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테이블>을 보고
옆 테이블에서 남녀가 키스를 하고 있었다. 에이, 여기가 어디라고! 민망해 얼른 시선을 돌렸다. 그러면서도 힐끗 다시 보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예전에는 테이블마다 칸막이가 있는 곳이 있었다. 칸막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저마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었다. 조금은 은밀한 그곳에서 나는 특별한 기억이 없다. 기회가 없었던 건지, 있었는데 기억을 못 하는 건지.
그때도 지금도 카페에 들어서면 자리부터 둘러본다. 아무 데나 앉으면 될 일이지만 그러고 싶지는 않다. 가능하면 구석진 곳이 좋고, 창밖으로 강이나 나무 등의 풍경이 보이면 더 좋다. 옆 테이블과 다닥다닥 붙은 자리는 피하고 싶다. 사람들 눈에 잘 띄는 가운데 자리도 마음이 가지 않는다.
자리를 안내받는 건 별개의 문제다. 빈 테이블이 많은데 직원이 특정 자리를 가리키면 괜히 다른 곳에 앉고 싶어진다. 안내가 늘 싫은 건 아니다. 도무지 자리를 고르지 못하는 날에는 누군가 정해주었으면 싶기도 하다. 요즘은 편하신 곳에 앉으라고 말하는 곳도 많다.
예약석은 이상하게 탐난다. 다른 테이블과 별다를 것도 없는데 예약 팻말이 놓여 있으면 괜히 더 좋아 보인다. 특히 창가의 널찍한 자리라면 아깝기까지 하다. 남의 떡이 커 보이는 것처럼.
그래서였을까. 영화 《더 테이블》을 보면서도 사람들의 이야기 못지않게 그들이 앉은 자리가 신경 쓰였다.
영화에서는 하루 동안 한 카페의 창가 테이블에 네 쌍의 사람들이 차례로 앉는다. 헤어진 연인도 있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저마다 다른 사연을 가지고 왔다가 떠난다.
그런데 왜 한결같이 같은 자리에 앉을까. 카페에는 다른 테이블도 있을 텐데.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구석을 원할 수도 있고, 출입문에서 멀리 떨어진 자리를 좋아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나의 테이블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려는 영화의 설정인 줄 알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같은 테이블에 앉았다고 해서 그들이 찾는 자리까지 같은 것은 아니었다. 가짜 모녀로 만난 그녀들은 뜻밖에도 서로에게서 자기 자리를 발견했다. 자기 집으로 가자던 두 남녀는 이제 함께할 자리를 찾을지도 모른다. 반면 헤어진 옛 연인에게는 다시 앉고 싶어도 이미 때가 지나버린 듯했다.
영화의 마지막 이야기에서 결혼을 앞둔 여자는 옛 연인에게 말한다.
“왜 마음 가는 길이랑 사람 가는 길이 다른지 모르겠어.”
마음이 향하는 곳을 알면서도 다른 길을 걸어야 하는 일이 사랑뿐일까. 살다 보면 마음이 떠난 자리를 계속 지켜야 하는지 고민할 때도 있다.
오래 앉아 있었다고 해서 그 자리가 꼭 내 자리는 아닌 모양이다. 익숙한데 문득 낯설 때가 있다. 오랜 시간 봐 왔기에 서로를 제법 이해한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아주 기본적인 데서부터 마음이 어긋나기도 한다. 그런 일이 거듭되면 내 자리라고 믿었던 곳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카페에 들어서면 오늘도 빈 테이블부터 살필 것이다. 구석이 좋을지, 창가가 좋을지 한참을 두리번거리겠지.
나는 어떤 자리에 앉고 싶은 걸까.
아니, 지금 앉아 있는 자리가 여전히 내가 원하는 자리이기는 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