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X] 사장 대우

[방구석5분혁신.초단편소설]

박 사장은 일흔둘이었다. 회장보다 열 살 가까이 많았다.


아침 아홉 시가 되기 전이면 검은 세단이 회사 현관 앞에 멈췄다. 기사가 내려 뒷문을 열었다. 박 사장이 천천히 내리면 직원들이 허리를 숙였다.


누가 봐도 최고급 세단이었다. 거래처 모임에 가면 사람들이 한마디씩 했다. “역시 사장님은 대우가 다릅니다.” 동창 모임에 갈 때도 기사가 데려다줬다. 식당 앞에 차가 서고 문이 열리면 친구들이 먼저 알아봤다. “박 사장 왔네.” 그럴 때면 박 사장은 차에서 조금 천천히 내렸다.


최고급 세단에 어울리지 않게 연봉은 중견그룹 부장급 정도. 박 사장이 그것을 문제 삼았다는 이야기는 없었다.


사장실은 조용했다. 아침에는 신문을 봤고 보고서 몇 장을 읽었다. 점심에는 거래처 사람을 만났다. 오후에는 직원 몇 명의 보고를 받았다. 가끔 비서에게 전화가 왔다. “사장님, 회장님이 찾으십니다.” 그러면 박 사장은 읽던 신문을 접고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회장은 60대 초반이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은 대개 실제 나이보다 열 살쯤 젊게 봤다. 박 사장과 나란히 서면 둘의 나이 차이는 실제보다 훨씬 커 보였다. 직원들 가운데 회장과 제대로 이야기를 나눠본 사람은 많지 않았다. 십 년 넘게 회사에 다니고도 복도에서 몇 번 본 게 전부인 직원도 있었다.


오히려 지역신문에서 더 자주 봤다. 장학금을 전달하고 복지시설에 성금을 내고 지역 행사에서 박수를 치는 사진이었다. 밖에서는 점잖은 기업인으로 통했다. 기부도 꾸준히 했다.


어느 날 박 사장이 보고를 마치고 일어서다 말했다. “아, 회장님. 충북 공장 김 과장 있지 않습니까.” 회장은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왜요?” “그 친구 일 잘합니다. 현장에서도 평이 좋고요. 머리가 빨리 돌아갑니다. 아주 똘똘해요.”


회장이 고개를 들었다. “똘똘해요?” 박 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회장은 잠시 그를 바라봤다. “그렇게 똑똑해서 우리 회사에서 뭐 할 건데요?” 박 사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회장은 다시 서류를 내려다봤다. “그렇게 똑똑하면 우리 회사에 있겠어요?”


두 달 뒤 김 과장이 사표를 냈다. 마지막 출근 날 김 과장이 인사를 왔다. 박 사장이 물었다. “연봉 많이 올려준대?” 김 과장이 웃었다. “그것도 그렇고요.” 잠시 망설이다 덧붙였다. “거기 가면 제가 해보고 싶은 걸 좀 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박 사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젊을 때는 해봐야지.”


김 과장이 없어도 회사는 달라지지 않았다. 공장은 정해진 만큼 만들었고 거래처는 정해진 만큼 가져갔다. 이 업종은 허가 없이 들어오기 어려웠고 큰 설비도 필요했다. 경쟁자가 갑자기 나타날 일도 없었다. 회사는 올해도 작년만큼 벌었다. 내년에도 올해만큼 벌 것이다.


김 과장이 나간 자리에는 밑에 있던 대리가 올라갔다. 처음에는 조금 서툴렀다. 몇 주가 지나자 김 과장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회사는 마흔 명 남짓. 십 년 넘게 다닌 사람이 흔했다. 급여는 짰지만 야근할 일도 거의 없었다. 큰 사고만 치지 않으면 회사가 먼저 사람을 내보내는 일도 드물었다.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직원이 십사 년째 다니는 선배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다른 회사 갈 생각은 안 해보셨어요?” 선배는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여기만큼 편한 데가 있나.”


박 사장이 사장이 된 것은 세 해 전이었다. 그전까지 그는 오랫동안 이사였다. 어느 날 회장이 그를 불렀다. “박 이사님.” “예, 회장님.” “사장 하시죠.” 박 이사는 한동안 회장을 바라봤다. “제가요?” 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인사발령이 난 뒤 박 이사에게 방이 생겼다. 사장실이었다. 최고급 세단도 나왔다. 기사도 붙었다.


세 해가 지난 어느 오후, 회장이 다시 그를 불렀다. “박 사장님.” “예.” “올해까지만 하시죠.” 박 사장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회장은 아무 말 없이 차를 마셨다. 박 사장이 자리에서 일어나다 멈췄다. 뭔가 말하려는 듯했다. 회장이 그를 봤다. “뭐 더 있으세요?” 박 사장은 잠깐 입을 다물고 있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다음 날 아침에도 검은 세단은 박 사장의 집 앞에 왔다. 기사가 내려 평소처럼 뒷문을 열었다. 박 사장은 바로 타지 않았다. 잠시 차를 바라봤다. “사장님?” 기사가 불렀다. 그제야 박 사장이 뒷좌석에 앉았다.


며칠 뒤 동창에게 전화가 왔다. “박 사장, 다음 주에 밥 한번 먹자.” 박 사장은 잠깐 뜸을 들였다. “그러지 뭐.” 퇴임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후임은 최 이사였다. 인사 공지가 뜨자 직원 몇 명이 모니터를 바라봤다. “최 이사님이네.” “그러네.” 그걸로 끝이었다.


박 사장의 마지막 출근 날, 기사는 평소처럼 집까지 그를 데려다줬다. 박 사장이 차에서 내리자 기사가 따라 내려 허리를 숙였다.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박 사장은 뭔가 말하려다가 기사에게 손만 한번 들어 보였다. 차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서 있었다.


다음 월요일 아침, 같은 차가 회사 현관 앞에 멈췄다. 같은 기사가 내렸다. 뒷문을 열었다. 최 사장이 차에서 내렸다. 지나가던 직원들이 허리를 숙였다. ⓒ안병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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