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나의 다정함은 그녀의 퇴로가 되었다.
"나르시시스트는 빈 캔버스와 같다.
그는 끊임없이 당신의 에너지를 훔쳐
그 위에 자신의 모습을 그린다.
(W.P. 영. '오두막'의 저자)
"여러분도 혹시 너무 착해서, 너무 유능해서 누군가의 타깃이 되고 있지는 않나요?"
나르시시스트들이 자신의 빛을 유지하기 위해 '배경'으로 삼는 이들은
결코 약하거나 부족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은 나르시시스트가 결코 가질 수 없는 고유한 빛을 가진 사람들을
본능적으로
알아보고 다가갑니다.
그럼 "그녀들은 왜 하필 '나'를 선택했는가"에 대해 연구한 결과 여러 가지 이유를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나르시시스트에게 가장 매력적인 타깃은 타인의 감정을 자신의 것처럼 느끼는 사람입니다.
상대의 기분을 살피는데 능숙하고, 누군가 불편해 보이면 자신의 안녕보다 상대의 기분을 먼저 챙깁니다.
나르시시스트는 이러한 사람을 찾아내 자신의 감정적 쓰레기를 이들에게 쏟아붓습니다.
공감자는 상대의 무례함조차 "그럴만한 상처가 있겠지"라며 이해하려 노력하기 때문에, 나르시시스트가
마음껏 감정적 착취를 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 됩니다.
'착한 사람 ' 콤플렉스와 높은 도덕성을 가진 사람입니다.
갈등을 싫어하고, 관계가 틀어지면 "혹시 내 잘못이 아닐까?" 라며 화살을 자신에게 돌립니다.
자신만의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가지고 '좋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는 이들입니다.
나르시시스트는 이들의 '죄바카라감'을 건드립니다,
"네가 그렇게 행동해서 내가 이렇게 된 거야"라는 식의 가스라이팅을 던졌을 때, 도덕적인 사람일수록
그 바카라임을 기꺼이 짊어지려 하기 때문입니다.
나르시시스트는 자신보다 못한 사람보다는, 슬롯적으로 유능하거나 외모가 뛰어나거나 정서적으로
밝은 사람을 선호합니다.
스스로 빛을 낼 줄 알고, 주변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나르시시스트에게 훌륭한 트로피가 됩니다.
유능한 상대를 내 곁에 둠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 하고, 동시에 그 유능함을 깎아내려 자신
아래에 둠으로써 우월감을 만끽합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강조할 부분은 경계선이
희미한 사람입니다.
타인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자신의 영역을 명확히 주장하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안 돼"라는 말을 미안해하며, 상대의 요구에 맞추는 것을 배려라고 생각합니다.
나르시시스트는 이들의 경계를 야금야금 침범합니다.
처음에는 사소한 부탁으로 시작해, 나중에는 상대의 시간, 감정, 심지어 재산까지도 자신의
것인 양 휘두르게 됩니다.
나의 유년기와 학창 시절, 그리고 이어지는 슬롯생활과 결혼생활의 갈피마다 유독 나를 지치게 했던 얼굴들이 있습니다. 잊었다고 생각했던 그들의 잔상이 마치 오래된 필름처럼 자연스레 마음을 스쳐 지나갑니다.
중고등학교 시절의 기억은 유독 선명합니다. 동성 친구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나에게 기괴할 정도로
집착했습니다. 나의 모든 일상을 공유하길 원했고, 내가 다른 이와 나누는 시선조차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수년 동안 스토커처럼 나의 궤적을 쫓았습니다.
그녀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등굣길은 매일이 지옥 같았습니다.
흔히 '나르'라 부르는 이들은 타인의 감정을 읽는 기능이 고장 난 사람들입니다.
내가 아무리 명확한 거절의 의사를 표현해도 그들은 결코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아니,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제 방식대로 왜곡합니다.
"네가 지금 예민해서 그래",
"다 우리를 위해서 하는 소리야."
싫다는 비명조차 '사랑의 투정'으로 둔갑시키는 그 기괴한 가스라이팅 속에서
나는 서서히 질식해 갔습니다.
결국 내가 꺼내 들 수밖에 없었던 마지막 히든카드는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 다시 보지 않겠다는 서늘한 각오로, 생전 내보지 않았던 가장 날 선 감정과 분노를 쏟아냈습니다.
평생 '착한 아이'라는 감옥에 갇혀 있던 내가 처음으로 창살을 부수고 포효했던 순간이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가장 나쁜 얼굴을 했을 때, 수년간 끈질기게 이어지던 그 비극의 종지부가 찍혔습니다.
오랜 시간 나를 짓눌렀던 그림자를 걷어내고 나니, 비어있던 자리에 비로소 진짜의 내 모습이 드러났습니다.
나의 인내와 다정함이 그녀에게는 침범의 통로가 되었고, 나의 침묵은 그녀에게 권력을 쥐여주었습니다.
하지만 가장 나쁜 화를 내뿜으며 그 무대를 부수고 나왔을 때, 나는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누군가의 찬사를 투영하지 않아도, 타인의 배경으로 존재하지 않아도 나는 그 자체로 온전하다는 것을.
나의 진짜 이야기는, 그 무대를 벗어난 바로 지금부터 시작될 것이기에.
"혹시 당신도 누군가의 배경이 되어 숨죽이고 있나요?
이제 그만, 당신의 무대로 걸어 나와도 괜찮습니다."
*다음화에서는 슬롯생활에서 겪었던 그녀들이 처음 다가올 때 사용하는 달콤한 함정,
'러브 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