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다정함의 그림자, '러브밤'의 실체

3화-악성 나르시시스트가 남기고 간 잔해

by아련나래
"함께 서 있으라, 그러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마라.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서 있고, 참나무와 사이프러스 나무도 서로의 그늘 속에서는 자랄 수 없으니."- 칼릴 지브란(Kahli Gibran)

'러브밤(Love Bombing)'은 말 그대로 '사랑의 폭탄을 투하하듯, 관계 초기에 상대방에게 과도한 애정과 칭찬, 선물을 쏟아붓는 행위를 말합니다.

보통 나르시시스트가 상대방의 심리적 방어기제를 무너뜨리고 자신에게 의존하게 만들기 위해 사용하는 전형적인 수법입니다.

단순히 호감이 있어서 잘해주는 것과 '러브밤'사이에는 명확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 주요 특징들을 정리하자면,


"우리는 운명이야", '너처럼 완벽한 사람은 처음 봐" 등 만난 지 얼마 안 된 시점에서 지나치게 강도가 높은 칭찬을 반복합니다. (비현실적인 찬사)


잠시도 쉴 틈 없이 문자나 전화를 하며 상대방의 일상을 점유합니다. 이는 관심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경계선 허물기에 가깝습니다.(끊임없는 연락)


상대방이 부담을 느낄 정도로 비싼 선물이나 과한 친절을 베풀어, 거절하기 어렵게 만들고 부채감을 느끼게 합니다.(과한 선물과 호의)


진지한 미래 계획이나 약속을 매우 빠르게 제안하며, 상대방이 이성적으로 판단할 시간을 주지 않습니다.

(급격한 속도)


나르시시스트에게 러브밤은 진정한 사랑이 아닌 '이상화(Idealization)' 단계의 도구입니다.

상대방을 완벽한 주인공처럼 느끼게 만들어 자신에게 중독되게 합니다.(통제권 확보)


자신이 가진 결함이나 위험 신호(Red Flags)를 화려한 애정 공세로 가려버립니다.(검증차단)


상대방이 오직 자신에게만 집중하게 하여 주변 지인들과의 관계를 소홀하게 만듭니다.

(정서적 고립)


러브밤 단계가 지나고 상대방이 완전히 넘어왔다고 판단되면, 나르시시스트는 갑자기 차갑게 변하는

'평가절하(Devaluation)' 단계로 넘어갑니다.

이때 피해자는 이전의 달콤했던 순간(러브밤)으로 돌아가기 위해 더욱 필사적으로 매달리게 되는 악순환에 빠지기 쉽습니다.


주변을 기웃거리는 악성 나르시시스트의 궤적을 곁에서 지켜본 경험이 있다. 그녀는 타깃을 포착하면 소름 끼칠 정도로 치밀하고 교묘하게 접근한다.

처음 마주한 순간 느껴졌던 형용할 수 없는 '싸함', 나는 그 본능적인 경고를 동력 삼아 부단히 거리를 두었고,

적절한 타이밍에 악의 고리를 끊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선택한 또 다른 타깃은 달랐다.

나르시시스트에게 완벽한 먹잇감이었던 한 지인(에코이스트)은 주변의 간곡한 충고에도 불구하고 귀를 닫았다. 쏟아지는 선물 공세와 달콤한 찬사에 취해, 오히려 악성 나르시시스트의 입장을 대변하며 그 허상을

증명하는 데 열을 올렸다.

최근 길에서 우연히 만남 그녀는 결국 이용가치가 다해 버려진 채, 주변에 아무도 남지 않은 쓸쓸한 뒷모습을 하고 있었다.


나르시시스트의 수법은 언제나 일관적이다.


타깃이 당혹감을 느낄 정도로 급진적이고 끈질기게 상대의 바운더리를 파고든다.(경계침범)


단순히 당근만 주는 것이 아니다. 마음대로 조종되지 않는 상대는 '플라잉 몽키'라 불리는

추종자들을 이용해 이간질로 궁지에 몰아넣고 철저히 고립시킨다.

(플라잉 몽키의 동원)


자기 상황이 불리해지면 이들은 돌연 비련의 여주인공으로 돌변한다.

가스라이팅으로 세워둔 '아바타'에게 모든 바카라임을 덮어 씌우고, 자신은 눈물 뒤에 숨어 우월감과

관심을 갈구한다.(바카라임 전가와 피해자 코스프레)


자신보다 빛나는 이들을 시기하여 뒤에서 깎아내리는데 도가 터 있지만, 정작 자신의 본모습이 탄로

날 즈음엔 미련 없이 새 먹잇감을 찾아 떠난다.(정서적 허기와 폐기)



그들에게 타인은 인격체가 아닌, 끝없는 정서적 허기를 채워 줄 소모품일 뿐이다.

화려한 '러브밤'의 끝은 언제나 황폐한 폐허다.

그 지독한 사이클을 목격하며 다시금 깨닫는다.

본능이 보내는 신호에 귀 기울이고 나만의 선을 지켜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무분별한 관계의 소용돌이에서

나를 단단하게 지켜내는 유일한 길임을.




"독이 든 술잔을 들고 있는 사람과 계속 건배할 수는 없다.

때로는 관계를 회복하는 것보다 그 잔을 내려놓고 걸어 나오는 것이 유일한 해결바카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