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의 겨울을 건너온 나의 '봄 기록'
캐나다 베리(Barrie)의 긴 겨울 끝에 만난, 눈부시게 파란 한국의 봄하늘과 벚꽃.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4월은 여전히 고집스러운 겨울의 끝자락에 머물러 있곤 했습니다.
베리(Barrie)의 집 마당에는 무릎까지 쌓였던 눈이 미처 다 녹지 못해 질척거렸고,
앙상한 나뭇가지들은 차가운 바람에 몸을 떨며 봄을 기다리느라 지쳐 보이기도 했지요.
그곳에서 보낸 16년 동안, 저에게 봄은 '기다림' 그 자체였습니다.
그런 제가 다시 한국에 돌아와 10번의 봄을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매일 아침, 저는 마치 처음 본 세상을 마주하는 아이처럼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일기를 씁니다.
사람들이 무심코 지나치는 길가의 개나리 한 송이,
담벼락을 타고 흐르는 연분홍 벚꽃의 잔상을 집요하리만큼 기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상담학을 전공하며 제가 배운 가장 큰 지혜는 '현존(Presence)'입니다.
캐나다에서의 긴 겨울은 저에게 '계절의 결핍'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사계절이 뚜렷한 한국에서 나고 자란 저에게,
눈 덮인 풍경이 반 년 가까이 이어지는 북미의 겨울은 인내의 시간이었죠.
다시 돌아온 고국에서 만난 봄은 단순히 기온의 변화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당연했던 것들의 귀환'이었고, '상실했던 감각의 회복'이었습니다.
툭 하면 터져 나오는 꽃망울을 보며 저는 기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내일이면 떨어질 저 꽃잎이 오늘 내 눈앞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16년의 그리움을 보상받는 기분이었기 때문입니다.
특수교사로, 또 상담가로 살아가며 저는 수많은 '겨울 같은 마음'들을 만납니다.
얼어붙은 땅 아래에서 숨죽이고 있는 아이들,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혀 희망의 문을 닫아버린 부모님들.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제 마음에도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곤 합니다.
하지만 창밖의 봄은 저에게 매일 말을 건넵니다.
"보세요, 작가님. 아무리 단단한 얼음 밑에서도 생명은 준비하고 있었답니다."라고요.
제가 한국의 봄을 기록하는 것은,
상담실을 찾아오는 지친 영혼들에게 보여줄 '증거'를 수집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지금 당신의 마음이 겨울일지라도, 생명은 이미 당신 안에서 꿈틀대고 있습니다.
저 꽃들처럼요." 이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저는 오늘도 벚꽃 아래에서 멈춰 섭니다.
"화려한 가을의 끝자락을 기억합니다. 이토록 찬란했던 계절이 지나고 긴 겨울을 견뎌낸 뒤에야 비로소, '기록하고 싶은 봄'이 찾아온다는 것을 저는 이제 압니다."
내일은 캐나다에서 온 오랜 선배를 만나기로 했습니다.
정취 있는 덕수궁 돌담길을 걷고 싶다던 선배의 말에 일정을 짰지만,
아쉽게도 월요일은 궁궐의 문이 닫히는 날이더군요.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미소 지었습니다.
궁궐 안의 화려한 정원은 볼 수 없어도,
돌담을 타고 넘어온 꽃가지들은 길 위에서도 충분히 아름다울 테니까요.
어쩌면 닫힌 문 덕분에 우리는 정동길의 오래된 가로수를 더 깊이 응시하고,
좁은 골목 카페에서 더 진한 대화를 나누게 될지도 모릅니다.
인생도 그렇지요.
계획했던 문이 닫혔을 때, 우리는 비로소 주변을 둘러보게 됩니다.
캐나다인 작가로서 제가 기록하는 한국의 봄은 바로 그런 '틈새의 미학'입니다.
이제 저는 압니다.
기록하지 않는 아름다움은 금세 휘발되어 버린다는 것을요.
30년 지기 친구가 건네준 위로가 제 글을 통해 수천 명의 독자에게 가닿았듯,
제가 남기는 이 봄의 기록들도 누군가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는 작은 불씨가 되길 바랍니다.
캐나다의 광활한 자연이 주는 경외감도 좋지만,
한국의 골목길에서 만나는 이 아기자기하고 치열한 생명력이 저는 참 좋습니다.
오늘도 저는 카메라를 듭니다.
16년의 겨울을 견뎌낸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 '한국의 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요.
[작가의 한 마디] 내일 덕수궁 문은 닫혀 있겠지만,
선배님과 걷는 정동길엔 더 큰 봄이 피어 있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엔 지금 어떤 꽃이 피어나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