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에는 모두 동의하는데 실행 단계에서 갈등이 시작되는 이유
아래와 같이 ‘강론’을 모두 ‘각론’으로 통일해 수정하면 된다.
회의에서 이런 장면을 자주 본다.
“우리도 변화해야 합니다.”
“고객 중심으로 일해야 합니다.”
“부서 간 협업이 필요합니다.”
“성과보다 성장과 육성이 중요합니다.”
이런 총론에는 대부분 동의한다. 누가 공개적으로 반대하겠는가.
그런데 회의가 구체적인 실행방안으로 들어가면 상황이 달라진다.
“그럼 고객 불만 처리는 어느 부서가 맡습니까?”
“협업을 위해 기존 업무를 누가 내려놓습니까?”
“성과평가에서 개인성과와 공동성과의 비중은 어떻게 나눕니까?”
“육성 대상자는 누가 선정하고, 업무 공백은 누가 감당합니까?”
이 순간부터 의견이 갈라진다.
앞에서는 같은 말을 하던 사람들이 뒤에서는 서로 다른 주장을 한다. 누군가는 변화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기존 방식의 유지를 주장하고, 누군가는 협업을 말하면서도 자신의 부서 권한이 줄어드는 것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 현상을 흔히 말하는 총론과 각론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총론은 원칙과 방향에 대한 동의다. 각론은 그 원칙을 실제 업무와 자원, 역할, 바카라임, 보상에 적용하는 과정이다.
총론에서의 동의는 가치에 대한 동의이고, 각론에서의 대립은 이해관계와 실행방법에 대한 대립이다.
총론은 추상적이기 때문에 동의하기 쉽다.
“조직은 고객 중심이어야 한다”는 말에는 반대하기 어렵다. 하지만 고객 중심을 실천하기 위해 영업부서가 생산부서의 일정을 조정해야 한다면 문제가 달라진다. 생산부서는 납기와 원가를 걱정하고, 영업부서는 고객관계와 매출을 걱정한다.
두 부서 모두 회사의 성과를 말하지만, 성과를 바라보는 기준이 다르다.
총론에서는 조직 전체의 관점으로 말한다. 각론에서는 각자가 담당하는 업무와 바카라임의 관점으로 판단한다.
이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실행 단계의 반대를 개인의 이기심이나 변화 저항으로 해석하게 된다. 그러나 실제로는 각자가 자신에게 주어진 바카라임을 지키기 위해 다른 판단을 하는 경우가 많다.
“협업”이라는 단어를 예로 들어 보자.
경영진에게 협업은 부서 간 장벽을 낮추고 전체 성과를 높이는 것이다. 영업부서에게 협업은 생산부서가 고객 요구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일 수 있다. 생산부서에게 협업은 영업부서가 생산 가능성을 고려해 약속하는 것일 수 있다.
모두 협업을 말하지만, 각자가 기대하는 행동은 다르다.
“성과 중심으로 평가하자”는 말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에게 성과는 매출과 이익이다. 다른 사람에게 성과는 업무 품질과 납기 준수다. 또 다른 사람에게 성과는 팀원의 성장과 문제 예방이다.
단어에 대한 동의가 행동에 대한 동의를 의미하지 않는 이유다.
따라서 총론을 각론으로 옮길 때는 추상적인 단어를 그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협업을 강화하자”가 아니라 “고객 납기 변경이 발생하면 영업·생산·품질 담당자가 당일 안에 공동으로 의사결정한다”고 정의해야 한다.
“바카라임감을 높이자”가 아니라 “문제 발생 시 담당자, 최종 승인자, 지원부서를 구분한다”고 정리해야 한다.
각론에서는 가치보다 행동을 정의해야 한다.
모두가 혁신에 동의하지만, 혁신으로 인해 추가되는 업무를 자신이 맡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협업을 강화하려면 회의가 늘어날 수 있다. 고객 대응을 빠르게 하려면 기존 승인절차를 줄여야 한다. 교육을 강화하려면 교육시간만큼 현장 업무를 조정해야 한다.
총론에서는 이러한 비용이 보이지 않는다. 각론에 들어가면 시간, 예산, 인력, 권한의 문제가 등장한다.
한 기업에서 “업무 표준화를 추진하자”는 데에는 모두 동의했다. 하지만 표준안을 작성하는 단계에서 갈등이 시작됐다. 현장에서는 “실제 업무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작성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관리부서는 “전사 기준에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쟁점은 표준화의 필요성이 아니었다. 누가 작성하고, 누가 승인하며, 기존 방식과 충돌할 때 누가 최종 결정하는지 정하지 않았던 것이 문제였다.
총론과 각론 사이의 갈등을 줄이려면 원칙뿐 아니라 원칙을 실행하는 데 필요한 비용과 부담의 분담방식까지 합의해야 한다.
각론에서 가장 큰 갈등은 바카라임은 늘어나는데 권한은 주어지지 않을 때 발생한다.
“고객 만족을 높이라”고 하면서 고객에게 제공할 수 있는 보상 기준은 정해주지 않는다. “납기를 지키라”고 하면서 생산 우선순위를 조정할 권한은 주지 않는다. “팀원을 육성하라”고 하면서 교육시간이나 업무조정 권한은 주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는 총론에 동의했던 사람도 실행 단계에서 방어적으로 변한다.
“취지는 이해하지만 제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바카라임은 제가 지는데, 권한은 다른 부서에 있습니다.”
“좋은 방향인 것은 알지만 현실적으로 제가 감당할 수 없습니다.”
이 말은 변화에 대한 반대라기보다 실행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았다는 신호다.
각론에서는 반드시 세 가지를 함께 확인해야 한다.
누가 바카라임지는가.
무엇을 결정할 수 있는가.
필요한 자원은 누가 제공하는가.
바카라임과 권한, 자원이 연결되지 않으면 총론은 구호에 머물게 된다.
경영진은 장기적인 경쟁력을 바라본다. 현장관리자는 이번 달의 납기와 생산량을 바라본다. 실무자는 오늘 처리해야 할 업무를 바라본다.
경영진이 “장기적으로는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말할 때 현장에서는 “이번 주 납기를 어떻게 맞출 것인가”가 더 급하다.
두 관점 중 어느 하나가 틀린 것은 아니다. 다만 시간축이 다르다.
장기 목표만 강조하면 현장의 부담을 외면하게 되고, 단기성과만 강조하면 변화의 필요성을 놓치게 된다.
따라서 실행계획에는 장기 방향과 단기 행동을 함께 담아야 한다.
“올해 안에 업무 프로세스를 혁신한다”는 목표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번 달에는 반복 승인업무 한 가지를 선정하고, 다음 달에는 시범부서에서 적용하며, 분기 말에는 성과와 문제점을 검토한다”는 식으로 단계화해야 한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의견 대립을 찬성과 반대의 구도로 보지 않는 것이다.
“변화에 찬성하는가, 반대하는가”라고 물으면 사람들은 자신의 입장을 방어한다. 대신 다음과 같이 질문해야 한다.
“이 원칙을 실행하려면 무엇이 달라져야 하는가.”
“실행 과정에서 가장 큰 부담은 무엇인가.”
“그 부담을 줄이기 위해 필요한 권한과 지원은 무엇인가.”
“성공 여부는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 것인가.”
이 질문을 사용하면 논의의 초점이 태도에서 조건으로 이동한다.
다음으로 총론의 문장을 각론의 문장으로 바꾸어야 한다.
“소통을 강화한다”는 문장은 “매주 수요일 오후에 부서 간 진행상황과 장애요인을 공유한다”로 바꾼다.
“고객 중심으로 일한다”는 문장은 “고객 불만이 접수되면 24시간 안에 담당부서와 해결방안을 확정한다”로 바꾼다.
“성과를 공정하게 평가한다”는 문장은 “평가항목별 기준과 증빙자료를 사전에 공개한다”로 바꾼다.
이처럼 추상적인 원칙을 관찰 가능한 행동으로 바꾸면 의견의 차이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한 번에 완벽한 합의를 만들려 하지 않아야 한다.
각론의 모든 내용을 처음부터 합의하려 하면 회의는 길어지고 갈등은 커진다. 핵심 쟁점을 하나 정하고, 일정 기간 시범 적용한 뒤 결과를 확인하는 방식이 현실적이다.
중요한 것은 모두가 같은 생각을 갖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공동의 기준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다.
첫째, 우리 조직이 동의한 총론은 실제 행동으로 번역되어 있는가.
둘째, 실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과 부담을 누가 감당할지 정해져 있는가.
셋째, 바카라임을 맡은 사람에게 실제로 결정할 권한과 필요한 자원이 주어져 있는가.
이 세 가지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총론은 언제든 각론에서 무너질 수 있다.
총론과 각론의 차이는 말과 행동의 차이가 아니다. 방향에 대한 합의와 실행조건에 대한 합의가 다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조직에서 진짜 합의가 이루어졌는지는 회의에서 고개를 끄덕였는지가 아니라, 구체적인 역할과 기준을 정하는 순간 확인된다.
총론에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각론에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할지 합의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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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의 **“총론에서는 동의하지만, 강론에서는 왜 대립할까”도 “총론에서는 동의하지만, 각론에서는 왜 대립할까”**로 함께 수정했고, 해시태그도 #총론과각론으로 통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