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립도서관의 주부 대상 독서회(지금은 수차례의 건의로 주부로 한정되어 있지 않다.)에 10년째 다니고 있다. 그때 미취학 아동이었던 아이가 비위 맞추기 어려운 사춘기 소녀로 자랄 만큼 10년은 긴 시간이었다. 그때 멤버였던 이들 중 단 3명만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있다. 우리는 가끔 황혼에 선 노인처럼 독서회가 지나온 시간들을 톺아본다.
그간 많은 이들이 왔다 사라졌다. 그중에서도 특히나 기억이 강렬한 사람은 있기 마련이다. 나에게 10년의 세월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바로 '그'다. 그는 주부 대상 독서회에 혜성처럼 나타나 꽤 성실히 참여했다. 보통 여성들 사이에 남자 혼자 있는 청일점의 경우 기가 죽는다고 하지만, 그는 거의 매번 그 달의 바카라을 읽고 오지 않고도 당당했다.
사건은 마지막 모임도 끝난 이후에 일어났다. 평소처럼 열렬히 독서회를 진행한 후 아쉬운 마음에 누군가 함께 점심을 먹자고 제안했다. 모두 흔쾌히 동의했고, 도서관 밖의 우리는 조금 낯설어하며 추어탕을 먹었다. 이후엔 자연스럽게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어수선한 분위기가 가라앉았을 때쯤 그가 폭탄 발언을 터뜨렸다.
"혹시 여러분은 뼈가 녹을 것 같은 사랑을 해보신 적이 있나요?"
순간 좌중에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조용해졌다. 오직 눈동자 돌아가는 소리만 들렸다. 그 침묵을 동의의 의미로 받아들였는지 그는 말을 이어나갔다. 자신은 그런 경험을 해보았노라고. 그는 그런 사랑을 통과하고 있는 듯했고, 그 사실에 어떤 자부심까지 느끼는 것 같았다. 다시 눈동자들이 바삐 움직였다.
'어,,, 이게 말로만 듣던 불륜인가? 그런데 저런 걸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해도 되나?'
그렇게 침묵 속에서 그의 일장연설이 끝났고, 잠시 숨조차 참는 것 같았던 사람들은 평이한 대화를 이어나갔다. 다음 해에 그는 독서회에 다시 나오지 않았고, 우연한 기회로 만난 적은 있지만, 뼈가 녹는 사랑이 너무 강렬해 나는 차마 아는 척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여기엔 아주 재미난 후일담이 있다. 독서회가 시작하고 몇 달 후 합류한 K 역시 그날 그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그날 아무도 부정하지 않던 그 상황을 '그'처럼 생각했던 모양이다.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고.
'아, 요즘 사람들은 다들 애인 하나쯤은 두고 사는구나!'
친해진 후에야 K는 그때 일을 언급했고 독서회의 고인물 셋은 기함했다. 그런 오해를 받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에.
가끔 '그'가 떠오른다. 그 뼈가 녹는 사랑은 아직도 진행형일까? 그때는 침묵하고 말았지만, 지금의 나라면 그의 곁에 바싹 붙어 부추겼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사랑은 도대체 어떤 사랑이냐고. 그의 이야기에 몰두한 내 눈은 어쩌면 별처럼 반짝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