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인간적인 방법, 얼굴을 맞대고 배우는 시간
지난주 나흘간 <가을의 향, 세계의 차> 행사에서 개완 체험 부스를 지켰다. 차에 관심이 있는, 처음 찾아온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똑같았다. 집에서 영상을 보고 따라 해봤는데 잘 안 되더라는 것.이상한 일이 아니다. 영상은 결과만 보여준다. 잘 우려진 찻물이 잔에 떨어지는 순간, 능숙한 손이 개완을 기울이는 그 매끄러운 동작. 그 장면 뒤에 손가락이 어디쯤 있었는지, 뚜껑을 몇 도쯤 열었는지, 뜨거운 김이 어느 쪽으로 빠져나가는지는 화면에 남지 않는다. 왜, 어떻게, 그 이유를 하나 하나 자세히 명확히 설명해주는 부분도 확연히 부족했던 것이다.
그래서 영상을 그대로 따라 하면 흉내는 낼 수 있어도 손은 여전히 겁을 먹고 있다. 동작은 비슷한데 확신이 없는 상태, 그게 영상만으로 배운 사람의 손이다.
부스에서 손을 하나하나 잡아드리고 나면 표정이 달라졌다. "영상 보고 따라하긴 했지만 제대로 배우고 쓰니 훨씬 재미있다"는 말을 그 나흘 동안 가장 많이 들었다. 방법을 안 다음에야 편한 대로 응용할 수 있다는 것, 순서가 바뀌면 오히려 오래 헤맨다는 것을 다시 확인한 시간이었다.
개완이라는 이름부터가 그렇다. 개완은 삼재배, 삼재완이라고도 부르는데, 뚜껑은 하늘(배개), 몸은 사람(배신), 받침은 땅(배탁)을 뜻한다. 천지인이 하나로 어우러진다는 뜻을 담은 도구를 영상 속 손동작만 보고 배우려 했으니, 어긋나는 게 당연했는지도 모른다.
요즘은 뭐든 영상으로 배운다. 요리도, 운동도, 심지어 손끝의 감각이 전부인 일까지. 영상은 정보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데는 뛰어나지만, 실패해도 되는 순간과 조심해야 하는 순간의 경계는 알려주지 않는다. 그 경계는 결국 몸으로 몇 번 넘어서 봐야 알게 되는 것이다.
개완을 검지로 누르고 엄지와 중지로 감싸 쥐는 그 짧은 동작 하나에도, 손이 겁을 먹었는지 아닌지가 그대로 드러난다. 그리고 그 겁이 사라지는 순간은 대개 화면 앞이 아니라 누군가 손을 잡아준 그 만남에서 온다.
18년째 차를 가르치면서 계속 확인하는 것도 같은 지점이다. 정보는 나눠줄 수 있지만, 확신은 손에서 손으로만 건너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