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연가

- 사라지는 것들을 기억하며





나는 술이 약했다. 소주 한두 잔이면 충분했다. 그 한두 잔으로 술자리를 끝까지 버티다 보면, 담배를 꺼내 물고 권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게 한 대, 두 대 피다 보니 담배를 피우게 되었다. 서울에서 공부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 당시 공장을 다니는 형을 소설 강좌에서 만났다. 대학로 근처였다. 막노동하고 온 것 같은 허름한 옷차림이었다. 얼굴은 약간 어둡고, 신경 쓰지 않은 듯한 마른 피부였다. 형은 철학적인 소설을 썼다. 조금 어려웠다. 나는 그 어려움까지 형답다고 생각했다.


소설을 쓰고 싶은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였으니 강의가 끝나면 그냥 가는 법이 없었다. 마주 앉으면 이야기는 늘 세상 쪽으로 흘러갔다. 형에게 세상은 대체로 틀려 있었다. 어디가 어떻게 틀렸는지를 형은 한 잔으로 한두 시간쯤 설명할 수 있었다.


형도 술이 세지 않았다. 둘이 마주 앉으면 소주 한 병이 좀처럼 줄지 않았다. 사실은 두 병째를 시킬 돈이 별로 없었다. 술이 약한 건 핑계로도 꽤 쓸 만했다. 나는 듣다가 담배에 불을 붙였고, 형도 따라 붙였다. 할 말이 막히는 대목에서는 둘 다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그게 우리가 나눈 대화의 절반쯤이었다.




우리의 술자리는 막차가 끊기기 전에 끝내야 했다. 택시비가 없었으니까. 마지막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신림동 하숙집으로 돌아갔다. 대학원에 다니는 동안 내가 살던 곳이다.


그 무렵 그곳은 고시촌으로 유명했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인문학에 대한 동경과 이상이 있었다. 막상 도서관에 가보니 학생들은 법전과 고시 공부에 쏠려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애를 쓰고 있었다. 세상은 내가 생각한 그런 곳이 아니었다. 나는 한동안 그 현실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하숙집은 전국 각 지방에서 올라온 이십 대 청년들로 채워져 있었다. 충청도에서 올라온 주인 내외와 중학생 남매, 광주에서 온 의대 신입생 둘, 청도에서 온 선배와 구례에서 온 후배, 서울 사람인데 굳이 하숙을 하는 졸업생. 통영에서 온 신입생은 나와 한 방을 썼다.


저녁상에 둘러앉으면 서울, 충청, 호남, 경상도의 방언들이 저절로 섞이는 자리였다. 부모를 떠나 자유롭게 대학 생활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영혼의 해방과 자기 결정의 기쁨 같은 것이 이십 대 하숙집 청년들의 표정에 어려 있었다. 불안한 희망 같은. 각자 자기 방에서 노래를 불러도, 크게 클래식 음악을 틀어도 다 이해하고 상관하지 않는 그런 분위기였다.


아주머니는 인심이 좋았다. 내가 마음에 들었는지, 아들 공부를 봐주는 대신 하숙비를 안 받으셨다. 어쩌면 그 집에서 가장 어렵게 보였는지도. 특식이 나오는 날은 이자까지 받는 셈이었다.


의대생 둘은 그 집의 분위기 메이커였다. 한 녀석의 얼굴에는 사춘기가 아직 채 가시지 않은 뾰루지 자국이 남아 있었고, 다른 녀석은 어느 발라드 가수를 닮은 갸름한 얼굴이었다.



저녁을 먹고 나면 하숙생들은 하나둘 그 방으로 건너갔다. 그 방에는 우리가 가지지 못한 컴퓨터도 있었고, 통기타도 있었다. 누구는 기타를 잡고, 누구는 테트리스 화면을 들여다보고, 누구는 창문을 열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나도 피웠다.


삼겹살이 나오는 날이면 그 방에 소주와 새우깡이 차려졌다. 나는 첫 잔을 받아 들고 그 잔으로 거의 끝까지 갔다. 누군가 통기타를 잡으면 김광석이나 양희은의 노래를 불렀다. 가사를 끝까지 아는 사람은 한두 명뿐이었고, 나머지는 후렴을 기다렸다가 목소리를 보탰다.


담배를 마음껏 피운 건 서울에 와서였다. 누구 눈치 보지 않고 불을 붙일 수 있다는 것, 그게 전부였다.

방에서는 피우지 않았다. 통영에서 온 신입생이 있어서다. 혼자서 피고 싶을 때는 베란다로 나갔다. 그러니까 서울에서의 내 자유는 대략 베란다 한 칸 크기였다.


집에서 담배는 숨겨야 하는 물건이었다. 피운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서울에만 있었다. 베란다에 나가 불을 붙일 때마다 나는 집에서 떨어져 산다는 것을 실감하곤 했다. 담배 한 갑을 사면 사흘 정도 피웠다. 줄담배를 피우기도 했다.


밤늦게 혼자 베란다에 나가면 골목 건너편으로 불 켜진 창들이 보였다. 다른 하숙집, 고시원의 창문들이었다. 창마다 누군가 무엇이 되려고 앉아 있었다. 그게 무엇이 되는 일인지는 잘 몰랐다.


나는 숨이 얕았다. 가슴 윗부분에서만 짧게 쉬다가, 숨 쉬는 걸 한참 잊고 있었다는 걸 뒤늦게 알아채곤 했다. 그런데 담배를 피우는 동안에는 숨 쉬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짧게 들이마시든 깊게 들이마시든 나의 자유다. 내가 길게 내쉬어도 아무도 이상하게 보지 않았다. 진하게 피고 싶을 때는 사람들 틈에서 빠져나와 베란다에 오래 서 있어도 됐다. 허공으로 내뿜는 연기처럼 사라져 가는 시간들. 마치 인생의 시나리오가 그 안에 담겨 있는 것처럼 나는 그 순간을 즐겼다.


어쩌면 불확실한 젊은 날의 한숨을 담배 연기에 남몰래 실어 뱉고 있었던 건 아닌지 돌이켜 본다. 깊은 한숨을 쉬고 싶을 때 담배를 한 대 꺼내 피면 사라졌으니까.



어느 가을 주말, 소설 쓰는 그 공장 다니는 형과 강화도에 갔다. 바다가 보고 싶었다. 서해 쪽 낙조가 좋다는 말을 누군가에게 들었다.


오전에 출발했다. 버스에서 내려 시골길을 걸었다. 논, 밭, 갯벌을 지나는 긴 길이었다. 처음에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형이 보기에 여전히 세상은 틀려 있었고, 나는 내가 아직 현실로 살아내지 못한 그 세계를 잠잠히 흘려듣고 있었다.


길 끝에 돈대가 있었다. 포를 내밀던 구멍들이 바다 쪽을 향해 있었다. 낯선 배 앞에서 물러서지 않았던 자리였고, 문을 닫아걸었던 자리였다. 돌벽에 손을 대 보았다. 볕 쪽은 따뜻했고, 그늘 쪽은 차가웠다.


그 뒤로도 포대는 몇 번 더 나왔다. 걷다 보면 돌담이 나오고, 또 걷다 보면 포구멍이 나왔다. 어느 순간부터 형도 나도 말이 없었다. 목이 몹시 말랐다. 발바닥만 아프다고 은근한 통증으로 칭얼댔다. 운동화 속에서 발뒤꿈치가 쓸렸고, 종아리는 돌처럼 서서히 굳어 갔다.


오래 걸었다. 거의 해가 기울기 시작하는 무렵까지 걸었던 것 같다. 바닷가에 넓적하게 드러난 갯바위가 보였다. 우리는 그 위에 쓰러졌다.


등 밑에서 바위의 결이 배겼다. 땀에 젖은 셔츠가 바닷바람에 천천히 식어 갔다. 가을 하늘이 너무 예쁘게 물들어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세상에 대해 좋은 말을 하는 걸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형이, 그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형으로서는 그게 최고의 찬사였을 것이다.


형과 솔을 나눠 피웠다.


맛있었다. 목이 타는데도 담배가 그렇게 맛있을 수 없었다. 지친 몸 끝에 찾아온 한 모금, 연기의 향연이었다. 하루 종일 걸은 것도, 종아리가 돌처럼 굳은 것도, 돌아갈 버스비를 남겨 두어야 한다는 것도 잊어버렸다. 살면서 고단했던 것들이 연기를 따라 어디론가 흩어졌다. 옆에는 형이 누워 있었고, 바위 위에는 바람이 불었다. 행복했다. 더 필요한 것이 없었다.


담배를 피우면서 그렇게 좋았던 적이 없었고, 그 뒤로도 드물었다.

그런데 그 행복이 가슴 한가운데까지 차오르자, 어디선가 슬픔이 찾아왔다.


고단한 것들만 사라진 게 아니었다. 신림동 고시원의 불 켜진 창들도, 어제 쓰다 만 비평이나 소설의 문장도, 막연한 앞날도 그 순간에는 멀리 있었다. 모든 것이 조용해졌다.


그 고요는 낯설지 않았다. 생각이 사라지고 아무것도 감각하지 못하는 상태. 오래전 나는 그곳에 한참 머문 적이 있었다. 그때는 어둠 속에 있었고, 안에서 들리는 목소리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담배는 끝까지 피웠다. 필터가 뜨거워질 때까지. 꽁초를 비벼 껐다.

청춘은 짧고 후회의 시간은 길다는 걸 알면서도, 가야 할 길을 주저하는 마음은 무엇인가.




하루 동안의 강화도 도보 여행. 몇 시간을 걸었는지 이제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주 오랜 시간을 걸었다는 것밖엔. 그냥 우리는 지칠 때까지 걸었다. 그리고 내 청춘의 시간과 꿈과 슬픔을 그날 푸른 가을의 섬 하늘 위로 날려 보내려고 했던 것 같다. 그날 이후 나는 다시 혼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그 슬픈 포대의 역사처럼.


지금은 많이 변했을 것이다. 그 뒤로 가보지 못했다. 어디서 어디까지 걸었는지도 이제는 흐릿하다. 다만 발이 부르트도록, 젊은 날의 객기로 바다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걸었던 그날만은 잊히지 않을 것 같다.


외적인 모든 것들은 세월이 가면 시들어 가고, 그 순간의 관계만 기억 속에서 영원할지도. 그 형은 지금 어디서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연락은 끊겼다.


시간이 되면 다시 그곳에 가서 그 가을을 품어 보고 싶다.





카지노 게임의 이전글혼자만의 고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