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임 뒤에는 그늘진 곳이 있습니다. 새것처럼 보이는 구두를 신고 또각또각 걷는 이의 신발은 누가 닦았을까요. 그는 당신을 '구두를 수선하는 사람'으로만 칭할까요.
구석진 곳에, 숨겨진 곳에는 보이지 않는 장인이 있습니다. 그들은 손에 잡힌 것만 보이지 않습니다. 상상을 합니다. 내가 빚는 떡을 사람들이 얼마나 맛있게 먹을까, 키에 맞춰 반 단을 줄인 바지를 입으면 더는 옷이 땅에 끌리지 않아 더욱 편하게 걷겠지.
변화는 전국적으로, 세계적으로 나아가는 캠페인에만 국한하지 않습니다. 일상을 사는 모두가 영웅이라는 말은 이제 아무도 쓰지 않는 말이 되어버렸지만, 저는 콩나물 해장국 집의 직원도, 아침 일찍 분주하게 커피를 달라는 회사원들을 위해 머신을 돌리는 아르바이트 생도 모두 기쁘고 편안한 세상을 만드는 이들이라 여깁니다.
그래서일까요. '구두 병원'이라는 말이 인상 깊었습니다. '가게'로 남지 않은 '병원'이요. 앞코가 무너지고 뒤창이 들린 구두의 상태를 진단하고 그에 따라 각각 진단해 꿰매는 일이니 의사와도 같습니다. 구두 병원의 구두 의사 선생님.
케케묵은 사주에서, 어느 날 나는 왜 이리 운이 없을까 싶어 열어본 5년 뒤 운에서 저는 26년 7월의 운세를 읽고 조그만 물음표를 안았어요. 그때 내게 좋은 일이 풀린다니. 마음을 다해 하고 싶은 일들이 너무나 많이 찾아오니 구별하고 준비해야 한다며. 스물다섯의 저는 그게 제 작가 인생이라 믿었습니다. 어마어마한, 어마어마가 뭔지도 모르겠지만 대단한 작가가 되려나.
공사 현장에서 일하다가 멕시코에서 사업을 차린. 서른에 커리어를 완전히 틀어버리는 선배를 보며 어떻게 그런 용기가 났나 싶었습니다. 동경하는 선배들을 따라 몇 걸음 걷다 보니, 그러다가 뛰기도 하고 숨도 고르다 보니 마음이 자꾸 기우는 길로 닿게 되었어요.
올 8월부터 정신건강 분야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모니터에서 눈을 떼고 앞에 마주 앉은 이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들이 어떤 도움을 필요로 하는지, 나는 어떻게 도우면 될지 골몰하는 업입니다.
구두를 수선하는 선생님이 당신의 가게를 병원이라 이름 지었듯, 저는 저를 파랑새라 부르고 싶어요. 이제껏 밖에서 내 글을 읽어달라 많은 분들께 호소했다면, 새로운 이름을 스스로 지은 저는 한 명 한 명을 마주 보려 합니다.
잘 나는 파랑새가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날개 어느 한쪽이 부러져도, 설령 날지 못하는 새더라도 존재만으로의 가치가 있음을 알아서 덜 두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