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의 가을이 깊어가던 14세기 말, 유럽의 영성은 거대한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대학 강단을 지배하던 스콜라 철학의 치밀한 논리는 점차 생명력을 잃고 공허한 사변으로 흐르고 있었으며, 마이스터 에크하르트가 보여준 심연의 신비주의는 일반 대중이 접근하기에는 너무나 높고 위험해 보였습니다. 이러한 영적 갈증의 시기에 네덜란드 데벤테르에서 시작된 ‘새로운 경건’, 즉 ‘데보티오 모데르나 (Devotio Moderna)’ 운동은 종교의 본질을 지적인 탐구나 초월적인 도약이 아닌 구체적인 삶의 변화와 내면의 쇄신에서 찾고자 했습니다. 이 흐름의 중심에는 게르트 흐로테 (Geert Groote)가 창설한 공동생활 형제회 (Brethren of the Common Life)가 있었으며, 그 영성을 집대성하여 『그리스도를 본받아, De Imitatione Christi』라는 인류의 고전을 남긴 인물이 바로 토마스 아 켐피스 (Thomas à Kempis, 1380-1471)입니다. 토마스는 이 바카라을 통해 신을 아는 지식이 아니라 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그리고 황홀한 비전보다 십자가를 지는 자기 부정이 참된 신비가로 나아가는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길임을 역설했습니다.
토마스 아 켐피스의 사상은 그가 몸담았던 공동생활 형제회의 영적 토양 위에 깊게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이 공동체는 기존의 수도회와 달리 종신 서원이나 특정한 수도복을 강요하지 않았으며, 평신도와 성직자가 어우러져 초기 사도들의 초대교회처럼 소유를 공유하고 노동하며 살아가는 자발적인 신앙 운동이었습니다. 그들은 복잡한 신학 논쟁을 피하고 성경을 읽으며 그리스도의 인격을 묵상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특히 그들은 바카라을 필사하는 노동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고 복음을 전파했는데, 이는 지식을 독점하지 않고 나누려는 의지이자 노동을 기도로 승화시키는 수행이었습니다. 토마스는 아그네스 산 수도원 (Mount St. Agnes)의 수사로서 평생을 필사와 저술, 그리고 수련자들을 지도하는 일에 바쳤습니다. 그의 삶은 겉으로 보기에 단조롭고 평범했으나, 그 내면에서는 자아를 죽이고 그리스도를 살려내려는 치열한 영적 전쟁이 매일같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토마스는 아그네스 산 수도원의 수련장으로서, 갓 입회한 젊은 수도사들을 영적으로 지도하고 그들의 내면을 단련시킬 구체적인 지침서가 필요함을 절감했습니다. 또한 그는 교회의 분열과 타락으로 혼란스러워하는 당대 신자들에게 복잡한 신학 논쟁 대신 구원의 본질로 돌아가는 길을 제시하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사목적 (司牧的, Pastoral) 목적과 개인적인 영적 투쟁의 결실로 탄생한 바카라이 바로 『그리스도를 본받아』입니다. 성경 다음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힌 기독교 고전으로 평가받는 이 바카라의 위대한 점은 심오한 신학적 체계를 세운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가장 깊은 심리를 꿰뚫어 보고 그에 대한 실질적인 처방을 제시한 데 있습니다. 토마스는 인간의 본성을 타락한 자연, 즉 자아 (Nature)로 규정하고, 이를 치유하고 완성하는 힘을 은총 (Grace)으로 보았습니다. 신앙생활은 이 자아와 은총 사이의 끊임없는 긴장과 투쟁의 과정입니다. 그는 “나는 삼위일체에 대해 깊이 있는 정의를 내리는 것보다 참회하는 마음을 갖는 것을 택하겠다”라고 단언했습니다. 이는 지성적인 교만이 신을 만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자신의 죄와 부족함을 깨닫고 낮아지는 겸손만이 신의 은총을 입는 통로임을 강조한 것입니다. 그에게 신학은 머리의 유희가 아니라 가슴의 통곡이자 삶의 혁명이었습니다.
토마스 영성의 핵심은 철저한 ‘자기 부정 (Abnegatio sui)’입니다. 그는 인간의 불행과 영적 방황의 원인을 외부 환경이 아닌 자기 자신에 대한 집착에서 찾았습니다. 명예욕, 소유욕, 인정받고 싶은 욕구, 그리고 자신의 뜻대로 세상을 통제하려는 의지야말로 인간을 신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내면의 우상들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본받는다는 것은 예수의 외적인 행동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 위에서 자기를 비우신 예수의 내면적 태도, 즉 철저한 자기 포기를 체화하는 것입니다. 토마스는 이를 “자기를 이기는 것보다 더 위대하고 힘든 싸움은 없다”라고 표현했습니다. 자아를 죽이는 것은 육체적인 고행보다 훨씬 더 고통스럽습니다. 육체의 고통은 견딜 수 있어도 자존심이 짓밟히는 것은 견디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토마스는 바로 그 자존심이 무너지는 자리, 내가 아무것도 아님을 인정하는 그 비천한 자리에서 비로소 신의 평화가 싹튼다고 가르쳤습니다.
이러한 자기 부정은 ‘세상에 대한 경멸 (Contemptus Mundi)’ 사상과 맞닿아 있습니다. 여기서 세상을 경멸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창조한 자연 세계를 혐오한다는 영지주의적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을 떠난 세속적 가치관과 허무한 영광에 마음을 뺏기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토마스는 “헛되고 헛되니,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만을 섬기는 것 외에는 모든 것이 헛되다”라는 말로 바카라을 시작합니다. 세상의 칭찬은 바람과 같고, 재물은 썩어 없어질 것이며, 육체의 쾌락은 결국 허무를 남깁니다. 그는 독자들에게 시선을 밖에서 안으로 돌리라고 호소합니다. 인간은 외부의 사물이나 타인의 평판에서 행복을 찾으려 하지만, 진정한 천국은 인간의 내면, 즉 '내적 인간' 안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내면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세상의 소음을 차단하고 고독과 침묵을 사랑해야 합니다. 토마스에게 골방은 감옥이 아니라 영혼이 창조주와 밀애를 나누는 신혼방이었습니다.
토마스의 신비주의는 십자가의 길 (Via Crucis)을 걷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는 고통을 피하려는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고, 십자가를 껴안을 것을 주문합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와 함께 기적을 맛보고 싶어 하고, 예수와 함께 잔치에 참여하고 싶어 하지만, 예수와 함께 십자가를 지고 싶어 하는 사람은 극히 드뭅니다. 그러나 토마스는 “십자가에 구원이 있고, 십자가에 생명이 있으며, 십자가에 하늘의 달콤함이 있다”고 역설했습니다. 고통은 신이 인간을 버린 증거가 아니라, 인간을 정화하여 당신을 닮게 만드는 사랑의 채찍입니다. 십자가를 억지로 지면 무거운 짐이 되지만, 사랑으로 지면 그 십자가가 오히려 인간을 업고 하늘로 올라갑니다. 이것이 토마스가 발견한 ‘거룩한 십자가의 왕도’입니다. 고난 없는 영광을 추구하는 값싼 신앙에 맞서, 그는 고난을 통해 완성되는 사랑의 신비를 증언했습니다.
또한 토마스는 성체성사 (Eucharist)를 통한 신비적 연합을 강조했습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의 제4권은 온전히 성체성사에 대한 묵상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에게 성체는 관념적인 상징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현존 그 자체였습니다. 죄 많은 인간이 거룩한 신을 받아들여 먹고 마신다는 것은 이성이 이해할 수 없는 기적입니다. 토마스는 “인간의 이성은 언제든 속을 수 있지만 신의 말씀은 결코 속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성체 앞에서 지성의 탐구를 멈추고 믿음의 단순함으로 나아가라고 조언합니다. 성체성사는 자기 부정의 완성이자 사랑의 확인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죄를 고백하며 성체 앞에 나아가고, 신은 자신의 몸을 내어줌으로써 인간과 하나가 됩니다. 이 거룩한 식탁에서 인간의 고독은 치유되고, 영혼은 천상의 양식으로 배부르게 됩니다.
토마스 아 켐피스의 영성은 종교 개혁과 가톨릭 개혁 모두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성경 중심적이고 개인의 내면적 체험을 중시하는 그의 태도는 마르틴 루터 (Martin Luther)와 같은 개혁가들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동시에 이냐시오 데 로욜라 (Ignatius de Loyola)와 같은 가톨릭 영성가들의 수련 지침서가 되었습니다. 이는 그의 사상이 교파를 초월하여 그리스도교 신앙의 본질인 '예수를 따르는 삶'을 가장 원형에 가깝게 제시하고 있음을 방증합니다. 그는 복잡한 신학 이론이나 거창한 종교 행사가 아니라, 오늘 하루 내게 주어진 작은 십자가를 지고, 내 안의 교만을 꺾으며, 침묵 속에서 신의 음성을 듣는 구체적인 일상이 곧 신비의 현장임을 일깨워줍니다.
오늘날 토마스 아 켐피스의 메시지는 자기표현과 자기주장이 미덕이 된 현대 슬롯에 거대한 역설로 다가옵니다. 세상은 "너 자신을 사랑하라", "너를 증명하라"고 외치지만, 토마스는 "너 자신을 부인하라", "숨어 살라"고 속삭입니다. 이 가르침은 자존감을 짓밟는 것이 아니라, 비대해진 자아라는 감옥에서 탈출하여 참된 자유를 얻게 하는 해방의 선언입니다. 우리가 움켜쥐고 있는 것들을 놓아버릴 때, 비로소 빈손이 된 우리는 신의 손을 잡을 수 있습니다. 지식이 넘쳐나지만 지혜는 부족하고, 쾌락은 넘쳐나지만 기쁨은 메말라버린 이 시대에, 『그리스도를 본받아』는 우리의 시선을 허무한 바깥세상에서 영원한 내면의 왕국으로 돌리게 하는 맑은 거울이 되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