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 이해#2
고모에게 그 말을 들은 뒤에도 나는 미국에서 지낼 수밖에 없었다.
한국도 아니고 당장 갈 곳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빨간 딱지.
3억의 빚.
개인회생.
그 모든 것을 어머니 혼자 감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멀리 떨어진 미국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무엇보다 그 사실을 어머니에게 직접 들은 것도 아니었다.
고모를 통해 알게 된 것이었기 때문에 나는 모르는 척했다.
내가 미국에서 잘 적응하는 것이 어머니의 걱정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되어갔다.
오빠와 나는 계속 사촌오빠의 매장에서 일을 했다.
사촌오빠가 오빠와 나에게 매장을 맡겨놓고 자리를 비우는 날도 많았다.
손님과 문제가 생겨도 사장인 사촌오빠가 직접 나서기보다 오빠를 앞에 세우는 일도 있었다.
나는 영어를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에 손님들과 마주치는 일보다는 테이블이나 창문을 닦고 청소하는 일을 주로 했다.
그러다 월급을 정산하던 어느 날이었다.
오빠가 내게 물었다.
“미영아. 너 얼마 받았어?”
내가 받은 돈을 말해주었다.
오빠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그때부터 오빠가 이것저것 알아보기 시작했다.
나는 당시 여행비자로 미국에 와 있었다.
그 비자로는 미국에서 일을 할 수 없다는 것도 그때 알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가 받은 돈이 그곳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들이 받는 돈보다 훨씬 적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손님들이 주는 팁도 직원들이 나누어 갖는 방식이라고 했다.
그냥 고모와 사촌오빠가 정해주는 대로 받고 있었다.
서로 받은 돈을 확인하고 나서야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이렇게 적은 돈을 받고 있는 건지,
팁은 어떻게 계산되고 있는 건지,
우리도 정확히 알지 못했다.
“방법이 없을까?”
오빠는 미국에서 계속 지낼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나는 반대로 점점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돈을 벌어 어머니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려고 미국까지 왔는데,
내가 여기 있다고 해서 어머니에게 크게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낯선 곳에서 눈치를 보며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어머니 생각이 났다.
빨간 딱지가 붙어도 괜찮았다.
빚이 있으면 같이 감당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이번에는 엄마 옆에 있고 싶었다.
그냥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어머니에게 전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미국 집에 있던 전화기의 수화기를 들었다.
그런데 누군가 통화 중이었다.
사촌오빠였다.
놀라서 얼른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잠시 뒤 방문이 벌컥 열렸다.
“너 뭐해? 뭘 엿들은 거야?”
“뭐?”
“방금 전화 들었잖아.”
“엄마한테 전화하려고 했어. 누가 통화하고 있길래 그냥 내려놓은 거야.”
“뭘 들었냐고.”
“아무것도 안 들었어.”
정말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
그런데 사촌오빠는 이미 잔뜩 화가 나 있었다.
내가 아무것도 듣지 않았다고 해도 믿지 않았다.
또였다.
나는 정말 듣지 않았는데.
또 누군가는 내가 하는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
사촌오빠가 들고 있던 무선전화기를 내 쪽으로 집어 던졌다.
전화기를 맞지는 않았지만 놀라 소리를 질렀다.
바닥에 떨어진 전화기는 배터리 덮개가 분리되고 건전지까지 튀어나왔다.
1층 거실에 있던 오빠가 내 비명을 듣고 계단을 뛰어 올라왔다.
“뭐야? 무슨 소리야? 지금 미영이한테 뭐 하는 거야?”
두 사람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니들 돈 벌겠다고 와서 전화기까지 엿듣고 말이야. 니들 다 나가!”
오빠는 내 옆에 떨어져 있는 전화기를 보았다.
“지금 미영이한테 저걸 던진 거야?”
“됐으니까 나가.”
“못 나갈 줄 알고?”
오빠가 주먹으로 벽을 내리쳤다.
나무로 된 집이라 벽에 구멍이 났다.
오빠는 잠시 그 벽을 바라보더니 내게 말했다.
“미영아. 짐 싸.”
“뭐?”
“나가자.”
일은 순식간에 벌어졌다.
심장이 요동쳤다.
뭐부터 챙겨야 할지도 모르겠고,
가슴이 옥죄어 오는 것처럼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나중에 고모에게 비슷한 말을 듣고서야 짐작했다.
내가 수화기를 들었을 때 사촌오빠는 고모와 통화 중이었던 것 같다.
“이혼하셨다며? 그것도 몰랐다고 하진 않겠지. 그러면서 돈 벌겠다고 여기까지 온 거니? 염치도 없어.”
고모의 말을 들었을 때,
아까 사촌오빠가 왜 그렇게까지 내가 무엇을 들었는지 확인하려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아마 두 사람은 우리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짐을 챙겨 집을 나서려던 오빠는 화를 참지 못하고 1층창고쪽에 세워져 있는 골프채를 들었다.
그리고 테라스 창문을 휘갈겼다.
유리가 깨지고 골프채가 휘었다.
창문이 깨지는 소리를 듣고 사촌오빠가 1층까지 서둘러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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