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 모든 괴로움은 마음의 움직임에서

by이호창

제 2부: 마음의 거울을 닦는 길, 요가



제2-5장: 마음이라는 야생마를 길들이다: 빠딴잘리의 지혜



2-5.1. 모든 괴로움은 마음의 움직임에서



우리는 왜 괴로워할까요? 삶이 뜻대로 풀리지 않아서,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해서, 혹은 잃어버릴까 봐 두려워서. 때로는 몸이 아파서, 때로는 관계가 힘들어서, 때로는 이유 없이 밀려드는 불안감이나 공허함 때문에. 이처럼 괴로움, 즉 두카 (duḥkha)는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 삶에 찾아옵니다. 우리는 이 괴로움에서 벗어나 진정한 행복과 평화를 갈망하지만, 종종 그 원인을 외부의 조건이나 다른 사람에게서 찾으려 합니다. “저 사람만 없었다면”, “이 상황만 아니었다면”, “내가 더 많은 것을 가졌더라면” 하고 말입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우리의 괴로움은 정말 바깥세상 때문에 생기는 것일까요?

고대의 위대한 현자 빠딴잘리 (Patañjali)는 이 질문에 대해 놀랍도록 명료하고 근본적인 답을 제시합니다. 그의 가르침을 집대성한 『요가 수트라, Yoga Sūtra』는 수천 년 동안 수많은 수행자들의 길잡이가 되어 온 지혜의 보고입니다. 이 짧지만 심오한 경전의 첫머리에서, 빠딴잘리는 요가 (Yoga)의 정의를 이렇게 내립니다. “요가는 마음 (citta, 칫따)의 작용 (vṛtti, 브릿띠)을 멈추는 것 (nirodhaḥ, 니로다하)이다.” 이 한 문장 안에 괴로움의 원인과 그 해결의 열쇠가 모두 담겨 있습니다. 빠딴잘리의 통찰에 따르면, 우리의 모든 괴로움은 외부의 조건 때문이 아니라, 바로 우리 마음 안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움직임, 즉 마음의 작용 때문에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바깥세상의 사건들은 단지 방아쇠일 뿐, 괴로움이라는 총알은 우리 마음 스스로가 장전하고 발사한다는 놀라운 진단입니다.


마음의 파도: 칫따 브릿띠 (citta-vṛtti) 란 무엇인가


빠딴잘리가 말하는 ‘마음’ 즉 칫따 (citta)는 단순히 뇌의 활동이나 지적인 생각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의식 활동이 일어나는 훨씬 더 광범위하고 미묘한 영역, 즉 우리의 모든 생각, 감정, 기억, 인상, 욕망 등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마음의 장 (場)’ 전체를 가리킵니다. 마치 바다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음의 작용’ 즉 브릿띠 (vṛtti)는 그 바다 표면에 끊임없이 일어나는 온갖 물결과 같습니다. 잔잔한 파문에서부터 거대한 폭풍우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마음에는 잠시도 쉬지 않고 무언가가 떠오르고 흘러갑니다.

『요가 수트라』는 이 마음의 물결, 즉 브릿띠를 크게 다섯 가지 종류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1. 올바른 앎 (프라마나, pramāṇa):

우리가 직접 경험하거나(직접지각), 논리적으로 추론하거나(추리), 믿을 만한 가르침(성언량)을 통해 얻는 정확한 지식이나 인식입니다. 예를 들어, 불을 만지면 뜨겁다는 것을 알거나, 해가 동쪽에서 뜬다는 사실을 아는 것 등입니다.

2. 잘못된 앎 (비빠랴야, viparyaya):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로 잘못 알거나 오해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둠 속에서 밧줄을 뱀으로 착각하거나, 누군가의 의도를 오해하는 것 등입니다.

3. 분별 망상 (비깔빠, vikalpa):

실제 대상 없이 말이나 생각만으로 존재하는 개념이나 상상입니다. 예를 들어, ‘토끼의 뿔’처럼 현실에는 없지만 말로 만들어낼 수 있는 개념, 혹은 미래에 대한 온갖 공상이나 걱정거리 등이 여기에 속합니다.

4. 잠 (니드라, nidrā):

깨어있는 의식 활동이 멈추고 ‘없음’에 대한 인식만이 남아있는 상태입니다. 꿈꾸는 잠과 깊은 잠 모두를 포함합니다.

5. 기억 (스므리티, smṛti):

과거에 경험했던 것을 잊지 않고 다시 떠올리는 작용입니다. 즐거웠던 추억, 괴로웠던 기억, 학습된 지식 등이 모두 기억에 해당합니다.

이 다섯 가지 브릿띠들은 때로는 우리에게 유익한 정보를 주기도 하지만 (올바른 앎), 때로는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거나 (잘못된 앎, 분별 망상), 의식적인 활동을 멈추게 하거나 (잠), 과거에 얽매이게 만듭니다 (기억). 중요한 것은 이 모든 브릿띠들이 끊임없이, 마치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우리 마음속에서 일어나고 사라진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단 한 순간도 이 물결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이 쉴 새 없는 마음의 움직임, 이것이 바로 빠딴잘리가 지적한 괴로움의 근원입니다.


움직임이 괴로움이 되는 이유: 동일시와 집착


마음속에 생각이 떠오르고 감정이 일어나는 것 자체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그런데 왜 이 자연스러운 마음의 움직임이 종종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들까요? 『요가 수트라, Yoga Sūtra』는 그 이유를 우리가 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마음의 작용, 즉 브릿띠 (vṛtti)를 ‘나’ 자신과 동일시 (同一視)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이것이 바로 자신과 일시적인 마음 현상을 하나로 여기는 근본적인 착각입니다.

예를 들어 마음속에 '슬픔'이라는 감정이 강하게 일어날 때를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보통 '아, 지금 내 안에서 슬픔이라는 감정이 경험되고 있구나'라고 객관적으로 인식하기보다, "내가 슬프다"라고 말합니다. 더 나아가 "나는 원래 이렇게 슬픈 경향이 있는 사람이야"라고 여기며, 일시적으로 나타난 감정 상태를 마치 자신의 영원하고 본질적인 정체성인 것처럼 받아들입니다. 마찬가지로 '나는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갈 때도, 그것이 단지 스쳐 지나가는 생각일 뿐임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정말로 '부족한 나'라는 존재가 되어 스스로를 괴롭힙니다. 기쁨이라는 감정이 강하게 느껴질 때도 우리는 '내가 기쁘다!'고 여기며 그 상태가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라지만, 그 감정 역시 왔다가 사라지는 일시적인 마음 상태일 뿐입니다.

『요가 수트라』는 바로 이 지점을 정확히 지적합니다. 마음의 작용 (브릿띠)이 멈추지 않을 때, ‘보는 자 (드라쉬트리, draṣṭṛ - 우리의 참된 본성, 변하지 않는 순수한 의식)’는 마치 마음 작용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우리가 본래 변하지 않는 ‘순수한 의식 (뿌루샤, Puruṣa)’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끊임없이 생겨나고 변하는 생각, 감정, 기억 등의 마음 작용 (브릿띠)에 완전히 자신을 투영하여, 마치 그것들이 곧 '나'인 것처럼 착각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즉, 경험하는 주체 (참된 나)와 경험되는 내용 (마음 작용)을 구분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덧없는 마음 상태와 나 자신을 하나로 동일시하게 되면, 우리는 필연적으로 그 상태에 감정적으로 얽매이게 됩니다. 즐거운 감정이나 만족스러운 생각 같은 기분 좋은 마음 상태가 나타나면, '이것이 바로 나다!'라고 여기며 그것을 놓치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붙잡으려 애씁니다. 이것이 바로 『요가 수트라』에서 라가 (rāga)라고 부르는 집착입니다. 즐거운 경험에 달라붙어 그것이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하지만 모든 마음 상태는 본래 변화하고 흘러가는 것이기에, 그토록 붙잡으려 했던 것이 결국 사라질 때 우리는 실망하고 괴로움을 느낍니다.

반대로 슬픔, 분노, 불안과 같은 괴로운 감정이나 부정적인 생각이 나타나면, '이것 또한 나인가?'라고 여기며 어떻게든 그 상태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칩니다. 이것은 드웨샤 (dveṣa)라고 불리는 혐오 또는 밀쳐냄입니다. 불쾌한 경험을 거부하고 어떻게든 피하려는 마음입니다. 그 불쾌한 마음 상태를 밀어내거나 없애버리고 싶지만, 우리가 저항하고 싸울수록 그 상태는 오히려 더 강하게 느껴지고 우리의 괴로움은 더욱 커집니다.

이처럼 마음의 상태 변화에 따라 기뻐하고 슬퍼하며 (一喜一悲, 일희일비), 즐거운 상태는 붙잡으려 하고 괴로운 상태는 밀어내려는 이 끊임없는 내면의 줄다리기야말로 바로 우리가 겪는 괴로움의 실체입니다. 외부의 사건들은 단지 우리 마음속의 특정한 브릿띠를 일으키는 계기가 될 뿐입니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았을 때 기쁨 (즐거운 브릿띠)이 일어나고 거기에 집착 (라가)하게 되고, 모욕적인 말을 들었을 때 분노 (괴로운 브릿띠)가 일어나고 그것을 혐오 (드웨샤)하게 됩니다. 하지만 풍경이나 말이 직접 우리를 괴롭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들에 대해 일어나는 우리 마음의 움직임과, 그 움직이는 상태를 ‘나’라고 착각하고 거기에 달라붙어 집착하고 혐오하는 우리의 반응이 바로 괴로움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이 모든 과정의 뿌리에는 결국 무지 (avidyā, 아비드야), 즉 끊임없이 변화하는 마음 작용과 변하지 않는 참된 나 (순수한 의식)를 혼동하는 근본적인 착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결국, 마음속에 생각이나 감정이 떠오른다는 그 자체, 즉 마음의 움직임 자체가 괴로움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닙니다. 진짜 원인은 그 일시적이고 변화하는 마음 상태들을 '영원하고 본질적인 나'라고 착각하고, 거기에 감정적으로 달라붙어 좋으면 붙잡으려 하고 싫으면 밀어내려는 우리의 태도에 있습니다.

빠딴잘리의 지혜는 우리에게 괴로움의 원인이 외부 세계가 아닌 우리 자신의 마음 안에, 더 정확히는 마음을 대하는 우리의 방식에 있음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우리는 본래 그 모든 마음 현상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을 그저 알아차리는, 변함없는 순수한 의식인데, 자꾸만 시시각각 변하는 마음 상태 자체가 되려고 하기 때문에 괴로운 것입니다.

이 진단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만약 괴로움의 원인이 우리 바깥이 아닌 우리 안에 있다면, 그 해결의 열쇠 또한 우리 손안에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움직임에서 괴로움이 비롯된다면, 그 움직임을 이해하고 그것과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는 법, 즉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배움으로써, 우리는 괴로움에서 벗어나 진정한 평화와 자유, ‘합일의 경지’ 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요가는 바로 이 근본적인 착각에서 깨어나, 내가 변화하는 마음 현상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을 알아차리는 변함없는 순수한 의식임을 깨닫도록 돕는 길입니다. 이것이 바로 요가가 우리에게 제시하는 위대한 가능성이며, 우리가 앞으로 탐구할 마음 다스림의 구체적인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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