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었던 것들이 무너지던 날들- 상처#6
이 글에는 IMF 시기를 겪던 시절 가정폭력과 결핍, 가족을 향한 복잡한 감정이 담겨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오래 묻어두었던 기억이 떠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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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으시다면 자신의 속도에 맞게 천천히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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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어머니는 토스트를 식탁에 올려놓고 먼저 출근하셨다.
식탁에는 아버지만 앉아 있었다.
식탁에 가기 싫어 학교 갈 준비만 하고 주방을 지나려는데 아버지가 날 불렀다.
"배미영 너 이리 와 봐. 본 척도 안 하고 이놈이.."
걸음은 멈췄지만 아버지를 보고 싶지 않았다.
"어제 한말이 다 뭔지 설명을 좀 해봐"
그 소리에 나도 모르게 코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났다.
"뭐 웃어? 어제 한 소리가 뭐냐고 묻잖아! "
아버지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그 순간 오빠도 학교를 가겠다고 오빠방에서 나왔다.
"어제 말한 그대로예요."
"그래서 이제 아빠라고 안 부른다고? 그럼 내가 뭔데? 아저씨야? 저년이!"
"남보다도 못한데 뭐 아저씨도 넘치지.."
"뭐 말 다했어?"
아버지는 아직도 때릴 기운이 남아있으신 건지 벌떡 일어나셨다.
"학교 늦어. 가자"
서둘러 오빠는 현관문을 열었다.
그렇게 나와서 엘리베이터를 타고나서야 오빠를 마주하게 되었는데 오빠랑 내 얼굴이 참 볼만했다.
여기저기 쑤시고 얼굴은 붓고 아팠다.
오빠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나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 둘 다 이유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 거울 속, 퉁퉁 부은 두 얼굴이 말없이 웃고 있었다.
IMF는 무서웠다.
폭력은 이미 오래전부터 일상이 되어 있었다. 익숙해질 수는 없었지만, 견디는 법은 알게 됐다.
하지만 IMF는 달랐다. 그 불안만큼은 끝내 익숙해지지 않았다.
중학교 3학년, 뉴스에서는 연일 'IMF'라는 단어가 흘러나왔지만 그때는 그 말의 무게를 몰랐다.
다만 집 안에 울음소리와 짜증, 싸우는 소리가 늘어났다는 것만 알았다.
아버지가 야구를 그만두셨을 때와는 또 다른 종류의 불안이 집을 가득 채웠다.
그 무렵엔 가끔 건네는 어머니의 무심한 말조차 버거웠다.
왜 아버지에게 대들었는지 말하고 싶다가도 어머니와 눈을 마주치는 일조차 어려웠다.
IMF가 우리 집에 들어온 뒤, 관심과 사랑을 바라던 마음조차 사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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