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서(處暑)의 관조
온라인 플랫폼이 이용자를 기만하여 특정 행위를 유도하듯, 우리의 인간관계 역시 고도화된 다크패턴(Dark Pattern)에 오염되어 있다. 관계 초반 과도한 호의를 쏟아붓다 통제권을 쥐면 돌변하는 미끼 상품형 태도, 상대방의 자존감을 갉아먹으며 죄바카라감을 유도하는 가스라이팅식 숨은 비용 청구, 필요할 때만 불쑥 찾아오는 팝업창형 교류가 등이다. 이러한 패턴들은 겉으로는 매끄러운 사교성이나 친밀함의 형태로 위장되어 있기에, 피해자는 자신의 감정과 에너지, 지갑이 다 털리고 나서야 비로소 기만당했음을 인지하게 된다.
기만적 패턴으로 가득 찬 관계망 속에서 상대의 진실성을 판가름하고 나아가 지속 가능한 관계의 토대를 마련하는 유일한 방바카라은 역설적이게도 스스로 가면을 벗어던지는 것이다. 잘 보이기 위해 가공된 페르소나를 유지하는 행위는 상대방의 다크패턴이 작동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제공할 뿐이다. 날것 그대로의 솔직한 본모습을 투명하게 드러낼 때, 비로소 상대가 나라는 존재 자체에 반응하는지 혹은 내가 쓴 가면에 반응하는지 그 진위가 명확히 갈린다. 나의 결핍과 인적 빈틈을 직면했을 때 드러나는 상대의 태도야말로 그 관계의 지속 가능성을 보여주는 가장 객관적인 지표이다. 포장을 해체하는 정직함은 상대방의 계산기를 무력화하는 가장 강력한 리트머스 시험지다.
이러한 맥락에서 도출되는 가장 현명한 마음가짐은 거자불추 내자불항(去者不追 來者不拒, 가는 사람 붙잡지 않고 오는 사람 막지 않음)이다. 내 본 모습을 목격하고 미련 없이 떠나가는 자를 굳이 붙잡아두기 위해 다시 가면을 쓰는 행위는 감정의 비효율성을 초래할 뿐이다. 반면 편견 없이 문을 열어두되 나의 가식 없는 진심을 수용하며 걸어 들어오는 자만을 선별적으로 수용하는 태도는 관계의 밀도를 높인다. 이는 삶의 불필요한 노이즈를 걷어내고 내 인생의 '순수 유저'만을 남기는 정화 과정이다.
대지의 열기가 가라앉고 가을의 기운이 들기 시작한다는 처서(處暑)인 오늘, 숨 막혔던 올 여름의 더위가 자연 순리에 따라 물러가듯, 삶을 피로하게 만들던 기만들도 역시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있다. 억지로 인연의 끈을 쥐어짜지 않고, 가라앉을 것은 가라앉고 남을 것은 남게 두는 태도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정직하고 양심적인 삶의 양식이다. 계절의 변화를 담담히 수용하듯, 떠나는 인연에 연연하지 않고 찾아오는 진심을 막지 않는 마음은 관계의 과잉 속에서 스스로를 온전히 보존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