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 퇴사할 거야!

by스텔라

싫어, 퇴사할 거야!

KakaoTalk_20260906_142014717.jpg그림 : taezin

“아니 그런데 왜 우는데~ 그렇게 슬프고 아까우면 희망퇴직 안 내면 되잖아.”

“싫어! 퇴사할 거야! 엉엉.”


⠀희망퇴직 기한 하루 전까지도 마음은 갈팡질팡했다.

희망퇴직을 하겠다는 건지, 말겠다는 건지, 하고 싶은데 안 하겠다는 건지, 하기 싫은데 한다는 건지.

절친한 친구조차도 조언하다가 지쳐 진저리를 칠 정도로 나는 아무것도 정리를 못 하고 있었다.


⠀2000년 5월에 입사를 했으니 딱 25년 하고도 2개월을 일했다.

그렇게 뛰어난 인재는 아니었지만 일하기 싫어 뺀질거리거나 이 말 저 말하며 잔머리 굴리는 직원은 아니었기에 회사와 나는 많은 우여곡절을 돌고 돌아 이제야 그럭저럭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중이었다.


⠀⠀내 나이가 만 51세. 회사는 55세를 기점으로 임금피크제에 돌입하고 그와 동시에 1년간 청원 휴직을 할 수 있다. 또 정년인 60세 전에는 1년간 의무적으로 안식년을 갖는다.


54세까지 온라인 게임을 다닌다고 가정했을 때 2년간의 안식년을 감안하면

55세부터 정년까지는 2년을 쉬고 3년을 일하게 된다.

그렇게 60세에 정년퇴직을 하겠거니 했다. 내 나이를 고려했을 때 그리 먼 일로 느껴지지 않았다.

⠀

동갑인 남편과는 맨주먹 불끈 쥐고 결혼 생활을 시작했다.

아쉽게도 재테크에 재능은 없었지만 둘 다 한눈 팔지 않고 성실하게 살아왔기에 아직은 중학생인 외동아이를 적당한 선에서 서포트해 주고 나와 남편도 오손도손 노년을 보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게 내 앞에 펼쳐질 은퇴와 노년이었다.


⠀“윤경 부장, 얘기 들었어? 우리 회사 희망퇴직 한대.”

별다를 일 없던 6월의 어느 날, 뜬금없이 회의를 하자며 나를 불러낸 선배가 비밀스럽게 속삭였다.

“대상은 올해 만 50세가 되는 75년생 이상 직원.”


⠀25년을 근무하면서 조직에서 하는 이런저런 일에 이제 놀랄 것도 없었다.

하지만 이번 희망퇴직 조건은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파격적이었다.


⠀“아니, 돈 없어서 연봉 많이 못 올려준다더니 우리 회사에 그렇게 돈이 많았어요?” 먼저 찾아온 건 놀라움이었다. ‘그런 파격적인 조건을 제안할 만큼 50세 이상은 불필요한 존재란 말이지?’ 놀라움이 지나간 자리에는 분노와 섭섭함이 채워졌다.


‘괘씸해서라도 절대 안 나간다!’ 하고 결심한 것도 잠깐, 지금은 만족스럽다고 해도 조직에서의 입지는 어느 순간이라도 흔들릴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감정적으로만 생각하기에는 희망퇴직의 조건이 꽤 괜찮았다.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진지하게 고민을 해볼 수밖에 없었다.


⠀하루 이틀 시간은 흐르고 이 중요한 시점에 하필 남편은 영국으로 장기 출장을 떠나 버렸다.

투자 대비 이익으로 봤을 때는 퇴사하는 것이 유리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이 기울수록 나의 멘탈은 점점 균형을 잃고 무너졌다.

출퇴근 차 안에서 매일 눈물바람이었고 밤에는 잠 한숨 못 이뤘다.


결국 불안감에 휩싸여 진정제를 삼켜야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렇게 마음을 콩밭에 두고 밀린 업무와 미팅을 오가다 보니 어느새 희망퇴직 신청 기한이 코앞에 다가왔다.


⠀퇴직 신청서를 내면 혹시 반려되지 않을까? 그럼 못 이기는 척 다녀볼까? 헛된 상상. 정년도 연장된다는데, 지금 그만두면 혹시 손해는 아닌가? 골머리를 앓으며 고민한들 어디 인생에 정답, 오답이 있으랴. 내가 원하는 것이 바로 정답인 것을 뻔히 아는데도 나는 내가 뭘 원하는지 알지도 못하고 퇴직 위로금과 정년까지 근무할 경우 받는 급여를 짜 놓은 장황한 엑셀 서식만 파고들었다.


“돈은 온라인 게임을 그만두는 것보다는 온라인 게임을 다니는 게 무조건 많이 받겠지. 그러니 돈은 생각하지 말고 너에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지에 집중해서 생각해 봐.” 태어났을 때부터 자기가 왜 언니인지 몸소 증명하고 있는 친언니의 조언이 큰 도움이 됐다.


⠀ “지금 네가 힘든 건 25년을 다닌 온라인 게임과의 헤어짐 때문일 수 있어. 25년 사귄 남자 친구와 헤어진다고 생각해 봐. 헤어짐이 얼마나 힘들어? 그래도 이별을 겪고 나면 잘했다는 생각이 들잖아. 온라인 게임에 남으면 지금과 변함없이 네가 좋아하는 곳에서 일하니까 좋고, 희망퇴직하면 돈 많이 받고 너의 시간도 생기니 좋은 거네. 너무 힘들어하지 말고 좋은 것과 더 좋은 것 중에서 고른다고 생각해 봐.” 회사의 분위기로 보나 온라인 게임 생활을 하는 마인드로 보나 높은 확률로 나보다 먼저 퇴사할 줄 알았던 동갑내기 남편의 조언도 마음에 와닿았다.


그렇게 나는 25년 2개월간의 온라인 게임 생활을 2주 만에 갑작스럽고도 시끌벅적하게 마무리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