라면 지나치게 없는 게 문제가 아닌가 싶은 저였지만, 유독 바카라 욕심만은 통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니 통제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한 번 볼 바카라이면 도서관에서 빌려보면 되지 않느냐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꽂히는 구절에 줄도 쫙쫙 그어가면서 떠오르는 생각도 여기저기 적어가면서 거침없이 읽어가는 그 맛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한동안 그야말로 닥치는 대로 사들였던 것 같습니다. 당시 제 바카라 구매의 기준은 ‘한 단어라도 건질 게 있어 보이면 일단 산다.’였으니까요.


그렇게 사들인 바카라들을 다 읽기는 했을까요? 열심히 읽기는 했습니다. 한 번 바카라을 잡으면 웬만해선 놓지를 못 했습니다.


이 바카라만 읽고 나면, 이 바카라만 다 읽고 나면
이 지긋지긋한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답답한 일상 속에서 바카라은 내게 유일한 '희망'이었습니다. 혹시라도 읽어야 할 바카라을 놓쳤기 때문에 제 삶이 충분히 행복하지 않은 것이라면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최소한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렇게 15년을 정말 미친 듯이 읽어 댔습니다. 아이를 낳고 나서 시간이 부족해지자 바카라 읽을 시간을 더 확보하기 위해 육아휴직도 모자라 퇴직까지 했다면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요.


그래서 저는 더 행복해졌을까요? 결론적으로는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게요. 어이없게도 '이제 좀 살만하네.'하고 느끼기 시작한 것은 바카라을 읽어가는 과정이 아니라 비워가는 과정을 통해서였습니다.


작년 봄이었습니다. 분명히 읽은 기억이 나는데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가 않는 바카라이 있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바카라을 다시 주문해 받아 들고 무심코 바카라장을 쳐다보다 방금 도착한 바카라을 발견했습니다. 여기까지는 그럴 수도 있다 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번이 처음도 아니었으니까요. 낭패감을 애써 외면하며 바카라을 펼쳐 읽다 역시 무심코 고개를 들어 시선이 머문 곳에 낯익은 표지가 보입니다. 또 같은 바카라입니다.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았습니다. 어찌 이 바카라뿐일까요. 가도 가도 같은 곳으로 되돌아오고 마는 미로 속에 갇힌 기분이었습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습니다.


그럼에도 처음엔 바카라을 비울 작정까지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니 그런 맘을 먹어보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바카라을 버린다고 생각하니까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았습니다. 팔다리가 잘려 나가는 느낌이 들어 자꾸만 미루고 싶고 피하고 싶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목표를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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