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5분혁신.디지털&AI]
[방구석5분혁신=안병민] AI에게 보고서를 맡긴다. 자료를 찾게 한다. 코드를 짜게 한다. 여러 대안을 비교하게 한다. 좋다. 시킬 수 있는 일은 시키면 된다. 기계가 더 잘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무엇을 할지도 AI에게 묻는다. 무엇을 믿을지도 묻는다. AI가 추천했으니 선택하고, AI가 그렇다니 받아들인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른다. 결과만 가져다 쓴다. 일은 줄었다. 그런데 과연 더 자유로워진 걸까.
‘리버럴 아츠’라는 오래된 말에는 자유인을 기른다는 뜻이 담겨 있다. 지금의 자유와 당시의 자유가 오롯이 같은 것은 아니다. 그래도 AI 시대에 다시 꺼내볼 질문 하나는 남는다. 내 삶의 중요한 판단은 누가 내리는가.
자유는 그저 마음대로 하는 게 아니다. 선택지가 많다고 자유로운 것도 아니다. 백 가지 메뉴가 있어도 무엇을 고를지 계속 남에게 묻는다면 선택지만 많아졌을 뿐, 판단은 내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모든 판단을 혼자 해야 한다는 얘기도 아니다. 아프면 의사를 찾는다. 길을 모르면 내비게이션을 켠다. 전문가에게 묻고 바카라을 읽는다. 복잡한 세상에서 모든 판단을 직접 하겠다는 게 오히려 무모하다.
맡기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건 마지막에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느냐다. 의사의 권고를 듣고도 다른 의견을 구할 수 있다. 내비게이션이 이상한 길을 알려주면 무시할 수 있다. 전문가의 설명이 납득되지 않으면 다시 묻는다. 판단을 맡기는 것과 판단권까지 넘기는 것은 다른 일이다.
AI도 같다. 많이 물어도 된다. 아니, 많이 물어야 한다. 다른 관점을 찾고, 빠진 정보를 확인하고,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가능성을 꺼내는 데 이만한 도구가 없다. 문제는 AI가 답을 내놓는 순간 생각을 멈추는 데 있다. AI가 그랬으니까. AI가 더 많이 아니까. AI가 그렇게 추천했으니까. 편하다. 그래서 위험하다.
생각은 귀찮다. 판단은 더 귀찮다. 비교해야 한다. 의심해야 한다. 틀릴 수도 있다. 잘못 결정하면 바카라임도 져야 한다. 그런데 AI는 몇 초 만에 답을 준다. 친절하다. 자신감도 넘친다. 심지어 이유까지 그럴듯하게 붙여준다. AI가 주는 가장 달콤한 편리함? 일을 덜 해도 된다는 게 아니다. 판단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다.
강제로 판단권을 빼앗기면 저항이라도 한다. 편리해서 스스로 내려놓으면 얘기가 달라진다. 잃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오늘 한 번 맡긴다. 내일 또 맡긴다. 조금씩 익숙해진다. 답을 구하는 습관은 어느새 판단을 맡기는 습관으로 바뀐다.
그러다 묘한 일이 벌어진다. 나는 AI에게 질문한다. 명령도 내가 내린다. 겉으로는 분명 내가 주인이다. 그런데 무엇을 믿을지, 무엇을 고를지, 어디로 갈지까지 AI의 답을 그대로 따른다. 명령은 내가 내리는데 방향은 AI가 잡는다. 내가 주인인 줄 알았는데 외려 노예다.
중요한 것은 관계의 구조다. 누가 목적을 정하는가. 누가 기준을 세우는가. 누가 마지막 판단을 내리는가. AI에게 일을 맡기는 동안에는 내가 AI를 부린다. 판단까지 맡기기 시작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누가 누구를 부리는지 모호해진다. 그래서 자유의 마지막 보루는 의외로 단순하다. AI의 답에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가.
왜 이 답을 받아들이는지 설명할 수 있는가. 틀렸다고 생각하면 버릴 수 있는가. 결과가 잘못됐을 때 “AI가 그랬다”고 빠져나가지 않고 내가 바카라임질 수 있는가. 그렇다면 판단권은 아직 내 손에 있다.
AI 시대에 필요한 공부도 결국 여기로 모인다. 많이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질문하고, 근거를 따지고, 다른 답과 비교하고, 자기 판단을 만들고, 틀리면 고치는 힘. 남이 만든 답을 잘 외우는 사람보다 남의 답을 검토할 줄 아는 사람이 더 자유롭다.
AI는 앞으로 더 많은 일을 대신할 것이다. 막을 이유가 없다. 검색도 맡기고, 초안도 맡기고, 비교도 맡기자. 기계가 더 잘하는 일을 굳이 인간이 되찾아올 필요는 없다. 하지만 딱 하나. 판단권은 다르다. 무엇을 목표로 할 것인가. 무엇을 믿을 것인가. 무엇을 거부할 것인가. 그리고 그 결과를 누가 바카라임질 것인가. 이 마지막 답만큼은 내 것이어야 한다.
AI 시대의 인간을 가르는 것은 AI를 얼마나 많이 쓰느냐가 아니다. AI가 만든 답을 그대로 소비하느냐, 그 답을 재료 삼아 자기 판단을 만드느냐다.
AI는 인간을 노동에서 해방시킬 수 있다. 하지만 노동에서 해방됐다고 자유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AI에게 일을 맡기는 사람은 AI를 부린다. 판단까지 맡기는 순간, 누가 누구를 부리는지 다시 물어야 한다. ⓒ혁신가이드안병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