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의 시대, 우리 아이들에게 ‘결핍’이라는 선물 주기

유태인의 눈물에서 배운 ‘역경이라는 근육’

역사는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회복탄력성이 자라나는 토양이 되어야 합니다.


풍요의 시대입니다.

부족함 없이 자라나는 아이들을 보며 부모들은 안도하지만,

30년 넘게 느린 학습자 아이들을 가르쳐온 저의 마음 한편엔 늘 서늘한 걱정이 있었습니다.

"이 아이들이 과연 거친 세상의 풍파를 혼자 이겨낼 수 있을까?"


캐나다 토론토에 머물던 시절, 제 눈길을 오랫동안 붙잡았던 풍경이 있습니다.

유태인 공동체의 교육 현장이었습니다.

그들은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처럼 아주 어린 아이들에게도

'아우슈비츠'라는 인류의 거대한 비극을 가감 없이 보여주었습니다.

민족이 겪었던 고통과 절망의 역사를 그대로 재현한 장소에서 아이들은 엉엉 울며 나오기도 했습니다.


누군가는 물을지도 모릅니다.

"왜 굳이 저 어린아이들에게 저런 아픈 역사를 보여주느냐"고 말입니다.

하지만 유태인들에게 그것은 단순한 역사가 아닌, 살아남기 위한 '고난 교육'이었습니다.

고통을 기억하는 아이만이 현재의 풍요를 감사할 줄 알고,

다가올 시련 앞에서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반면,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요?

우리는 과거의 어려움을 새롭고 좋은 것으로 포장하여 덮어버리는 데 익숙합니다.

아이들에게는 오직 꽃길만 보여주려 애쓰고,

모든 결핍을 부모와 교사가 대신 채워줍니다.

하지만 온실 속에서 자란 꽃은 작은 서리에도 쉽게 시듭니다.

풍요로움에 길들여진 아이들이 거친 세상으로 나갔을 때 이겨내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결핍'이라는 선물을 주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seodaemun-prison-hallway-path.jpg차가운 과거의 복도에서, 아이는 비로소 자신의 뜨거운 가치를 발견했습니다.

회복탄력성의 씨앗은 온실이 아닌 거친 들판에서 자란다


제가 평생을 함께해온 '느린 학습자' 아이들에게 세상은 더더욱 험난할 수밖에 없습니다.

남들보다 조금 더디게 배우고, 세상을 이해하는 속도가 다른 아이들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저는 그것이 '회복탄력성'이라고 믿습니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 그리고 스스로 무언가를 해낼 수 있다는 자긍심 말입니다.


저는 30년 전부터 이 아이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서울시 교육청의 지원을 받아 매주 토요일마다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목적지를 찾아가는 지역슬롯 프로그램을 운영했지요.

아이를 잃어버릴까 노심초사하며 심화서를 쓰던 긴장의 순간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1년이 지나고 아이들의 눈빛은 달라졌습니다.

누군가에게 케어받는 대상에서, 동료를 이끌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리더로 성장해 있었습니다.

그 성장의 밑거름은 다름 아닌 '스스로 길을 찾아야만 하는 결핍의 상황'이었습니다.


학교 밖 세상에서 비로소 '리더'의 이름을 되찾은 아이


얼마 전, 아이들과 함께 서대문형무소를 찾았습니다.

우리 민족의 가장 아픈 흉터가 남아 있는 곳입니다.

이번 탐방에서도 저는 아이들에게 주도권을 넘겼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인 한 아이를 팀장으로 세웠지요.

사실 이 아동은 학교에서 하루 2시간 정도만 수업을 받으며 부적응을 겪고 있었습니다.

친구들과의 다툼도 잦았고, 특수학교 전학을 위해 대기 중인 아픈 손가락이었지요.

하지만 형무소의 붉은 담벼락 안에서 이 아이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동생들을 일렬로 세우고, 길을 안내하며, 지친 아이를 다독이는 리더십을 발휘했습니다.

학교에서는 '문제아'로 불렸을지 모르지만,

이곳에서 아이는 스스로에 대한 자긍심을 회복했습니다.


무언가를 가르치려 하기보다, 스스로 할 수 있는 환경(결핍)을 만들어주었을 때

아이는 비로소 자기 안의 보석을 꺼내 보였습니다.

저는 그 뒷모습을 보며 확신했습니다.

학습은 조금 떨어질지 몰라도, 이 아이는 이제 스스로 삶을 일궈나갈 힘을 얻었다는 것을요.


historical-museum-reflection-hall.jpg차가운 과거의 복도에서, 아이는 비로소 자신의 뜨거운 가치를 발견했습니다.


사소한 결정들이 모여 자립이라는 단단한 뼈대가 되다


서대문형무소를 간다는 말에 미리 울음을 터뜨렸던 초등학교 1학년 막내의 변화도 놀라웠습니다.

어머니께 휴지를 준비하라 당부할 정도로 걱정이 컸던 아이였지만,

현장에서 아이는 그 누구보다 의젓했습니다.

형과 누나들을 따라 낯선 공간을 탐색하며 질문을 던지는 아이의 눈에서

저는 두려움을 넘어선 호기심을 읽었습니다.


우리는 점심 메뉴부터 이동 경로까지 모든 것을 아이들의 의견을 들어 다수결로 정했습니다.

"무엇을 먹을까?"라는 사소한 질문이

아이들에게는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타인의 의견을 존중하는 자립(自立)의 훈련이 되었습니다.

풍요로운 환경에서 모든 것을 대신 결정해주는 대신,

아이들에게 '결정의 어려움'이라는 결핍을 선물하자

아이들은 비로소 슬롯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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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홀로서기는 '내가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작은 믿음에서 시작됩니다.


아이들은 믿음의 크기만큼 제 속도로 자라난다


교육은 채우는 것이 아니라 꺼내는 것이라고 합니다.

특히 느린 학습자 아이들에게 교육은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설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것'이어야 합니다.


서대문형무소의 차가운 복도를 걸으며 아이들은 역사의 아픔을 배웠지만,

동시에 그 아픔을 딛고 일어선 선조들의 강인함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풍요의 안락함을 잠시 내려놓고 만난 결핍의 시간.

그 속에서 아이들은 예쁘게 포장된 세상보다 더 값진 '살아가는 힘'을 얻었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아이들이 스스로 자긍심을 갖고 세상에 적응할 수 있도록,

보호하기보다 도전하게 하고 가르치기보다 기다려주려 합니다.

아이들은 우리가 믿어주는 만큼,

그리고 스스로 결핍을 채워가는 과정만큼 제 속도로 아름답게 자라나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아이들이 보여준 그 단단한 성장의 기록을 마음의 서랍에 소중히 넣어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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