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치할 상대가 없어 바닥에 꼬꾸라진 복서의 비참함

by왜살지

화 낼 대상이 없다. 그러나 화난다. 이유는 모든 것이기도 하고 아무 것도 아니기도 하다. 누군가를 때리고 싶다. 욕하고 싶다. 그러나 그 누구는 누구도 아니다.

나는 어려서부터 선생들을 싫어했다. 그들은 가르쳤지 알려주지 않았다. 그들이 가른 것은 옳음과 그름, 정답과 오답이었다. 나에게 매력적인 것들은 언제나 오답이었고 오답 편에 서고 싶었고 옳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아무도 알려 주지 않는 것들을 알아야 했다. 내가 맨 처음 알고 행한 것은 증오였다. 그것이 나의 윤리였다.

그러나 나는 옳지 않았고 흔들렸고 흔들려야 했기에 증오는 세상을 향한 만큼 나를 향했다. 나는 어쨌든 그들 밑에서 살아가고 있었고 삶은 굴복이었다. 나는 순교를 꿈꾸며 매번 마지막 숨을 쉬었다. 다신 안 그럴게 애인의 바짓가랑이를 붙잡는 변명처럼 나는 다시 살았다.

굴복은 습관이 되었고 나는 여기까지 왔다. 선생들은 지금 내게 친절하다. 그 올바른 친절함이 나를 역겹게 한다. 당신들의 보람을 지켜보는 것은 내게 고역이다. 그대들의 보람은 아이들의 키를 침대에 잘 맞추는 일이지, 악몽을 꿀지언정 그날 하룻밤을 재우고 또 하루를 재우면 그것으로 만족하는 계모의 뿌듯함.

나는 행정실 모니터로 그대들의 돈을 나눠주며 말라 바스라지는 단풍잎 같은 두 손이 썩어감을 느낀다. 다 썩기 전에 누군가의 뺨을 후려 갈겨야 하는데. 그러나 누구를?

그래. 그래서 나는 포르노를 보고 아이돌을 보고 몸이 들어가고 나온 여자들을 본다. 같이 썩지 않고는 썩은내를 참을 수 없다.

열심히 묵묵히 참고 일하는 그 모든 사람들. 나는 그들 모두가 존경스러운 만큼 가증스럽다. 나를 멸하고 싶은 만큼 그들을 멸하고 싶다. 클린치할 상대가 없어 바닥에 꼬꾸라진 복서의 비참함. 그는 링 위에서 아사할지언정 승부를 끝내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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