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평의 언덕에서 마주한 '작은 거인'의 오랜 꿈

발달장애 청년들의 성인기 자립, 그 길을 묵묵히 닦아온 호산나대학 이야기


가평으로 향하는 길은 맑고 고요했습니다.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푸른 풍경을 바라보며, 교직에 첫발을 딛고 아이들의 손을 잡았던 30여 년 전의 수많은 얼굴들을 떠올렸습니다.


특수교육 현장에서 평생을 머물며 가슴 한편에 묵직한 숙제처럼 남아있던 질문은 늘 하나였습니다.

"학령기라는 울타리가 끝나고 나면, 우리 아이들은 세상 속에서 온전히 자신의 발로 서서 살아갈 수 있을까?"


학교라는 안전한 품을 떠나는 순간, 갈 곳을 잃고 다시 집이라는 외딴섬으로 돌아가야 하는 아이들.

그리고 그 아이의 손을 놓지 못해 평생을 불안과 눈물로 지새우는 부모님들의 뒷모습을 볼 때마다

특수교육의 마침표는 결코 학위나 졸업장이 아닌,

'성인기의 온전한 자립'이어야 함을 뼈아프게 절감하곤 했습니다.


그 간절했던 물음의 답을 만나기 위해 찾아간 곳, 바로 호산나대학이었습니다.


SE-503bcfac-d760-450f-a387-153676ec8405.jpg반려동물 산업의 성장에 발맞추어 그루밍과 케어 실무를 훈련하는 국내 최초의 발달장애인 전문 센터


이름 앞에 늘 '최초'가 붙었던 사람, '작은 거인'


그곳에서 마주 앉은 이동귀 학장님은 여전히 뜨거운 열정을 품고 계셨습니다.

대한민국 특수교육계에서 그분의 발자취 앞에는 늘 '최초'라는 단어가 따라붙었습니다.

국내 최초의 발달장애인 호산나대학 직업학교를 세우고,

특수교육진흥법의 뼈대를 놓았으며, 성인기 발달장애인을 위한 후견인 제도의 문을 열어젖힌 장본인.

사람들은 그분을 두고 망설임 없이 '작은 거인'이라 부릅니다.


체구는 작으시지만, 아이들을 향한 시선과 비전만큼은 누구보다 거대하고 깊었습니다.

선배님이자 학장님과 마주 앉아 차를 나누는 동안,

그 분이 걸어오신 험난했던 개척의 시간들이 한 편의 대서사시처럼 가슴을 울렸습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불쌍히 여기는 시혜가 아닙니다.
세상에 나가 당당하게 자기 몫의 세금을 내는 직업인이 되게 하고,
부모가 세상을 떠나도 자기 집에서 이웃과 어우러져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제도권의 좁은 틀에 머물지 않고 과감한 교육 실험을 감행하며 '발달장애인 취업사관학교'를 일구어내신 그분의 눈빛은, 여전히 청년의 것처럼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SE-dc108dd1-9b47-4bad-8e3d-04ad994d54bf.jpg바리스타학과: 현장에 즉시 투입되어 고객을 응대하고 실무를 해낼 수 있도록 실습 위주로 운영



가평 캠퍼스에 피어난 눈부신 기적들


학장님의 안내를 받아 둘러본 캠퍼스는 살아 숨 쉬는 기적의 현장이었습니다.

급속한 고령화 슬롯를 내다보며 어르신들을 섬기는 손길을 훈련하는 노인케어학과,

반려동물과 교감하며 전문 기술을 익히는 국내 최초의 애견직업훈련센터,

그리고 바리스타 시험장과 최신 AI 사무 교육실까지.


그곳에는 '장애'라는 한계 대신, '내일의 직업인'으로 거듭나기 위해 땀 흘리는 청년들의 찬란한 뜀박질이 있었습니다.


SE-abf010cc-8104-4b02-aa71-0c866a567e69.jpg故 김희창 강의실 : 9회 졸업생의 숭고한 사랑이 담긴 노인케어학과 실습 강의실 현판


강의실 한편에 걸린 '故 김희창 강의실' 현판 앞에서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투병 끝에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며 모교에 대한 사랑으로

2억 원 상당의 실습 기자재를 남긴 9회 졸업 동문의 숭고한 뜻.

그리고 첫 월급을 타면 가장 먼저 모교를 찾아와

후배들을 위해 장학금을 내어놓는 수많은 졸업생들의 아름다운 전통.


그것은 단순한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영혼을 다해 심은 사랑이 다시 더 큰 사랑의 열매로 피어난 살아있는 증거였습니다.


홀로서기를 넘어, 함께 살아갈 '지원주택'의 꿈


호산나대학의 시선은 졸업과 취업에 멈추지 않았습니다.

청년들이 서로 사랑하여 가정을 이루는 결혼을 축복하고, 부모의 품을 떠나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맞춤형 지원주택'과 '성인기 후견인 제도'를 정착시키기 위해 학장님은 지금도 쉼 없이 뛰고 계셨습니다.


아이들이 시설에 갇히는 대신, 평범한 이웃들 틈에서 각자의 보금자리를 갖고 일상을 누리는 삶.

과거 해외 선진 복지 현장에서 보며 우리가 가야 할 길이라 확신했던 그 자립의 청사진이,

이곳 가평의 아름다운 언덕 위에서 한 땀 한 땀 현실로 직조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함께 건네야 할 따뜻한 관심


돌아오는 길, 가평의 푸른 산자락을 뒤로하며 마음속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벅찬 울림을 느꼈습니다.

한 사람의 지치지 않는 헌신과 믿음이 어떻게 수많은 아이들의 운명을 바꾸고,

절망에 빠졌던 가정에 찬란한 희망의 빛을 선물했는지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발달장애 청년들은 결코 슬롯의 짐이 아닙니다.

충분히 믿어주고, 제대로 훈련받을 기회가 주어진다면

누군가의 든든한 동료이자 따뜻한 이웃으로 살아갈 수 있는 존엄한 존재들입니다.


성인기 자립이라는 막막한 벽 앞에 서 있는 수많은 청년들과 부모님들에게,

호산나대학이 밝혀 든 이 작은 등불이 세상 곳곳으로 번져나가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그 험난하지만 아름다운 개척의 길에,

더 많은 이들의 따뜻한 관심과 손길이 더해지기를 조용히 기도해 봅니다.


가평의 맑은 바람 끝자락에, 아직 다 끝나지 않은 거인의 위대한 꿈이 향기롭게 흩날리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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