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을 다해 대충 쓴 글

<하루키를 말할 때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 전시회를 다녀와서

by베를리너


‘내 몸에는 당신의 세상과는 조금 다른 시간이 흐르고 있어서 날 따라다니다 보면 생전 처음 느끼는 순간을 마주할지도 몰라요. 그렇다고 너무 심각해질 필요는 없어요. 나의 숨결에 맞춰 천천히 숨을 쉬거나, 발걸음을 따라오고 싶다면 그렇게 하면 돼요.’

5월의 막이 천천히 내려가는 시간, 서울 학동으로 발길을 돌렸다.

낯선 빌딩 속 익숙한 분위기는 순식간에 오래전 어느 날로 시계를 돌렸고, 추억에서 가까스로 깨어나 잰걸음으로 목적지를 향했다.


‘이런 곳에 전시회가 있을까?’ 싶은 의심이 솟아나는 순간, ‘하루키’가 적힌 포토 부스가 눈에 들어왔다. 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 개관 10주년 특별기획전.

전시장 앞엔 야외 좌석이 카페가 보이고, 몇몇 사람이 시원한 음료를 들고 앉아 있었다.

회화나 조각 전시회를 가봤지만, 소설가의 전시회는 처음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아는 맛을 선호하는 것처럼, 하루키 전시회를 앞둔 나는 낯선 여행지로 떠나는 것 같아, 설렘 반 걱정 반이었다.

전철과 버스를 옮겨 타며 가는 길과, 꽤 오래가는 어깨 통증 때문에 부담이 컸기 때문이다.


전시관은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 그리고 ‘상실과 회복’을 테마로 크게 나뉘어 있다.

하루키의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고양이는 전시관 곳곳에서 불쑥 말을 건다.

전시관을 걷다 보면, 하루키 소설의 구절들이 벽에 붙어 있어, 나만의 비일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2, 3층 갤러리에는 하루키 소설의 삽화를 그린 안자이 미즈마루 씨와의 일화가 소개되어 있다.

“이 그림 참 재밌지 않아요?”

기교 없이 쓱쓱 그린 그림체를 쳐다보고 있는데, ‘스태프’ 목걸이를 거신 분이 말을 걸었다. 회화 작가이신데, 관심이 있어 전시회에서 일하고 계신다고.

도슨트를 놓쳐 아쉬웠던 참인데, 내가 모르는 열쇠를 지닌 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쳐 귀를 기울였다.

안자이 씨가 그린 삽화 밑에

‘최선을 다해 대충 그린 그림’이라고 쓰여있었다.

몸에 힘이 쭉 빠지는 것도 같고, 요가 중 안 쓰던 근육을 쓰면서 시원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늘 무언가를 갈망하며, 힘을 주고 살았는지 정신은 늘 쉴 틈이 없었는데.

하루키의 여행법도 마음에 들었다. 여행을 가면 최대한 메모도 하지 않고, 그저 의식의 흐름대로 자신을 내버려 둔다는 구절을 읽고는, 나도 꼭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키의 최애 메뉴인 아무런 양념도 하지 않는 새하얀 두부와 시원한 생맥주도 눈으로 맛있게 먹었다.

안자이 씨와의 우정을 부러워하는 순간 내 눈을 사로잡은 하루키의 이야기.

안자이 씨와 만나기로 한 며칠 전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고.

그의 글을 돋보이게 해주는 멋진 친구를 환송하는 담담한 글을 읽으니, 죽음조차 일상인 듯 오래된 옷을 입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몽롱한 고양이의 한마디 그리고 하루키의 소설 속 한마디.

그가 안내하는 비일상적인 몽환의 숲으로 한 발짝씩 옮기다 별안간 장기하가 남긴 엽서도 만났다.

가장 좋았던

‘자유롭길 바라요.’

나를 옭아맨 많은 것들이 갑자기 무겁게 느껴졌다. 그의 말이 큰 위로로 다가왔다.

발길을 옮겨 하루키가 사랑한 재즈룸으로 들어갔다.

배려심 있게 놓인 푹신한 소파에 벌렁 드러누워, 벽에 가득히 장식된 LP 판을 바라봤다.

그걸 또 열심히 찍었다.

가끔 라디오에서 색이 분명한 음악을 들으면 휴대폰 메모장에 제목을 적어놓는다. 투명하게 부서지는 하얀 파도 색, 짙은 밤하늘색이거나 혹은 고요한 숲 속의 초록색, 귀여운 병아리 같은 노란색을 담고 있는 음악들은, 습작 중인 소설이나 대본에서 필요할 때 되살아난다.

LP판을 사진 찍다, 지금 여행 중인 걸 떠올렸다.

하루키의 나라에 와서 그가 가르쳐준 대로 메모를 남기는 이유 따위도 잊고 시간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용함이나 목적의식 따위는 잠시 내려놓고, 최선을 다해 대충 보고 걷고 느끼는 시간으로 채워보고 싶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대화하느라 놓쳐버린 도슨트도 이에 포함된다.

이 글 또한 쓱쓱 써본다. 귓속을 면봉으로 몇 번 후비고, 몇 글자를 끄적이다 하루를 보내는 소설가 하루키인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