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독서회'라서 회원의 대부분이 주부이지만, 그들 역시 평생 주부인 건 아니었고, 적은 수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물론 결혼한 이상 '주부'라는 정체성이 사라지는 건 아니니, 우리가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서 '주부 독서회'라는 말이 틀린 것도 아니다. 그리고 가끔 그들의 직업을 듣곤 그 회원을 한 번 더 바라보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독서회에서 하는 말의 내용이 그냥 그랬다면 그녀를 주시하진 않았을 것이다. 내가 보지 못한 부분을 지적해 주는 예리함에 종종 그녀의 말이 기대됐다. 너무 흥분하지도 않았고 다소 낮은 톤으로 전하는 바카라 이야기가 귀에도 마음에도 잘 들어왔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녀의 남편은 고소득 전문직이었다. 어쩌면 그런 배경도 그녀를 조금 다르게 보게 하는데 일조했는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어떤 말 한마디가 그 사람에 대한 인상을 좌우하게 된다. 그땐 모임이 끝나고 밥을 먹는 게 이미 무리의 문화로 자리 잡은 때였다. 매번 끝나고 뭘 먹을지 기대도 되던 때였다.
"OO 씨, 여기 반찬 좀 더 갖다 줘요."
그녀의 당당한 요구에 나는 순간적으로 내가 식당의 직원인 줄 알았다. 독서회 회원들의 평균 연령에 미치지 못하는 나는, 누가 새로 들어오든 언제나 '막내' 언저리에 있었다. 우리집에서도 막내기 때문에 식당에 가면 물을 따르고, 숟가락 젓가락을 챙기는 일에 익숙하다.
그렇게 자동반사처럼 챙긴다 하더라도 누군가 그걸 요구하면 기분이 좋지 않다. 숙제를 하려고 하는데, 숙제하란 잔소리를 들으면 하려던 마음이 싹 사라지는 것처럼. 하물며 그건 내가 해야 하는 일도 아니었고, 장기적으로 나를 위하는 말도 아니었다. 이게 바로 '호의가 지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의 한 예(例) 일 것이다.
그 뒤로 내게 그녀에 대한 말들이 도착했다. 이미 그녀에 대한 나의 인상은 호에서 불호로 기울어진 후였기에 다른 회원들은 그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하기도 했다. 들려온 소식은 그녀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였고, 얼마 후에 또 비슷한 얘길 들었다. 그 말을 한 사람은 평소 누구든 좋게 보는 편이고, 남의 뒷말을 잘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그 평가가 더 객관적으로 느껴졌다.
내가 꽁 했던 사람이라서 타인의 뒷말에 처음엔 크게 호응했다. 그런데 그게 2번이 되니 '꼬시다, 통쾌하다'는 느낌은 옅어지고 그곳에 '안 됐다'는 감상이 자리했다. 어른이 되면 성인군자가 된다는 편견(? 로망?)을 가진 때여서 저 나이 먹도록 일관된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게 슬프게 느껴졌다. 걱정은 앞서서 과연 진실한 관계를 맺고 살아는 가는 걸까 오지랖까지 부렸다.
지금은 이런 모습들이 지극히 평범하다는 걸 안다. 내가 본 건 그녀의 모습은 극히 일부일 뿐이고, 나 역시 어디선가 누군가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고 짐작하고 있다. 그러니 이 무례와 이 씁쓸함은 특별할 것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뭔가 이 씁쓸한 기분은 뭘까. 그녀는 이제 더 이상 독서회에 나오지도 않고, 어찌 사는지 소식 한 줄 전해져 오지 않지만 가끔 그녀 생각이 난다. 내게 인간관계의 쓸쓸한 맛을 가르쳐준 그녀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