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보다 더운 사무실
보면 께름칙한 기분이 들 것 같을 때가 있다. 대변이 마려워 공공화장실에 갔는데 변기 뚜껑이 덮여 있을 때, 시골 마을 초입에 서 있는 큰 나무에 붙은 부적 글귀 같은 것들. 사람의 호기심을 자극하지만 불길한 기운이 들어 자세히 살펴보지 않고 지나치게 된다.
장마 같지 않은 장마가 끝나고 폭염이 찾아왔다. 몇 달 전, 프랑스 등 유럽의 기온이 40도가 넘는다는 기사를 보며 우리나라보다 심하다며 안타까워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 차례이다. 경남 양산 등 최고기온이 40도를 육박했고, 8월 초부터는 주요 수도권도 38도가 예상되는 더위가 찾아온다고 한다. '올해가 가장 시원한 여름'이라는 말처럼 여름을 나타내는 적확한 표현은 없다.
이렇게 더운 날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는 사람은 상을 받아 마땅하다. 특히 나는 1호선을 타고 다니는데, 타본 사람은 알겠지만 1호선 플랫폼은 실외다. 더우면 더운 데로, 추우면 추운 데로 고스란히 계절을 느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한 바람이 불며 비가 내리는 날이면 처마가 있어도 무용지물이다. 지하철을 기다리고 서있는 라인까지 비는 들이친다. 그래서 앞쪽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은 우산을 쓰기도 한다.
요즘 같이 더운 날 출퇴근할 때는 옷이 땀으로 젖기 일쑤다. 조금이라도 빨리 지하철에 탑승하고 싶어 발을 동동 구르고, 상의를 펄럭이며 바람이 통하게 부채질한다. 그래도 바깥 더위를 이길 순 없다. 지하철을 타면 파워냉방을 해놓아서 땀이 금방 식긴 한다. 그리고 또 내려서 걸어가면 땀을 흘리는 반복.
며칠 전, 그런 반복을 여지없이 겪으며 출근을 하던 날이었다. 우리 회사는 주요 공지사항이 있으면 A4용지로 출력하여 입구 유리문에 붙여놓곤 하는데, 그날도 무언가 붙어 있었다. 사실 그렇게 공지사항이 많지가 않아서 어쩌다 한번 붙어 있곤 하는데, 멀리서 그 붙어 있는 종이를 발견했을 때 뭔가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다.
안 보고 그냥 지나치고 싶었으나 그럴 순 없었다. '냉방 기계 고장'이라는 단어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설마 해서 두 번은 읽었다. 사실 징조는 있었다. 그 전날 오후에 갑자기 정전이 일어났었기 때문이다. 일순간 사무실의 전기가 나갔다가 5초 후에 다시 들어오기를 2번 정도 반복됐다. 시설이 노후돼서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는데, 그다음 날 이렇게 큰 일이 발생할 줄 누가 알겠는가.
사무실로 들어왔더니 들어온 것 같지 않았다. 그대로 밖인 것 같았다. 먼저 출근한 사람들은 자리에 앉아서 연신 부채질을 하고 있었고, 들어오는 사람을 보며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마치 바깥 플랫폼에서 1호선 지하철을 기다리는 사람들처럼, 우리는 그렇게 일을 하기 시작했다.
직원들이 속속 출근을 완료해서 컴퓨터를 켜기 시작하니까 그 열기 때문에 더 뜨거워졌다. 뜨거운 열정으로 일을 할 수 있게 환경은 세팅이 된 것이다. 의자에 등을 대고 앉으면 등이 뜨거워졌다. 팔걸이에 팔을 대고 있으면 땀이 맺혔다. 어디 아픈 사람처럼 얼굴이 벌게져서 도저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 건물 관리소장님이 에어컨 수리 기사를 빠르게 불렀다고 했지만, 복구가 되려면 최소 오후는 되어야 될 것처럼 보였다.
속으로 '오늘 연차 쓴 사람이 있나' 생각했다. 연차를 쓴 사람은 언제나 부럽지만, 오늘은 특히 더 그랬다. '에어컨 틀어놓고 늦잠 자겠지?' 하는 생각에 땀이 더 났다. 선풍기에 의존한 채 2~3시간을 견디며 일을 했다. 그때 나도 '연차 쓸까'를 수십 번 고민했다.
다행히 오전 중으로 에어컨이 수리가 돼서 작동이 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차가운 바람이 나오질 않아서 완전히 시원해지려면 시간이 더 걸릴 듯했다. 프랑스는 법적으로 에어컨 설치하려면 힘들다는데, 어떻게 여름을 지낼지 궁금했다. 대부분 건물이 주요 문화유산이고 에어컨 실외기가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도 있다는데, 대단한 시민의식인 것 같다.
나에게도 그런 시민의식이 생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