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덮어 둔 줄

28

by라한

28. 덮어 둔 줄


망건을 매던 내관이 손을 멈췄다.

"저하, 아프십니까. 너무 당겼습니까."

"아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게."

예지는 놋거울 속을 들여다보았다. 볼은 패고 눈 밑은 어두웠다. 아침마다 이 모습을 보니 이제 놀라지도 않았는데, 오늘은 본래 자신의 얼굴을 떠올리려 해도 거울 속 모습이 먼저 따라왔다. 화장대 앞에서 머리를 묶던 손과 지금 망건을 눌러 주는 손이 어울리지 않았다.

'내가 어떻게 생겼더라.'

휴대폰에 있던 사진을 생각했다. 선배의 얼굴을 확대해 놓고 친구에게 보여 주던 날, 옆에 붙어 있던 제 얼굴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눈은 어떻게 웃었고 입술은 어느 쪽이 먼저 올라갔는지, 그런 것이 갑자기 중요해졌다. 잊지 않으려고 애쓰면 놋거울 속의 의경이 입을 다물었다.

"거울을 더 가까이 드릴까요."

"괜찮네. 이 얼굴이 많이 상했는가."

"남쪽에 다녀오시고 살이 빠지셨습니다. 수라도 더 드시고 주무셔야 합니다. 어젯밤에도 공주 자가께서 가신 뒤에 등을 켜 두셨습니다."

"잠이 안 와서."

"약을 다시 지어 올리겠습니다."

"약 말고 다른 것이 없나."

내관은 무엇을 여쭙는지 몰라 예지의 얼굴을 살폈다. 예지도 설명할 수 없었다. 침대에 누워 아무 생각 없이 영상을 넘기고 싶었다. 댓글을 읽고 웃다가 어머니에게 불을 끄라는 잔소리를 듣고 싶었다. 그런 것을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까.

"저하께서 어릴 적에는 바카라을 읽어 드리면 주무셨습니다."

"내가 읽으면 안 되고?"

"읽으시다가 틀린 곳을 찾으시면 깨셨습니다. 그래서 소인들이 번갈아 읽었습니다."

"그랬구나."

"오늘 밤에도 해 드리겠습니다. 어떤 바카라을 내올까요."

예지는 어머니가 전화로 밥을 먹었느냐고 묻던 말을 떠올렸다. 목소리보다 말이 먼저 생각났다. 어제 먹은 것까지 묻던 사람이었다. 그때는 그걸 왜 궁금해하느냐며 웃었다. 오늘은 그 잔소리를 오래 듣고 싶었다.

"밥을 먼저 들겠네. 바카라은 밤에 생각하고."

"잘 생각하셨습니다. 탕약도 같이…."

"밥부터라니까."

내관이 오랜만에 세자의 투정을 들었다는 듯 웃었다. 예지는 그 웃음을 따라 웃다가 거울을 물려 달라고 했다. 얼굴을 더 보고 있으면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울고 나면 내관은 어디가 아픈지 물을 것이고, 또 의원을 부를 것이다. 예지는 오늘 아침까지 누군가를 더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다.

*

전날 밤 세녕은 해양의 자백과 채윤이 겪은 일을 모두 들었다. 예지가 끝내 아버지에게도 의심을 품고 있다는 말을 하자, 누이는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분이는 내 처소에 두겠다. 다시 데려가려면 내게 와야 할 것이다."

정은은 채윤의 일기를 품에 안고 있었다. 세녕은 그 바카라에 눈이 갔다가 문가로 돌렸다. 잠시 기다려 달라는 말에 정은이 나가자 누이가 예지를 불렀다.

"해양에게 내가 왕이 되어야 한다고 했느냐?"

"소자가 물러나면 누님을 세우겠다고 했습니다."

"나에게는 언제 물을 생각이었고?"

예지는 설명할 말을 찾았다. 누이는 자신보다 먼저 배웠고, 글을 읽지 못하는 여인이 무슨 재주가 있겠느냐는 말도 오래 견뎠다. 그 재주를 알아주었다고 생각했는데 누이는 화가 나 있었다.

"누님께서 하실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해양이 그 자리를 차지하면 모두 끝날 것 같아서…."

"그러니 나를 앞세웠구나. 네가 그 아이와 다투는 동안 나는 무엇을 약속했는지도 몰랐어."

"누님을 이용하려던 것은 아닙니다."

"내가 거절하면 어찌할 것이냐?"

예지는 바로 답하지 못했다. 거절하지 않기를 바랐다는 것이 그 침묵에 드러났다. 누이는 아우가 쥐고 있던 숟가락을 보다가 시선을 거두었다.

"내가 맡겠다고 할 날은 내가 정한다. 네가 바라서 한 말을 내 뜻으로 전하지 마라."

"그러겠습니다."

"네가 겁나는 것도 안다. 나도 겁이 난다. 그래서 너에게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찾아오는 것이다. 네 자리를 얻으러 오는 줄은 몰랐다."

예지는 고개를 숙였다. 누이가 돌아가면 혼자 남는 것이 싫었다. 왕이 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한 뒤에도, 누이가 제 곁에 앉아 혼내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소자가 없어지겠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럼 있어라. 아바마마께 여쭐 것도 남았다며."

"채윤을 찾아간 내관을 불러 달라고 했습니다. 아직 답이 없습니다."

"나는 분이를 지키겠다. 그대는 멈추지 말고 물어라."

세녕은 정은을 다시 들였다. 일기에 관해 더 묻지는 않고 아우의 저녁상을 앞으로 밀었다. 거의 먹지 않은 밥 위로 국이 식어 있었다.

"앓을 때도 이러더니. 국이라도 넘기거라."

"그 아이가 누님 속을 많이 썩였겠습니다."

누이가 바라보자, 예지는 숟가락을 든 채 멈췄다.

"소자가, 어릴 때 말입니다."

"알아들었다. 먹어라."

예지는 국을 삼켰다. 누이가 아는 아우와 여기 앉은 자신을 설명하려면 어디부터 말해야 할까. 몸의 주인에게조차 묻지 못하고 여기까지 왔다. 더 이야기하고 싶어도 꺼낼 수 있는 말이 없었다.

*

아침 문안에서 중전은 아들의 얼굴부터 보았다.

"수라는 들었느냐."

"들었습니다."

"얼마나."

"국과 밥을 조금 들었습니다."

"조금이 얼마나냐. 내관에게 물어야 제대로 답하겠느냐."

조금 전까지 듣고 싶던 질문인데, 이 목소리가 이어질수록 다른 어머니에게 미안했다. 제 어머니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의경으로 눈을 떴던 날부터 그것을 알지 못했다. 자신을 찾고 있을지, 이미 장례를 치렀을지, 그 생각을 하다가 밥을 더 먹겠다는 대답이 늦었다.

중전이 궁인을 물렸다. 문이 닫히자 한동안 찻잔만 만지다가 입을 열었다.

"해양의 이름을 들으면 네 얼굴이 굳는다. 해양은 네 이름을 들어도 웃더구나. 어느 쪽을 더 걱정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어마마마께서 들으신 것이 있습니까."

"조정에서 네가 사람을 잃고 왔다는 말을 한다. 네가 붙든 사람 때문에 나라가 흔들린다고도 한다. 네가 대군에게 칼을 들이댔다는 말까지 들었다."

"칼을 들었습니다."

"왜."

예지는 찻잔을 내려놓았다. 중전에게 어느 만큼 말할 수 있을지 따로 정하고 온 일이 없었다. 거짓으로 안심시키기에는 왕과 대군의 일이 너무 멀리 와 있었다.

"해양이 상왕을 해쳤다고 제 입으로 말했습니다. 소자의 곁을 겨눈 자들에게도 돈과 길을 대었습니다."

중전이 숨을 들이켰다.

"그 아이가 네 앞에서 그 말을 했다고?"

"그러합니다."

"말다툼하다 못 할 말을 한 것인지도…."

"못 할 일을 해 놓고 한 말이었습니다. 소자도 오랫동안 믿고 싶지 않았습니다."

중전은 세자의 눈을 보다가 손을 거두었다. 손을 뻗으면 아들이 울 것처럼 보여서 멈춘 것 같았다. 예지는 그 손이 돌아가는 것을 보고 찻잔 옆에 제 손을 놓았다.

"전하께 아뢰었느냐."

"전하의 명을 받은 자가 채윤의 집에 갔습니다. 그 일을 확인하고자 했으나 허락을 받지 못했습니다."

"예문관의 관원을 말하는 것이냐."

"주채윤입니다. 저하, 하고 저를 부르던 사람이었습니다."

중전의 눈가가 굳었다. 제 이름을 부를 때마다 예를 갖추던 채윤의 목소리가 떠올라 예지는 말을 잇지 못했다. 어머니 앞에서는 동궁에서 일하던 관원에 관해 설명하면 될 텐데, 입을 열면 그 사람이 마지막에 자신을 어떻게 보았는지부터 말할 것 같았다.

"어마마마, 소자는 그 사람이 죽기 전에 돌아오겠다고 했습니다. 돌아와서 듣겠다고. 그날 듣지 않은 말이 있습니다."

"세자."

"소자가 그날 저녁까지 남아 있었으면 달랐을지, 같이 데려왔으면 살았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아바마마께서는 더 묻지 말라 하십니다. 소자가 무엇을 묻는지는 알고 계셨습니다."

중전은 자리에서 일어섰다가 다시 앉았다. 전하께 가겠다는 말을 하려는지, 아들에게 물러가라는 말을 하려는지 예지는 알 수 없었다. 지금은 그 마음을 알아맞힐 힘도 없었다.

"오늘 이 방에서는 그만하자."

"어마마마."

"잠깐 나가 있어라. 전하께 여쭙겠다. 네가 가고 나면…."

중전은 발 쪽을 보았으나 상궁을 부르지 않았다. 아들이 기다리자 말을 이었다.

"해양도 불러야겠구나. 그 아이를 보면 나는 또…, 네 앞에서 무슨 약속을 하겠느냐. 지금은 물러가 다오."

"소자에게 들으셨다 말씀하셔도 됩니다. 다만 증언한 사람들의 이름은…."

"그 사람들의 이름은 묻지도 않았다.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정도는 안다."

예지는 부복했다. 중전은 아들이 일어서자 손을 내밀었다. 소매의 끝을 잠깐 잡았다 놓았다.

"약을 보내면 버리지 말고 먹어라. 네가 내 말 듣기 싫다고 네 몸까지 해치지 말고."

"그러겠습니다. 어마마마도 수라를 드십시오."

"너희가 번갈아 와서 그 말을 한다. 세녕이 시켰느냐."

"소자도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중전은 아들의 얼굴을 보며 웃으려 했다. 예지는 그 웃음이 다 만들어지기 전에 고개를 숙였다. 길에서 울고 싶지 않아 천천히 문을 나섰다.

*

여성부 마루에서는 자리를 옮기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수련의 서안이 햇볕을 덜 받는 쪽으로 갔고, 누워서 다리를 올릴 짚방석이 곁에 놓였다. 남해에서 돌아온 뒤에도 발목이 붓곤 해서 오래 앉을 수 없었다. 달래는 손가락의 부기가 가라앉았는지 확인하다가, 가락지를 오늘은 빼 볼 수 있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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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기획 및 집필 작가] 글을 씁니다. 계속 써 왔고 앞으로도 씁니다. 쓴 글들을 통해 또 쓰려는 이야기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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