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레인 호수가 문을 걸어 잠근 이유: 로키에서 만난 거룩한 불편함
[작가의 한 마디 (소개글)]
계절을 잊은 채 만년설을 품고 있는 웅장한 봉우리와 눈이 부시도록 시린 푸른 호수.
천당 밑의 '999당'이라 불리는 캐나디언 로키의 압도적인 대자연 앞에서,
매일 조바심치며 작은 갈등 속에 살아가던 우리네 삶의 무게를 가만히 내려놓아 봅니다.
그 거대하고 침묵하는 품이 건네는 다정한 다독임에 대하여.
글을 쓰지 못한 지 어느덧 이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일상의 분주한 궤도를 잠시 벗어나 내가 발을 디딘 곳은,
수많은 이들이 평생에 꼭 한 번은 가보고 싶어 하는 버킷리스트의 정점, 캐나디언 로키였습니다.
카메라 렌즈로는 감히 다 담아낼 수 없는 광활한 파란 하늘이 먼저 가슴 가득 안겨 왔습니다.
그 하늘 아래, 계절은 분명 눈부신 여름을 향해 가고 있건만 로키산맥의 거대한 봉우리들은 여전히 하얀 눈을 왕관처럼 드높이 쓰고 있었습니다.
산 중턱에 마치 수줍은 은빛 스카프처럼 걸려 있는 하얀 뭉게구름과
그 산자락 밑에 누군가 가장 투명한 물감을 통째로 부어놓은 듯 비현실적으로 빛나는 파란 호수들.
오랜 시간 단단하게 얼어붙었던 눈과 빙하가 사르르 녹아내리며 아스라이 푸른빛을 뿜어낼 때, 나는 비로소 사람들이 왜 캐나다를 '천당 밑의 999당'이라 부르는지 온몸으로, 온 영혼으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인간이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대자연의 완벽한 예술 작품이 바로 그곳에 있었습니다.
웅장한 만년설 봉우리를 머리에 이고 푸르게 흐르는 로키. 마치 신이 정성스레 빚어놓은 투명한 수채화 속을 소요하는 듯합니다.
하지만 이 눈부신 아름다움 뒤에는 인간의 불편함과 절제가 숨어 있었습니다.
로키의 가장 아름다운 보석이라는 모레인 호수는 자연을 있는 그대로 지켜내기 위해 인간의 차량 진입을 철저히 제한하고 있었습니다.
가고 싶다고 해서 아무 때나 갈 수 없고, 보고 싶다고 해서 쉽게 허락되지 않는 곳.
그 엄격한 통제 앞에서 동행한 남편은 "아니, 그냥 내 눈으로 좀 보고 가겠다는데 뭐가 그렇게 닳냐고 이렇게까지 막아서는 거지?" 하며 아이 같은 불만 섞인 투정을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그 솔직하고도 다정한 아쉬움의 옆모습을 보며, 문득 자연을 대하는 우리의 시선에 대해 가만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자연을 인간의 뜻대로 '소유'하고 마음껏 '소비'하는 것에만 익숙해져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인간의 발길이 깊숙이 닿는 곳마다 멍들고 마는 연약한 대자연을 지키기 위해,
캐나다는 스스로 문을 걸어 잠그는 거룩한 불편함을 선택한 것이었습니다.
거대한 대자연 속에서 온전한 내 집이 되어준 아늑한 공간.
투정 섞인 다정한 대화 속에서 우리는 대자연을 존중하는 법을 조용히 배워갑니다.
웅장하다 못해 경외감마저 드는 로키의 품에 안겨 가만히 깊은 숨을 고릅니다.
수억 년의 시간 축을 품은 채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만년설과 산맥 앞에서,
고작 백 년도 채 살지 못하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작고 미미한지 새삼 고개가 숙여집니다.
우리는 매일 저마다의 작은 세상이 전부인 양 치열하게 부딪치고,
사소한 오해와 갈등 속에 마음을 앓으며 살아갑니다.
가슴속에 웅어리진 미움, 더 많이 가지려는 조바심,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삶에 대한 원망까지….
이 거대한 로키의 시선에서 바라본 인간의 번뇌는 아마도 부드러운 바람 한 점에 흔적 없이 흩어지는 하얀 뭉게구름보다 가벼운 것일지도 모릅니다.
지난 해 산불로 검게 탄 나무들의 아픔 속에서도 묵묵히 푸른 풀을 뜯는 야생 엘크. 상흔마저 품어 안고 다시 피어나는 로키의 생명력은 참으로 경이롭습니다.
광활한 하늘과 푸른 호수가 말없이 건네는 위로는 무척이나 따뜻했습니다.
인간이 작다는 것은 결코 우리가 무가치하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가 짊어진 삶의 무게 또한 대자연 앞에서는 아주 작은 먼지에 불과하니
조금은 어깨의 짐을 내려놓아도 된다는 다정한 다독임이었습니다.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하면서까지 지켜낸 고즈넉한 호수를 바라보며,
내 삶의 어지러운 갈등 속에서도 끝내 지켜내야 할 본연의 아름다움은 무엇인지 조용히 되묻게 됩니다.
로키가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은 눈부신 풍경이 아닌,
대자연의 순리 앞에서 스스로를 낮추고 영혼의 평화를 마주하는 법을 배운
이 겸손하고 따스한 시간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