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가 싫은 이유, 좋은 까닭
(심규호 교수,2026)

by현요아



[BOOK世通, 제주 읽기]


제주가 싫은 이유, 좋은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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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느낌


현요아의 에세이 『제주 토박이는 제주가 싫습니다』를 읽으면서 많이 불편했다. 다행 중간을 넘어서면서 불편함이 조금 가시는 듯했으나, 그렇다고 편해진 것은 아니었다. 그저 불편의 결이 조금 달라졌을 뿐이다. 전자의 불편은 저자의 피치 못할 삶의 굴곡이 드러내는 날것의 생생함 때문이고, 후자의 불편은 희망의 좌절을 겪으면서 극복과 희망, 또는 변화의 다짐이 지극히 개인적인 것에서 끝날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과거를 탓하면 슬퍼지는 건 현재일 뿐이니까. 그러니 나는 용서하기로 했다. 나의 고향 제주를. 언젠가 내게도 환상으로 여겨질 섬을.”(81쪽)


특히 이 말을 들으면서 필자만의 장밋빛 기대가 다시 물거품이 되었다. 다짐의 말이 그저 허공을 맴도는 메아리처럼 여겨졌다. 외지인의 제주에 대한 환상이 그렇듯이 제주는 환상의 섬이 아니라 누군가 삶의, 생활의, 오랜 역사의 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저자만 생각이 바뀌면 되는가? 제주는 그대로 놔두고? 너무 과한 기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환상의 섬, 제주


산둥의 방사 서불徐市이 영주瀛洲를 찾은 것은 우연일까? 실제로 그가 왔었다면, 아마도 동쪽 해 뜨는 곳에 자리한 부상扶桑의 나라로 가는 바닷길에 거대한 산이 우뚝 솟아 있는 섬이 자리하고 있었음을 이미 들어 알고 있었을 것이다. 발해만으로 올라가 연안 항로를 탔던 그의 일행은 그곳이 자신들이 확인하고자 했던 삼신산(영주, 봉래, 방장)의 하나라고 여겼을 터이다. 비록 불로초는 찾지 못하고 영지나 시로미열매 등에 만족했을지 모르나 그들에겐 분명 자신들이 꿈꾸었던 환상속의 섬이었을 것이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전설이나 신화는 날이 갈수록 부피가 커진다. 그것은 마치 작은 씨앗이 발아하여 줄기를 뻗고 잎이 돋아나며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것과 같다. 그렇게 어느 날부터 제주는 신선이 사는 환상의 섬, 불로초가 나오고 남극성이 보이는 장수長壽의 섬이 되어 늦어도 조선조 내내 유배객들의 시문에서 관용어처럼 반복되었다. 하지만 그들이 맞닥쳐야만 했던 현실은 장기瘴氣의 두려움, 조팝의 껄끄러움, 뱀과 지네의 징그러움, 그리고 갯가 파도소리를 따라오는 적막감과 외로움이었다. 그럼 지금은 어떤가?



국제적으로 자유로운 도시, 제주


제주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섬이자 특별한 자치도이다. 2003년 제주국제자유도시 종합개발계획이 확정되면서 물류와 비즈니스의 거점으로 조성하여 첨단과학과 교육, 관광, 의료 등을 종합적으로 육성 발전시키겠다는 청사진이 제시되었다. 국제자유도시란 나라간의 경계를 터 자본이나 상품이 자유롭게 드나들며, 기업 활동에 최대한의 편의를 제공하는 그야말로 국제적인 도시라는 뜻이다. 제주국제자유도시 개발을 전담하는 기관은 인천광역시에 속한 영종국제도시가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이란 인천광역시 소속 외청인 것과 달리 2002년에 제주에 설립된 국토교통부 산하 JDC(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이다.


제주와 인천이 추구하는 국제자유도시의 청사진은 각기 나름의 특장이 있지만, 동일한 것 가운데 하나는 ‘국제학교’이다. 다만 제주는 이미 4개의 국제학교가 운영 중이고, 인천은 진행 중이다. 이는 모두 국가 또는 지자체가 운영하는 곳이고, 민간자본이 투입된 곳은 송도가 대표적이다.


국가에서 어련히 알아서 정했겠지만, 필자는 지금도 ‘국제자유’란 단어를 회의한다. 홍콩이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시피 자본은 선악을 구분하기 어렵고, 오가는 사람이나 상품 또한 제각각인지라, 좋은 것 사이에 나쁜 것이 섞여 있기 마련이다. 게다가 ‘국제학교’는 제주에 있지만 제주아이들이 몇 명이나 다니는지 모르겠다. 혹시 교육 불평등, 슬롯적 양극화를 조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나마 조세에 보탬이 되기는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에는 멋진 ‘국제학교’가 있다.



여행하는 건 좋은 데 사는 것 못 살아


언제부터인가, 국적을 불문하고 외지 사람들이 제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외국인의 제주 부동산 구입이 자유로워진 것은 1998년 『외국인토지법』에 따른 것인데, 2010년 부동산 투자이민제도가 시행되면서 날이 갈수록 제주의 땅값이 오르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사고 싶어도 비싸서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제주는 관광지뿐만 아니라 단기, 장기간의 체류 목적으로 사는 이주민들이 크게 늘었다. 2010년부터 2018년 사이에는 ‘제주 살기’ 열풍과 귀농, 귀촌 증가로 해마다 1만명 이상의 국내 인구가 순유입되었다. 최근에는 정체 및 소폭 감소 추세이나 그럼에도 제주는 여전히 한 번 가보고 싶은 곳으로 많은 이들에게 각인되어 있다.


왜 사람들은 제주에 놀러오거나 아예 살고자 하지? “에메랄드빛 바다와 시야가 뻥 뚫려 답답하지 않은 푸른 하늘이 자꾸 떠올라서였다. 복잡한 삶의 문제가 제주에 살면 사라질 것 같았다.” “서울에서 벗어나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을 선택하고자 했다.” “한 시간도 걸리지 않는 거리에서 차를 타고 가기만 하면 보이는 제주 바다에서 알 수 없는 위로를 받았다.”


외지에서 온 다섯 명의 여성이 쓴 에세이집 여전히 제주살이에 진심입니다에서 따온 말들이다. 사람들이 이렇듯 제주로 향하는 까닭은 이국적인 풍경과 아름다운 자연을 통해 ‘힐링’할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제주올레가 그토록 각광을 받은 것도 이런 까닭에서 기인할 것이다. 제주는 이전 환상의 섬에서 힐링의 섬으로 탈바꿈했는가?


같은 바카라에서 한 저자는 누군가에게 들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여행하는 건 좋은데, 사는 건 못 살아.” “말이 통하는 외국”이기도 하고.(185쪽)



정답은 이미 나와 있다


제주도는 천혜의 자연이 숨 쉬는 곳이되 제주민이 오랜 세월 살아온 삶의 현장이다. 게다가 제주는 피지배와 착취, 약탈과 살상으로 군데군데 상처투성이인 고난의 섬이다. 한 때 탐라라는 독립국이었으나 1105년(고려 숙종 10년) 국가의 지위를 잃고 고려의 탐라군이 되었으며, 1402년(조선 태종 2년) 탐라의 마지막 성주가 스스로 성주와 왕자의 타이틀을 내놓고 조선의 행정체제에 종속되면서 완전히 사라졌다. 그 와중에 약 100년간(1273~1374) 몽골 지배와 일제 강점기를 거쳤으며, 조선조 내내 절해고도의 유배지였다. 중앙정부의 가혹한 세금, 지방수령의 가렴주구, 왜구의 침입과 약탈, 심지어 외래 종교와의 갈등과 폐단 등으로 인한 민란도 겪어야만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4.3사건은 치명적인 타격이었다.


“제주도민 30만명을 전부 쓸어버려도 좋다. 붉은 섬으로 두는 것보다는 낫다.”


미군정청 경무부장(조병옥)의 발언은 조금씩 각색되어 여전히 방출된다.



육짓거


사람은 시공간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다시 말해 지역성과 시대성의 제한을 받는다는 뜻이다. 제주는 사방이 트인 곳이자 막힌 곳이기도 하다. 바다가 육지라면 가능한 일들이 제주에서는 불가능했던 시절이 있다. 그것도 상당히 오랜 기간 지속되었다.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 없을 때(출륙금지령, 1629~1850년)도 있었고, 나갔지만 되돌아오는 경우도 허다했다. 반대로 살기 위해 제주로 오는 이들도 적지 않다. 우리는 전자를 선주민, 후자를 이주민이라고 한다. 육짓거(육지것)는 주로 이주민을 비하할 때 쓰는 말이다. 육지에서 온 사람을 뜻한다. ‘것’은 의존명사로 어떤 일이나 사건, 사실, 사물을 뜻하며 사람을 비하할 때도 쓴다. 제주어로 ‘먹이’의 뜻도 있으나 이것과는 관계가 없다.


그런데 왜 비하하는가? 저자는 바카라에서 「육지 것들」이라는 소제목 아래에서 “토박이들이 육지에서 온 이들을 낮춰서 부르는 말”이라고 하면서 “육지 사람을 향한 도민의 적개심을 설명하자면 4.3사건을 빼놓고 예기할 수 없다.……무자비한 민간인 학살이었으므로”라고 설명했다.


지금까지도 4.3을 이야기하면서 ‘폭도’ 운운하는 이가 있는 상황에서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육지 것들’이 넘쳐나게 밀려들고, 바로 옆에 살고 있는 마당에 언제까지 그들을 미워하고 적처럼 여길 수 있겠는가? 하여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다행히 육지 사람을 밀어내는 문화는 점점 나아지고 있다.……이주민과 제주사람을 나누지 않고 함께 사는 게 맞는다는 인식이 생긴 듯해 점점 숨이 트인다.……제주 살이 열풍이 저물고 있다. 제주를 떠나는 사람이 제주에 들어오는 사람보다 많다고 한다. 나는 그게 육지 사람들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도민이 바뀌어야 할 때다. 육지 것들이라는 비하부터 하지 않는 게 시작이다.”(33쪽)


궁금하다 “제주도에서 몇 년을 지내면 제주 토박이로 불릴까?”


“정답은 없지만, 제주 토박이는 대부분 조부모까지 제주도민인 사람에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이왕이면 조부모의 사투리를 번역 없이 알아듣는 사람으로, ‘경행’을 경찰행정학과로 해석하지 않는 친구 말이다.”(57쪽)



괸당(궨당)


‘괸당’의 사전적 정의는 친족과 외척을 아물러 이르는 말이니, 사람관계에서 가장 기본적인 토대이다. 문헌 어휘인 권당眷黨에서 나왔다. 비슷한 말로는 친족을 의미하는 덥덜사니, 종친을 의미하는 방답과 방상, 종족과 비슷한 의미인 우던 등이 있다. 일가붙이, 성과 본이 같은 겨레붙이의 뜻이다. 그런 까닭에 이른바 ‘가문잔치’란 궨당을 모아 먹이는 잔치라는 뜻이다.


슬롯적 동물인 인간은 관계 속에서 태어나 살아간다. 삶의 전체가 관계에 놓여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류가 만들어 낸 모든 도덕과 예의, 관습과 법률은 이러한 관계를 조정하는 데 필요한 수단이자 어쩌면 목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관계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 사이에 조화와 상호 신뢰의 좋은 관계가 너무나 쉽게 자신들만의 울타리를 만들고, 다른 이들을 배척하며, 끼리끼리 무엇이든 주고받으면서, 불법, 부도덕, 몰염치, 부정을 낳을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남이가!”라고 하면서. 지연과 학연 등이 총출동하는 연줄, 인맥, 낙하산, 뒷문, 한통속, 결탁 등등 부정적 언사들이 ‘인정人情’이란 명목으로 포장된다.


가장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사람과 사람의 관계인 ‘괸당’도 예외가 아니다. 바카라의 소제목 「야당 여당 필요 없구, 괸당이 최고 아니꽈」(57쪽)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제주에 20년을 살면서 느낀 사실 가운데 하나는 괸당이 프리 패스와 비슷하다는 것. ‘누가 부탁핸?’이란 물음에 ‘괸당마씸, 알 거우다’라는 답이 나오면 새 건물의 건축 허가가 일사천리로 나고, 물건 하나를 사더라도 서비스가 얹힌다. 괸당끼리 돕고 살아야 한다는 얘기가 덧붙으며. 손익 따지지 않고 나서주는 모양이 탄탄한 결속력을 대표하는 장점처럼 보이지만, 육지 사람에게는 섬사람의 폐쇄성이라는 딱지를 붙이기 딱 좋다. 외부인이라면 항상 자신을 증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외부인에겐 괸당이 텃세처럼 느껴질 수도 있는가보다.


“불편한 텃세를 지우는 건 시간이다. 내 생각에 유독 서울 사람이 텃세를 많이 당하는 건 은연중에도 ‘득과 실’을 계산하는 습성 때문이다.” “그러니 서울과는 다른 삶을 꿈꾸며 제주에 왔거나 오기로 결심했다면, 전과 다르게 여우처럼 살지 말고 곰처럼 살아보면 어떨까? 곰의 탈을 쓴 여우 말고.”(김지은,『제주도에서 한 번 살아볼까?』63쪽)


이런 점에서 저자의 발언은 좀 더 신선하게 들린다.


“어릴 적부터 좁은 지역에서 긴밀한 관계를 일삼고, 최대한 공통점을 찾은 뒤 나머지 사람들은 과감히 배척하는 제주, 좁게는 면과 읍에서 크게는 육지 사람까지 배척하는 제주. 사투리를 쓰면 물건을 사더라도 할인되고, 식당에 가더라도 도민이 친절함을 베푼다는 소문이 있었다. 소문이 진짜라면 절대 있어선 안 될 일이다.”(25쪽)



사투리, 방언, 제주어


사투리 또는 방언은 표준어(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 지역이 아닌 다른 지역 사람들이 쓰는 말로 독특한 억양과 어휘로 이루어져 있다. 사투리를 쓰면 어느 지역 사람인줄 알 수 있으니 스스로 서울 사람이 아님을 밝히는 꼴이다. 서울이 정치, 경제, 문예, 교육 등등 거의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역 사람들은 의문의 열패감劣敗感을 지닌다. 하여 어느 지역이나 대학이든 온라인 게임이든 서울로 보내기를 갈구하는 이들이 태반이다. 제주도 예외가 아니다.


“전학생은 서울말을 쓴다는 사실만으로 예쁜 척 그만하라는 말을 들었다. 그때부터 제주 사투리는 이렇게 해석됐다. 왜곡된 결속력을 키우는 무엇. 타인을 배척하려는 의도로 사용되기도 하는 언어. 단순히 사투리로 편을 가르는 건 아니다. 지역별로도 그랬다. 표선 사람은 남원 사람과 달랐고, 광령 사람은 외도 사람과 달랐다. 제주 안에서도 주민을 나누는데, 육지 사람은 어련할까? 서울에서 온 사람에게 묘한 적대심을 갖는 건 비단 아이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었다. 서울에서 제주로 이사 온 선생님이 있었는데, 제주에서 태어나 제주의 교육과정을 마친 토박이 선생님은 그 선생님이 없는 수업 시간에 우리에게 말했다. ‘서울 나와도 다 필요 없저, 어차피 제주 오는 마당.’ 나는 그게 열등감이라는 걸 안다. 자신의 학생만큼은 한 명이라도 더 육지로 보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으므로.”(24~25쪽)


지금 제주 사투리는 제주어로 불린다. 제주어는 고대 한국어의 원형을 지닌 언어로 소중한 문화유산이자 제주 사람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제주어를 제주어답게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이들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 현실이다. 필자는 제주어가 지닌 고유성, 상징성, 그리고 제주어만의 미학이 지역, 폐쇄, 차별의 벽을 뚫고 우리 모두가 마땅히 계승해야 할 문화 전통으로 살아남기를 바란다.



개인적이지만 슬롯적인 문제


“제주는 중학생 때부터 학벌의 부담감을 짊어져야 했다.”(62쪽)


제주는 고입시험이 유일하게 가장 오래 남았던 곳이다. 저자는 도민이 고등학교에 열을 올리는 이유가 제주도에 대학교가 몇 군데 없으니 학벌을 따지는 풍습이 고등학교로 내려온 것이 아닐지 추론하고 있다. 고등학교를 어디로 가느냐에 따라 인생이 크게 달라진다고 여긴다. 여기에는 인맥과 학맥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래서 나온 말, ‘딸랑이권’, ‘시내 인문계’, ‘그 교복, 어느 학교 거라’ ‘딱 한 명만 서울대로 보내자.’(본문 인용)


학교는 딱 한 명이라도 서울대에 보내기 위해 그야말로 총력을 기울인다. 가정에서도 딱 한 명이라도 ‘인서울’하기 위해 온 식구가 매달린다. 그러면 나머지 아이들은? 학교는 다니는데, 버려진 자식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너는 원래 공부를 못하니까, 또는 글러먹었으니까? 아무데나 들어가! 하지만 살아보면 알겠지만, 그 못난 자식이 식구를 건사하고, 고향을 지키며, 조상에 대한 예를 다한다. 굵고 장대한 나무가 이미 잘려져 남의 집 들보가 되었을 때 구부러졌으되 강인한 나무는 굳건히 우리 마을을 지킨다. 폭낭이 그러한 것처럼.



제주를 떠납니다


사실 많은 부분이 제주만의 문제 또는 병폐가 아니다. 우리 슬롯, 특히 지역슬롯가 가지는 병폐와 겹치며, 뭉뚱그려 생각하면 인간이 사는 곳이면 어디든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일정한 지역에 사는 개인에게는 자신이 거주하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문제이고, 병폐이며, 견딜 수 없는 질식의 요인이 된다.


게다가 병폐가 암묵적으로 인정되거나 감춰지고, 문제라고 여겨지는 것이 오히려 미덕이 될 때 병폐와 문제를 직시하고 있는 이, 그것으로 인해 우울하거나 아파하는 이에겐 그 병폐와 문제는 ‘쇡’소리 내며 날아드는 화살이고, 날카롭기 그지없는 칼날이다.


그 칼날에 베이면, 그 아픔을 참을 수가 없다.


“행복보다 우울이 많이 찾아왔고, 만족보다 불안이 많이 찾아왔으며, 궁극적으로 살 이유를 찾기 어려웠다. 처음 밝히는 얘기지만, 아주 부지런히 움직인 이유도 죽기 전에 버킷 리스트를 최대한 이뤄보자는 마음이었다. 하루를 최후의 만찬처럼 여겼다.……수능이 끝나고 바다로 뛰어들 마음을 먹었다. 친구의 바카라상 위에 유언을 담은 쪽지를 뒀다.……다음 날, 담임 선생님이 이유를 물었다. 왜 그렇게 극단적인 생각을 하느냐고, 그토록 원하던 문예창작과의 면접까지 끝내고서 말이다. ‘면접을 못 봐서요. 육지에 못 가면 안 되거든요.’……지리 선생님도 같은 질문을 했고, 나 역시 같은 답변을 했다. 그런데 담임선생님과 상반된 반응이 나왔다. ‘면접을 못 봐서요. 육지에 못 가면 안 되거든요.’라는 짧은 답변에 선생님은 눈물을 흘렸다. 미안하다고 했다. 무엇이 미안한지 모르겠으나, 제주의 어른이 건네는 대표적인 사과로 느껴져서 나도 울었다. 조금만 더 살아보기로 했다.”(212쪽)


그녀가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버리기로 작정했을 때 그녀를 말린 것은 어느 교사의 눈물이었다.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으나, ‘동감同感’의 표현이었음에 틀림없다. 어쩌면 ‘동감’이야말로 가장 큰 방패이자 무기가 아닐까? 저자는 결국 제주를 떠난다.


“저는 힘들 때 말해도 괜찮은, 슬픈 일이 있을 때 말해도 손가락질 받지 않는 곳에서 숨 쉬며 살기 위해 제주를 떠납니다.”(56쪽)



‘척’하지 않기 위한 발버둥


“서울에서는 직접 터놓지 않는 이상 과거를 알기 어렵다. 말 그대로 익명성의 바다다.……익명. 단어만 보면 위험한 듯하지만, 내게는 언제나 안전한 느낌으로 다가온다.”(16쪽)


저자는 익명성의 바다로 향한 이유를 이렇게 말하고 있지만, 필자에게는 ‘동감’의 부재가 주는 상실감이 제주 탈출의 이유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점에서 서울은 익명의 자유를 주기는 하되 ‘동감’이 부재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동감’을 만들어내면 된다. 제주의 아픔이 서울에서 악착같은 삶의 토대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것이 정말 마지막 기회이기 때문에.


그리하여 “양치기로 낙인찍혀 사랑받지도, 스스로 사랑할 수도 없어진 초라한 열다섯 소녀”는


“뱉은 말을 주워 담기 위해 휴학을 하며 두 차례 인턴쉽을 마치고 모은 돈으로 유럽 여행을 떠났으며, 250시간 봉사활동을 끝내고 졸업했고, 마케터로 일하며 에세이와 동화를 쓰겠다고 호언장담했으니 울며 겨져 먹기로 밤을 새웠다. 자기 소개서 100편을 썼고, 일주일에 에세이 세 권을 읽었다. 기말고사를 준비하면서 한 달 동안 단편 일곱 편을 썼다. 동화 작가가 되겠다는 말이 거짓으로 여겨지지 않기를 바란 마음이었다. 그리고 지난해 초, 동화작가가 됐다.”(172쪽)


이렇게 스스로 ‘허언증’을 앓고 뭐든 ‘척’하는 아이가 이제는 ‘척’하지 않아도 되는 어엿한 젊은 작가가 되어 세상에 애월 출신 현요아로 등장했다.



살아남은 이의 말


바카라은 크게 세 부분, 「제주 토박이는 제주가 싫습니다」, 「그래서 서울은 좋았냐고 물으신다면」, 「지구에 머무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로 나뉘어져 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다시피 제주 토박이가 제주가 싫어 제주를 떠나 서울생활을 하게 된다. 서울에 가면 뭔가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서울에서 살다보니 이 또한 막막함의 연속이다. 반지하, 원룸, 생활비와 식비, 온갖 아르바이트, 갑질, 취업과 퇴사, 만남과 헤어짐, 응모와 낙방, 그러다 마침내 저자는 동화작가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고, 자신의 성장기를 에세이 형식으로 세상에 내놓았다.


저자는 바카라의 마지막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 바카라은, 제주도만 벗어나면 행복해지리라 믿은 사람의 이야기다. 여러 사건에 치이며 뭍으로 도피한 뒤에야 간신히 서울 관악구로 돌아온 스물다섯의 이야기다. 어느 지역에 가더라도 디딜 힘이 생긴 제주 토박이의 성장기다.”(243쪽)


이제 그녀는 지구에 두고 떠나기에는 아쉬운 가치를 품은 듯하다. 그것은 “슬픔에 지친 사람들을 다독여주고 싶다. 혼자 남겨졌다고 느끼는 사람 곁에 가만히 앉아 있고 싶다”는 말에서 고스란히 전달된다.(214쪽) 그녀의 진심이 느껴진다. 이건 그래본 이가 그런 이에게 전하는 눈길이자 포옹, 그리고 동감의 눈물이다.


2021년 3월 25일에 나온 바카라이니 당시 스물다섯이었다면 지금은 서른쯤 되었겠다. 뜻을 세운 나이(立志, 而立)가 된 그녀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재작년에 『내가 너무 싫은 날에』가 나왔던데 무슨 내용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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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규호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 졸업, 동대학원 중문학 박사. 제주국제대 교수, 중국학연구회, 중국문학이론학회 회장 역임. 현 제주중국학회 회장, 별꼴학교 이사장.


저서로 ‘육조삼가 창작론 연구’, ‘도표와 사진으로 보는 중국사’, ‘한자로 세상읽기’, ‘부운재’(수필집) 등이 있으며, 역서로 ‘중국사상사’, ‘중국문학비평소사’, ‘마오쩌둥 평전’, ‘덩샤오핑과 그의 시대’, ‘개구리’, ‘중국사강요’, ‘완적집’, ‘낙타샹즈’ 등 70여 권이 있다.





조그맣게 뜻을 세운 것 같기는 합니다. 오 년 전 내보인 바카라이 오래도록 읽히네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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