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이 되어서야 알게 된 것들이 있다.
사람들은 흔히
40대가 되면 가장 먼저 외형의 변화를 이야기한다.
예전 같지 않은 체력,
조금씩 달라지는 체형,
거울 앞에서 문득 발견하는 피부의 변화.
물론 그런 변화도 있다.
(나도 하루하루 깜짝깜짝 놀란다.)
하지만 내가 더 크게 느끼는 변화는
겉모습이 아니라 마음이었다.
요즘은 40도 청춘이라고 말한다.
나 역시 그 말에 공감한다.
여전히 배우고 싶고,
새로운 일을 시작할 용기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마흔을 넘기고 나니 나이는 결코 그냥 먹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특히 여자에게 마흔은
여러 의미를 가진 시간인 것 같다.
직업은 바뀔 수 있다.
직바카라도 사라질 수 있다.
환경도,
사람도,
삶의 방식도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끝까지 남는 것은
결국 나의 지성과 이성,
그리고 삶을 대하는 태도였다.
서른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때는 이해할 수 없었던 사람들의 마음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지혜는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선택과 후회,
그리고 성찰이 조금씩 쌓여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오랜 슬롯생활을 잠시 멈추고,
요즘 나는 '나라는 브랜드'를 만들어가고 있다.
예전에는
'무엇을 해야 할까'를 고민했다면,
지금은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 사람인가'를 더 많이 생각한다.
그 질문을 오래 붙잡고 있다 보니,
새롭게 얻은 것만큼
버려야 할 것들도 선명해졌다.
그래서 오늘은
마흔이 되어서야
다시는 붙잡고 싶지 않은 다섯 가지를 적어본다.
교양은 많이 배운 사람이 아니라,
상대를 존중하는 사람에게서 나온다고 믿는다.
말투 하나,
식당에서 직원을 대하는 태도 하나,
약속을 대하는 자세 하나에도
그 사람의 품격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교양은 지식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배려에 더 가깝다.
나이가 들수록
무엇을 아느냐보다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한 사람을 더 오래 기억하게 만든다.
누군가를 낮춘다고
내가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람을 함부로 평가하는 언어는
결국 그 사람의 수준을 먼저 보여준다.
살아보니
말은 생각보다 오래 남았다.
한 번 내뱉은 말은
상대의 기억에도 남지만,
결국 내 품격에도 남는다.
그래서 이제는
누군가를 쉽게 판단하기보다,
한 번 더 이해하려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이가 들수록
가장 위험한 말은 이것인 것 같다.
'이제 늦었어.'
하지만 살아보니
늦은 것이 아니라
아직 시작하지 않은 경우가 더 많았다.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가장 늦은 때는 나이가 아니라
스스로 가능성을 포기하는 순간이었다.
마흔은 끝이 아니라
방향을 다시 정하기에 충분한 나이다.
젊을 때는
정답을 찾으려 했다.
지금은
사람마다 다른 답이 있다는 것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내 경험은 소중하지만,
그것이 모두의 답이 될 수는 없다.
같은 상황에서도
사람마다 살아온 환경과 가치관이 다르기에
답 역시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요즘은
말하기보다 듣는 시간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듣는다는 것은
상대를 설득하기보다
이해하려는 태도라는 것을 배워가고 있다.
사실 이 감정은 암흑같던 시간 동안
내가 가장 오래 붙잡고 있었던 감정이다.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생길까.
왜 나는 이렇게 힘들까.
그 질문 속에는
억울함도 있었고,
지친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자기연민은
나를 위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붙잡는 감정이었다.
힘들었던 시간을 인정하는 것과
그 시간에 머무는 것은 다른 일이다.
이제는 아팠던 시간을 부정하지 않되,
그 경험을 앞으로 나아갈 힘으로 바꾸는 사람이 되고 싶다.
상처는 내 삶의 일부일 수는 있어도,
내 삶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돌아보면
사십대는 잃어가는 나이가 아니라 덜어내는 나이인 것 같다.
놓을 줄 아는 지혜를 사십대에 충분히 익혀두어야
더 멋진 50대를 맞이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조금 덜 욕심내고,
조금 덜 증명하려 하고,
조금 덜 흔들리는 법을 배워가는 시간.
그래서 오히려
이제야 진짜 나를 만들어가는 시작점에 서 있는 기분이 든다.
'나'라는 브랜드는
무언가를 더 많이 채워 넣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답지 않은 것들을 하나씩 덜어내는 과정 속에서
조금씩 선명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마흔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나를 성장시키는 것은
새롭게 얻는 것만이 아니라,
버릴 줄 아는 용기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