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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소설]푸른 요람 8부 유량의 별

2장 전달자

by에르반의 고양이
이집트 약초.png


다음날 이른 아침.


타이네 집 주변 강가에는 옅은 물안개가 꼈다.

아직은 컴컴한 새벽, 밤새 말려놓은 갈대배를 뒤집어 어구를 손질하고

강가로 나서는 어부들의 움직임이 분주했다.


해가 떠오르자 집집마다 불을 지펴 흰 연기가 자욱하게 올라왔다.

아이들은 아직 잠이 덜 깨 벌게진 얼굴로 집 밖을 뛰어다녔다.

이른 아침부터 곡물을 빻는 소리가 마치 노랫소리처럼 들렸다.

타이네 집도 아침 준비에 한창이었다.


갓 구워 낸 빵과 전날 잡아 말린 생선, 대추야자가 테이블에 올라왔다.

타이가 아직 잠에서 덜 깨 희끄무레 눈을 뜨고

탁자에 앉아 빵을 집어드는 순간, 아침의 고요를 깨뜨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메르님! 메르님! 여기 좀 봐주세요.”

이웃집 세티의 다급한 외침이었다.


그녀의 등에는 아들 카이가 업혀 있었다.

타이가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세티 아줌마, 카이 왜 이래요?”

“어제 다리를 좀 다쳤는데 밤부터 열이 났어.

처음에는 이러다가 말겠지 했는데 새벽에 보니 불덩어리야.”


세티가 조금 울먹였다.


타이의 할아버지 메르가 다가와 카이의 이마에 손을 올렸다.

“음..”

“상처는 어디냐?”


세티가 카이의 다리를 걷어 올렸다.

오른쪽 발목 부근에 상처가 보였다.

주변은 벌겋게 부어 있었고 상처 가장자리에는 진물이 맺혀 있었다.


“강에서요..”

세티가 울면서 더듬거렸다.

“어제 물고기를 잡고 놀다가 돌에 베였나봐요.”


메르가 상처를 한참 바라봤다.

“강물에 씻었느냐?”

“아? 네네.”

“....”


메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페. 상처에 쓰일 약을 좀 만들어 주지.”


네페는 아무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장막 안쪽으로 들어갔다.

타이도 할머니를 따랐다.



성기게 짠 아마포 장막을 걷자 작은 실내가 드러났다.

햇빛에 잘 마른 풀 향기가 타이의 코끝을 훅 하고 스쳤다.

붉은 흙벽에 고정해 놓은 낮은 선반 위에는 각종 이름 모를 풀들이 크고 작은 갈대 바구니에 담겨 있었다.


천장에는 바싹 말린 약초들이 매달려 있었고,

방 한쪽 테이블 위에는 약초를 빻는 돌절구가 놓여 있었다.

타이도 할머니를 도와 약초를 골랐다.


“할머니, 이 뾰족뾰족하고 냄새가 고약한 풀은 뭐야?”


네페가 풀을 들고 타이에게 설명했다.

“이건 피가 나고 진물이 생긴 상처에 쓰는 거야. 아주 많이 쓰이니 너도 잘 봐둬라.”


네페는 능숙하게 약초를 골라 절구에 빻기 시작했다.

타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할머니의 말에 귀 기울였다.

쌉싸름한 풀내음이 방 안에 희미하게 피어올랐다.


작업이 끝나자 네페는 카이가 있는 침상으로 다가가

먼저 카이의 상처를 깨끗이 닦기 시작했다.

카이는 신음소리를 내며 몸을 꿈틀거렸다.


세티가 열로 달아오른 아이의 손을 꼭 잡았다.

“카이, 괜찮아, 이제 괜찮아질거야.”


네페는 상처에 약초를 바르고 단단한 천으로 감쌌다.

“상처는 아침과 저녁에 닦아내게. 깨끗하게 하는 게 제일 중요해.”

이어 메르는 서랍장에서 천에 곱게 싼 환약을 꺼냈다.


“열을 내리게 하는 용도이니 이따 집에 가서 식사를 하고 먹이도록 해.”

“물은 강물은 사용하지 말고 꼭 불을 지펴 팔팔 끓었던 물을 식혀 사용해야 돼.”


메르의 설명이 이어졌다.

세티는 메르의 말을 한자라도 놓칠세라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타이도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 문 밖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메르님.. 계신가요...”


메르가 고개를 들었다.

“무슨 일인가?”


문밖에는 젖은 머리칼이 어깨까지 내려온 젊은 남자가 한 명 서 있었다.

햇볕에 그을린 구리빛 피부에 소매 사이로 그물에 긁혀 생긴 듯한 상처가 드러났다.


남자는 망설이다 말했다.

“그게...요즘 물고기가 너무 안잡혀서요.”


남자가 얼버무리며 말했다.

“자네 배가 어디에 있지?”


메르의 물음에 남자는 대답 대신, 강 하구 쪽을 손가락으로 가르켰다.

메르는 남자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호기심 많은 타이도 할아버지를 쫓았다.


신의 가호를 받은 나일강은 전날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메르는 무언가를 찾는 듯했다.


“며칠째 이 바람이지?”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메르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푸른 하늘 한쪽에 달의 모습이 희미하게 드러났다.

“달이 거의 다 찼다.”


타이도 할아버지를 따라 하늘을 올려다봤다.

“물이 오를 때가 됐어.”

“물고기들의 움직임이 평소와는 다를거야.”


남자는 강을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오늘밤은 어느 방향에 그물을 던져볼까요?”


메르는 동남쪽 방향을 손가락을 가리켰다.

“해가 기울기 전에 돌아와.”


남자는 고맙다고 인사하며 더 묻지 않고 배를 강으로 밀었다.

어둑어둑 해 질 무렵, 남자는 연신 콧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향했다.


어망에는 물고기들이 평소와는 달리 묵직하게 불어 있어 천금같이 무거웠지만

그의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 가벼웠다.



사람들은 계속 메르를 찾아왔다. 그들은 자신들이 풀지 못하는 어려운 일을 모두 메르와 상의했다.


메르는 자연을 읽는 자였다.

강의 범람 시기를 살피고 물고기가 많이 모이는 시기와 장소도 사람들에게 알려줬다.

날씨와 계절의 변화에 맞게 곡식을 보관하고 씨앗을 고르는 법도 마을 사람들에게 전파했다.

물을 어디서 구해야 하는지, 가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메르가 모르는 건 없는 듯 했다.


중요한 것은 메르는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혼자만 독식하지 않고 모두와 공유했다는 점이었다.

어느 날, 타이가 문득 뭔가 생각났다는 듯이 물었다.


“할아버지.”

“왜.”

“할아버지는 왜 사람들에게 다 알려줘?”


메르가 타이를 흘끗 쳐다봤다.

“뭘 말이냐?”

“아픈 사람들 고치는 것도 그렇고, 물고기를 어디서 잡아야

더 잘 잡히는지, 곡식은 어떻게 보관해야 벌레가 안 생기는 지

그런거 말이야.”


메르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나만 알고 있으면 다음 사람은 모르게 되니까.”


타이는 고개를 갸웃했다.

“아는 건, 내 다음 사람한테 남겨야 된다.”

“그래야 계속 살아갈 수 있는거란다.”


어린 타이에게는 할아버지의 말이 아직 어려웠다.

그들의 임무가 ‘전달자’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이로부터 휠씬 뒤에 일이다.






지구는 작지만 아름다운 별이었다.

투명한 대기는 별을 감싸며 빛났고


별의 대부분을 덮은 푸른 바다는 속을 알 수 없이 깊었다.

거대한 짙은 녹음 사이로 옅은 안개가 흩어졌고,

대륙을 가르며 흐르는 물줄기는 생명력의 원천이 되었다.

그 위로 수많은 생명들이 태어나고 살아가고, 또 사라졌다.


생명은 계속 진화하며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했다.

지구는 그대로였지만 지구의 주인은 시간이 흐르고 환경이 달라질 때마다 바뀌었다.

가장 최상위 먹이사슬에서 권세를 누리던 지배자도 시간이 지나면 사라졌다.


사라진 자리에는 또 다른 포식자가 들어섰다.

살아있는 것은 영속적으로 머물지 않았다.

하지만 사라진다고 해서 영원히 없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얼음이 녹아 물이 되듯 형체는 달라져도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그렇게 수십억 년의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지구 나이로 셈하면 약 30만 년 전.


현생 인류의 조상이 지구의 새로운 지배자로 등장했다.

이 종족은 다른 종보다 열약한 신체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머리를 썼다.

날카로운 이빨이 없는 대신 칼과 창을 만들었고,

벌거숭이 몸을 동물의 가죽으로 감싸 혹독한 추위 속에서도 살아남았다.


이들은 어느 순간, 떠돌아다니던 생활을 청산하고 한 지역에 자리를 잡았다.

땅에 씨앗을 심고 가축을 사육했다.


버섯을 먹고 죽은 사람을 보고 그 버섯을 먹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먹어서는 안 될 것과 먹어도 되는 것, 위험한 것과 안전한 것을 직접 몸으로 겪으며 배웠다.

누군가의 죽음으로 겪은 실패 사례가 다음 세대에게는 생명의 지도가 될 수 있었다.


한 세대에서 알게 된 지혜는 다음 세대로 계승됐다.

이들은 배우고, 익히고, 전파했다.


약하디약한 이 종족이 계속 지구의 지배자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였다.

이들에 대한 관찰은 오랜 시간 계속됐다.

그들은 인간이 만들어내는 작은 변화도 놓치지 않았다.

그중 타이네 집은 더 특별했다.


비정한 약육강식의 논리가 만연한 시기에도 타이의 가문은 ‘전달자’의 역할을 충실하게 지켜왔다.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보다 이웃의 삶을 먼저 생각하고 공동체의 이해관계를 더 중요시 여겼다.

습득한 지식을 통해 사람을 살렸다. 때론 이를 위해 목숨도 아끼지 않았다.


이들은 자신들의 지혜를 아낌없이 공유하고 후대에 널리 전파했다.

레온과 아르셀라, 슘이 타이네 가문을 ‘전달자’로 낙점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


그날 밤, 섬광과 굉음이 찢어질 듯 번쩍였던 찰나의 순간.

레온은 그 어둑한 강가에 서 있었다.


그는 타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2장 전달자 끝

3장 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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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 올해의 청소년 교양도서 [빅지니어스] 출간 작가. 26년 신작 [엉뚱한 질문이 과학을 만나는 순간] 출간예정. 삼성멀티캠퍼스와 중학교 현장에 과학 콘텐츠 강연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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