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봄이 되면 뒷마당 작은 텃밭에 상추와 고추 모종을 심곤 했다. 올해는 아무것도 심지 않았다. 작년 여름엔 기온이 높지 않아서 고추가 잘 열리지 않기도 했고, 상추는 사람보다 토끼들이 먼저 다 먹어버리기 때문이다. 해서 올해 우리 집 텃밭에는 저절로 나온 들깨 몇 뿌리와 부추뿐이고, 나머지 반 이상의 땅이 텅 비었다.
그렇게 허전하게 봄을 보내다가 6월 말쯤, 집 앞 상가에서 팔다 남은 시들한 고추 모종을 두 개 얻어다 텃밭에 심었다. 가지에는 이미 어린 고추가 몇 개 달려있었다. 풋고추를 좋아하는 남편이 애지중지 심고, 물 주고, 아침저녁으로 들여다보며 흐뭇해한 것도 잠시, 불과 이틀 만에 어린 토끼에게 풋고추를 뺏겼다.
이 어린 토끼로 말할 것 같으면, 지난겨울 어미 토끼가 먹이를 구하기 위해 눈을 헤치고 나와 우리 집 뒷마당에 얼굴을 내밀었을 때 일부러 냉장고를 뒤져 사과와 당근과 시금치를 던져주며 삶을 독려했던 그 어미 토끼의 새끼렸다.
겨울 눈이 모두 녹고 봄이 되어 주먹만 한 새끼 토끼가 종종거리며 뒷마당에 나타났을땐 안타깝게도 토끼풀은 이미 내 손에 의해 모조리 제거된 후였다. 하루에도 여러 번 뒷마당에 주저앉아 잡초를 뽑으며 마음을 달래고 시름을 털어내는 내게 토끼풀은 그저 한낱 잡초에 불과했으니, 그것도 한 뿌리 잡아당기면 줄줄이 끌려 나오는 아주 재미난 잡초였던 것이다. 현재 우리 집 뒷마당은 잡초청정구역이다.
나는 토끼에게 먹이를 주었다가, 먹이를 빼앗았으며, 먹이를 빼앗긴 토끼는 내 남편의 먹이를 날로 먹어 치웠다. 고추를 뺏긴 남편의 허망한 표정이라니.
먹고 먹이고 먹히고...
이 무슨 가열찬 먹이사슬인가!
그래도 우리가 앞으로 주욱 같이 살아야 하는 이 시점에 나는 고민하는 것이다. 마당에 토끼풀을 그대로 놔둘 것인가? 아니면, 고추와 상추를 따먹는 즐거움을 포기할 것인가?
말도 안 통하는 토끼가족과 대화를 모색할 수도 없고, 참으로 난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