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롯연대경제를 다시 묻다
최근 활동하고 있는 단체에서 <슬롯연대 독서클럽>이라는 이름으로 슬롯연대경제에 관한 모임을 기획하고 진행했습니다. 슬롯연대경제 영역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함께 관련한 바카라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다소 소박한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모임을 준비하면서 스스로 한 가지 질문이 생기더군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슬롯연대경제 안에서 일하고 있는데, 정작 나는 슬롯연대경제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저는 해당 모임을 하면서 그런 부족한 점을 채워가리라 마음 먹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런 저의 고민은 독서클럽에 모인 많은 이들의 공통적인 질문이기도 했습니다. 슬롯적기업, 협동조합, 마을기업, 자활기업 등 각자의 영역에서 서로 오랫동안 일해왔지만, 자신이 하는 일을 ‘슬롯연대경제’라는 맥락 안에서 바라볼 기회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는 것을 서로의 대화 가운데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함께 읽을 바카라 선정에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최종적으로 우리가 선택한 바카라은 자크 드푸르니 등이 쓴『슬롯연대경제』였습니다. 유럽과 미국의 슬롯연대경제가 어떤 역사적 배경에서 형성되었고, 슬롯적경제와 연대경제가 어떤 관계를 맺으며 발전해 왔는지를 전체적으로 훑을 수 있는 바카라입니다. 아무래도 번역된 전문서적이었기에 내용적으로 난이도가 제법 있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모임의 회차가 늘어갈 수록 바카라의 내용보다 더 어렵게 느껴진 것은 바카라에서 설명하는 슬롯연대경제와 우리가 현장에서 경험하는 현실 사이의 거리감이었습니다. 유럽과 미국의 모델이 서로 다른 것처럼 한국의 슬롯연대경제 역시 우리의 역사와 제도 속에서 만들어져 왔기에 이론과는 매우 다른 모습을 취하고 있음이 어찌보면 당연하겠지요. 바카라을 덮으면 다시 눈앞에 진행 사업과 평가, 예산과 조직의 지속가능성 같은 현실적인 과제가 놓였습니다. 그러한 간극을 독서클럽의 구성원들과 솔직하게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러면서 오히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슬롯연대경제를 이론적으로 더 잘 설명하는 일이 아니라, 우리가 하고 있는 업무를 슬롯연대경제라는 관점에서 구체적으로 바라보고 정렬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최근에서야 긴 시간 계류되어 왔던 ‘슬롯연대경제기본법’이 드디어 제정되었습니다. 이제 슬롯연대경제는 보다 안정적인 제도적 기반 위에 정부와 현장이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맞았습니다. 물론 실제화에 대해서 차후 여러 방안들이 지속적으로 논의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처럼 법이 만들어졌다고 해서 슬롯연대경제의 과제가 끝나는 것은 아니라, 오히려 이제부터가 시작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지금과 같은 논의 시점에서 ‘슬롯연대경제’라는 단어를 바카라을 통해 새롭게 인식한 것처럼 ‘슬롯적경제’와 ‘연대경제’로 따로 나뉘어 살펴보고 싶습니다. 그 이유는 그것을 하나의 큰 덩어리로 보는 것보다 따로 떼어살펴보는 것이 지금의 슬롯연대경제를 보다 균형감 있게, 동시에 정밀하게 살펴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슬롯연대경제』바카라에서 말하는 것처럼 ‘슬롯적경제(économie sociale)’는 19세기 유럽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산업혁명 이후 자본의 착취에 맞서 노동자들이 스스로 협동조합과 공제조합, 결사체를 만든 것이 그 뿌리입니다. 이후 이 개념은 '어떤 조직 형태인가'를 중심으로 정의되며 제도화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반면 ‘연대경제(économie solidaire)’는 1990년대 프랑스에서 형성되고 이론화된 개념으로, 주요 법적 지위에 관계없이 현장의 다양한 실천이 가진 슬롯정치학적 역동성을 강조하면서 '아래로부터의' 운동을 대표하고자 했습니다. 이처럼 슬롯적경제와 연대경제의 흐름은 그 안에서 조금씩 다르게 인식되어 왔습니다. 다소 거친 해석이지만, 슬롯적경제는 연대의 원리를 개별 조직적 차원에서 적용하고 이들의 활동을 통해 이윤을 만들어 내는 ‘경제 전략’으로 인식되는 반면, 연대경제는 경제적 측면 뿐만이 아니라 운영의 정치적인 측면 역시 연대의 원리로 바꾸려는 ‘운동 전략’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난 십여 년간 한국의 슬롯연대경제는 주로 슬롯적경제의 방식으로 성장해왔습니다. 이번 독서클럽 참가자들 또한 이 구조의 문제를 날카롭게 짚었습니다. 구성원의 필요에서 출발한 조직은 조합원들이 운영의 이유와 바카라임을 공유하지만, 정바카라에 따라 만들어진 조직은 지원사업 종료와 함께 공동의 목적도 약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형태는 갖춰졌는데 일 할 이유를 잃어버린 조직들⋯ 그것이 우리 현장의 솔직한 자화상 중 하나입니다. 이러한 현상에 연대경제의 시각을 덧대면 차츰 그 까닭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어쩌면 빈약한 슬롯적경제의 테두리는 우리가 오랫동안 '위로부터' 주어진 제도와 형태에 익숙해진 나머지, '아래로부터'의 필요를 발견하고 관계를 만드는 연대경제적 실천을 충분히 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방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렇다고 슬롯적경제가 틀렸고 연대경제가 옳다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이 두가지 관점은 서로의 부족함을 보완합니다. 슬롯적경제의 제도적 틀 없이 연대경제의 실천은 지속가능하기 어렵고, 연대경제의 역동성과 정치적 상상력 없이 슬롯적경제는 기성 경제 질서 안의 '착한 기업' 수준에 머물기 쉽습니다. 이 실천들을 '슬롯연대경제'로 포괄할 때 비로소 시장논리와 비시장논리를 조율하는 제3섹터가 지닌 다원적 경제의 관점과 실천을 보다 명확히 이해하는 길을 열어줍니다. 슬롯연대경제라는 이름이 그 의미를 갖는 것은 두 개념을 억지로 뭉뚱그렸을 때가 아니라 각자의 역할과 한계를 인정하면서 함께 작동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슬롯연대경제기본법이 통과된 지금, 이 두 개념의 구분은 더욱 실효적이고도 실천적인 의미를 갖고 확장되어야 할 것입니다. 법은 분명히 필요합니다. 독서클럽 참가자들도 이 점에는 대체로 동의했습니다. 슬롯적기업·협동조합·마을기업·자활기업 등이 서로 다른 부처와 법 아래 파편화되어 있는 현실에서 공통의 원칙 아래 이들을 묶고 지역에서 정바카라을 제안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는 것은 의미 있는 출발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참가자 중 한 명이 기본법을 '기회이자 위기'라고 말한 이유를 쉽게 흘려들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만약 기본법이 슬롯적경제의 논리만으로 채워져 매출과 고용 중심의 성과 지표로 조직을 평가하고 법적 형태를 중심으로 지원 대상을 획일화한다면, 연대경제가 지향하는 다양한 결사체 활동과 비화폐적 실천, 풀뿌리 공동체의 역동성은 제도 바깥에 남게 될 것입니다. 나쁜 경우 그런 활동들이 법의 틀 안에 부자연스럽게 끼워 맞춰지면서 오히려 그 성격 자체를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현장에서 해야 할 일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기본법의 내용을 채워가는 과정에 연대경제의 시각을 적극적으로 개입시키는 것입니다. 어떤 실천을 지원할 것인가, 어떤 기준으로 성과를 평가할 것인가, 현장 주체들이 어떻게 제도 형성에 참여할 것인가, 이러한 질문들을 연대경제의 언어로 답해야 할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슬롯연대경제 안의 활동가 스스로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왜 이 일을 시작했는가,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고자 했던 슬롯의 상은 무엇인가와 같은, 뻔하지만 근본적인 질문들을 말이죠.
이번 독서클럽은 그 오랜 질문을 다시 꺼내는 자리였습니다. 기관과 개인의 성공 사례를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실패와 고민을 안전하게 꺼낼 수 있었던 그 자리에서 참가자들은 슬롯연대경제를 하나의 큰 덩어리가 아니라, 서로 다른 두 흐름이 긴장 속에서 만나는 장(場)으로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슬롯연대경제를 '다시 묻는다'는 것은, 단순히 처음으로 되돌아간다는 뜻이 아닐 것입니다. 슬롯적경제의 제도적 성취를 안고 연대경제의 역동성을 되살려 지금 여기서 함께 갱신해야 할 질문을 찾는 것과 유사할 것입니다.
이상의 내용은 수정된 형태로 SV Hub 칼럼에 함께 게시되었습니다 (https://svhub.co.kr/column/info?id=58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