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법의 이전가격과 공정거래법의 정상가격

by날개

현대 글로벌 자본주의의 거대 기업 집단은 시장이라는 외부 공간의 중개를 거치지 않고, 내부의 폐쇄적인 글로벌 네트워크 안에서 천문학적인 규모의 재화와 서비스를 상호 교환한다. 이처럼 국가가 다른 본사와 해외 자회사, 혹은 지분을 나누어 가진 국내 특수관계인 계열사 간에 거래를 주고받을 때 내부적으로 적용하는 거래 가격을 세법에서는 ‘이전가격(Transfer Pricing)’이라 부른다. 이전가격의 본질적 정의는 수요와 공급이라는 시장의 자율적인 메커니즘에 의해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가격이 아니다. 이는 대기업 집단이 전체의 세금 부담을 최소화하고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경영학적으로 ‘기획’하고 ‘통제’하는 자의적 가격이다. 즉, 하나의 기업 집단이 국경이나 법인의 벽을 넘어 이익을 이쪽에서 저쪽으로 ‘이전(Transfer)’시킬 때 사용하는 수단적 가격인 셈이다. 반면 ‘정상가격(Arm's Length Price)’은 이러한 이전가격의 인위적인 왜곡과 꼼수를 잡아내기 위해 법이 고안해 낸 가상의 잣대다. 특수관계가 없는 완전히 독립된 제3자 간에 일반적인 상관습에 따라 거래했을 때 형성되었을 합리적인 시장 가격을 의미하며, 이는 기업의 자의적 이익 이전을 심판하는 절대적인 기준선으로 기능한다.


두 개념은 기업 집단의 내부 거래가 초래할 수 있는 경제적 왜곡을 바로잡고, 시장의 건전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사법적 통제 기준이라는 점에서 명확한 공통점을 지닌다. 이전가격과 정상가격 모두 ‘보이지 않는 손’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자유시장 경제의 가격 체계를 모방하거나 강제하려는 목적을 공유한다.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사적 계약의 자유는 보장되지만, 특수관계인 간의 거래만큼은 시장의 평균적인 합리성을 준수해야 한다는 사법적 합의가 두 개념의 밑바탕에 흐르고 있다. 만약 기업이 설정한 내부 이전가격이 법이 규정한 정상가격의 범위를 벗어나 비정상적으로 높거나 낮게 바카라정될 때, 국가 과세 당국과 시장 규제 기관이 강력한 칼춤을 추며 개입한다는 점 또한 완벽하게 동일하다.


그러나 두 개념의 명확한 차이점은 각 법률이 규정하는 조문의 정의와 규제의 궁극적 목적을 뜯어볼 때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우선 이전가격은 국제조세 영역에서 다국적 기업의 ‘해외 탈세’를 적발하기 위한 세법상의 핵심 용어다. 국제조세조정에 관한 법률(제4조 제1항)에 따르면, 과세당국은 거주자가 국외특수관계인과의 거래에서 적용한 거래가격이 ‘정상가격’과 다르면 그 정상가격을 기준으로 과세표준 및 세액을 경정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세법이 이를 감시하는 목적은 단순하고 명확하다. 한국 법인이 제품을 만들어 큰 이익을 남겼음에도, 세금을 덜 내기 위해 해외 자회사에 원가 수준으로 제품을 아주 싸게 넘기는 '장부상의 조작'을 막기 위함이다. 이처럼 이전가격을 낮추어 한국 법인의 이익을 고의로 지워버리고 세금이 없는 외국 자회사로 이익을 빼돌리는 꼼수를 적발함으로써, 한국 정부가 정당하게 확보해야 할 세금인 ‘세수(Tax Revenue)’를 온전하게 보존하는 것이 세법의 목적이다.


반면 공정거래법의 세계로 넘어오면 ‘이전가격’이라는 국경을 넘는 세법상 용어는 완전히 사라지고, 국내 계열사 간의 독과점과 불공정 행위를 심판하기 위한 ‘정상가격’의 독자적인 정의가 전면에 등장한다.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제45조 제1항 제9호)은 특수관계인이나 다른 회사에 상품·용역 등을 상당히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하여 특수관계인에게 사익을 편취하게 하거나 부당하게 지원하는 행위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이때 부당지원의 여부를 판단하는 공정거래법상 ‘정상가격’은 세법처럼 단순히 해외 탈세를 막기 위한 기준이 아니다. 국내 거대 대기업이 자금력이나 경쟁력이 부족한 특정 계열사에게 터무니없이 유리한 가격으로 일감을 몰아주어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의 생존권을 박탈하고, 국내 시장의 ‘공정한 경쟁 생태계’를 처참하게 교란하는 행위를 차단하기 위한 경제적 브레이크다.


결국 이전가격과 정상가격의 차이는 자본을 통제하려는 국가 권력이 어떤 칼날을 쥐고 있느냐의 차이와 같다. 세법의 이전가격 규제는 국경을 넘나드는 글로벌 자본이 자국의 조세 주권을 침해하는지를 감시하는 국경선 위의 파수꾼이며, 공정거래법의 정상가격 규제는 국내 시장 내부에서 거대 자본이 독과점 권력을 남용해 생태계를 파괴하는지 감시하는 내부의 포청천이다. 비 오는 날 온라인 게임인들이 몸에 해로운 나트륨 폭탄인 줄 알면서도 도파민을 위해 부대찌개를 삼키듯, 거대 자본은 이윤 극대화라는 본능을 위해 끊임없이 법의 경계선을 넘나들며 가격을 조작하려 든다. 그리고 그 자본의 탐욕이 폭주하는 지점에서 세법의 이전가격과 공정거래법의 정상가격은, 자본주의가 스스로의 모순과 파멸을 막기 위해 가동하는 매커니즘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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