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떠나고 나서야 내가 그리워하는 것은 회사도 일도 월급도 아닌 그 안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바쁘게 돌아가던 업무 속에서 별말 없이도 호흡이 맞던 선후배들, 업무 중에 나누던 짧은 대화들, 특별하지 않은 그런 순간들이 기억에 남는다.
회사는 묘한 곳이다. 공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진 공간에서 사람들은 가족보다 더 오래 얼굴을 마주하며 친밀함을 쌓는다. 같은 시간대에 같은 일을 하며 자연스럽게 하루를 공유한다. 점심을 같이 먹고, 커피를 마시고, 일 얘기를 하다가도 어제 있었던 사소한 일을 아무렇지 않게 꺼내 놓는다. 그렇다고 친구라고 하기에는 서로 간에 분명한 선이 있다. 그 애매한 거리감 덕분에 오히려 더 오래 이어진다.
나는 사람을 넓게 만나는 편은 아니다.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몇몇과 깊게 지내는 쪽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회사 동료들과는 업무 외의 사적인 시간을 굳이 이어가지 않았다. 따로 연락을 주고받지 않아도 내일이면 또 회사에서 만나는 사람들. 다음 주에도, 다음 달에도 계속 볼 사람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퇴사를 결정하고 나니 그 당연함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회사를 벗어나는 순간, 우리를 이어주던 공통점도 함께 사라진다. 우리가 그토록 친밀하게 많은 것들을 공유하는 관계였지만, 같은 공간, 같은 시간, 같은 일을 공유하지 않는다는 건 생각보다 큰 변화다.
마지막 인사를 나누던 날, 평소와 다를 것 없는 대화를 하면서도 마음 한쪽에서는 묘한 감정이 올라왔다. 이 사람들이 내일은 내 일상에 없을 것이라는 사실. 종종 만나게 된다 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관계는 여기서 끝났다는 과장된 생각까지 스쳤다.
퇴사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리워지는 건 내 월급이 아니라 사람들이다. 일상에서 회사의 이름이 들리거나 뉴스를 보다가 관련 업계 이야기가 나오면 ‘지금쯤 다들 바쁘겠네.’ 하며 자연스럽게 생각이 이어진다. 내가 매년 진행하던 프로젝트의 시점이 되면 시키지도 않은 걱정이 피어오른다. 몸은 빠져나왔는데, 마음 한쪽은 아직 그 자리에 남아 있는 느낌이다.
코로나 시대에 학창 시절을 보낸 Z세대는 ‘대면’을 꺼린다고 한다. 통화보다 인스타그램 DM이나 카지노톡이 편하고, 우정도 일도 사랑도 다툼도 온라인에서 펼쳐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물리적으로 멀어졌다 해도 그리움이 덜할까? 떠나온 동료들에 대한 그리움을 가늠해 보다가 문득 과학 기술의 발달이 인간의 그리움을 얼마나 덜어주는지 궁금해진다.
나의 경우 퇴사를 결정하며 친한 동료들과 인스타그램 팔로우를 해두었다. 그들과 인연을 이어가고 싶었고 매일 나누던 일상도 궁금했기 때문이다. 이참에 나도 내 일상을 부지런히 기록해 보자 싶었다. 과연 인스타그램에서 만나는 옛 동료들의 사진이나 짧은 글은 무척 반갑고 위로가 되었다.
미리미리 SNS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더 많은 사람과 온라인으로 소통해 왔다면 지금의 아쉬움이 덜할 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온라인뿐 아니라 오프라인으로도 자주 연락하고 사적인 친밀함을 쌓아놓았으면 좋았으련만 하는 후회도 들었다.
반면에 희망퇴직 덕에 생긴 인연도 있다. 한날한시에 퇴사한 퇴직 동기들이다. 퇴직 결정에 대한 고민을 함께한 것은 물론, 퇴직금 운용이나 실업급여 수급처럼 소소한 일까지 같이 정보를 나누고 공감할 수 있었다. 전례 없던 조건 덕에 꽤 많은 사람들이 희망퇴직을 했고 그들은 고스란히 나의 동기가 되었다.
퇴직 동기가 생겼다는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희망퇴직의 장점이었고 우리는 ‘모두 같이 퇴직해서 정말 좋다’고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로 격의 없는 사이가 되었다.
회사를 떠났다는 이유로 사람들과 멀어질 거라고 예단하고 아쉬워하던 내가 그 생각을 조금 바꾸게 된 작은 사건이 있었다. 퇴사를 준비하며 내 마음속에 있었는지도 몰랐던 작은 꿈을 하나 발견했다.
그 꿈을 실현해 보고자 이런저런 구상을 하다 보니 경영, 법인세 같은 회사 운영이나 웹디자인, 코딩 등 실무적인 면까지 조언이 필요했다. 한 분야 한 분야 막힐 때마다 ‘이건 디자인팀 누구, 이건 경영지원팀 누구’ 하면서 과거의 동료들이 떠올랐다. 내가 궁금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다름 아닌 회사에 남아있는 나의 동료들이 아닌가 말이다.
그 사실을 떠올리고 나니 섭섭하던 마음이 조금 달라졌다. 매일 보지 않는다고 해서 관계가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이미 충분한 시간을 함께 보냈기 때문에,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편안함이 남아 있었다. 필요할 때 가볍게 안부를 묻고, 밥 한 끼 하며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고 가벼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관계. 그건 새로 만들어지는 인연과는 다른 종류의 든든함이었다.
물론 예전처럼 나른한 오후에 옆구리를 콕 찔러서 같이 커피를 한잔한다거나 일상을 나누며 하하호호 웃을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시기를 같은 울타리 안에서 보냈다는 사실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 시간은 생각보다 오래, 그리고 단단하게 남는다.
그래서 이제는 이렇게 생각한다. 회사를 떠나며 잃은 사람만 있는 건 아니라고. 오히려 그 안에서 만난 사람들은 형태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내 삶 안에 남아 있는 자산이라고.
내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며 막막함을 느낄 때, 문득 떠올릴 수 있는 이름들이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든든한 마음이 든다.어쩌면 회사가 나에게 준 가장 큰 자산은 월급이나 경력이 아니라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사실을, 회사를 떠난 뒤에야 비로소 제대로 이해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