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일 때의 내 모습이 '진짜 나'일까,
“나는 혼자일 때 ( )하다.” 빈칸에 어떤 말을 채울 것인가.
혼삶을 주제로 모인 독서모임에서 참석자들이 채운 단어는 놀라울 만큼 다양했다.
혼자일 때 비로소 "살 것 같다", "편안하다", "자유롭다"는 사람도 있었고, "고요하다", "심심하다"를 지나 "공허하다", "불안하다", 심지어 "괴롭다"고 답한 사람도 있었다. 어떤 이는 감정 대신, "청소한다", "계획을 세운다", "분주해진다"는 등의 행동을 먼저 떠올렸다.
답변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서로의 답을 들으며 놀라는 표정이었다. '혼자'라는 같은 시간을 저마다 이렇게 다르게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그제야 실감한 듯했다.
혼자일 때의 내가 '진짜 나'일까
우리는 흔히 "혼자인 시간을 통해 진정한 자신을 발견한다"는 말을 한다. 이 말에는 어느 정도 동의한다. 혼자는 타인의 시선과 역할에서 잠시 벗어나 자기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혼자일 때의 내가 진짜 나다"라는 말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혼자 있는 모습 역시 하나의 상황 속에서 나타나는 반응이기 때문이다. 혼자가 아직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당황하거나 불안할 수 있다. 반대로 오랜 시간 혼자 지내온 사람이라면 혼자일 때 가장 편안함을 느낄 수도 있다. 혼자의 시간이 지나치게 적거나, 반대로 너무 많이 주어진 상황에서도 우리의 감정은 평소와 달라진다.
우리는 가끔, 혼자 있을 때의 감정이 “진짜”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회사에서 웃는 나는 가짜이고, 집에서 멍하니 있는 나만 진짜일까. 친구들과 떠들던 나는 연기였고, 혼자 침대에 누운 내가 본모습일까. 인간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슬롯적 존재다. 타인과 부대끼며 조율하고, 때로는 페르소나를 쓰며 슬롯적 역할을 다하는 모습 또한 나의 중요한 일부다. 홀로 있을 때의 침잠된 모습만을 ‘진짜 나’라고 규정해버리면, 세상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나의 역동성은 가짜나 위선이 되어버리는 오류에 빠진다.
사람들은 종종 "혼자 있으니 우울해졌어"라고 말한다. 그러나 혼자가 우울을 만들어낸 것인지, 아니면 원래 마음속에 있던 감정을 비로소 마주하게 된 것인지는 구분해 볼 필요가 있다. 혼자는 감정을 새롭게 만들어내기보다, 바쁜 일상 속에 가려져 있던 감정을 드러내는 시간을 선물한다.
갑작스러운 독립이나 고립으로 인해 느끼는 당황스러움, 낯섦, 혹은 지루함마저도 우리는 너무 쉽게 ‘외로움’이라는 단어 하나로 퉁쳐버리곤 한다. 이 감정의 게으른 명명(命名)을 경계해야 한다.
심심함은 실패한 시간이 아니다
혼자 잘 사는 사람은 ‘공허하지 않은 사람’이 아니라, ‘공허함을 잘 다루는 사람’이다. 공허함을 부정하거나 애써 없애려는 것이 아니라, 그 적막과 고요를 있는 그대로 견뎌내는 맷집이 필요한 것이다.
스마트폰과 빽빽한 스케줄에 익숙한 현대인들은 심심함을 없애는 기술은 발전시켰지만, 심심함을 누리는 능력을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 조금만 조용해져도 무언가를 틀고, 손에 휴대폰을 쥐고, 해야 할 일을 찾는다. 우리는 고요를 견디기보다 자극에 익숙해진 시대를 살아간다.
심심함은 실패한 시간이 아니다. 아무런 자극도, 목적도 없는 텅 빈 상태가 되어야 비로소 뇌는 쉴 수 있고, 흩어졌던 감정들이 제자리를 찾으며, 나를 진지하게 돌아볼 여유가 생긴다. 창의력과 회복 탄력성은 언제나 이 텅 빈 공간에서 싹튼다.
그래서 현대의 1인 가구에게 필요한 것은 '생산적인 혼자만의 시간'만이 아니다. 나를 발전시키기 위해 계획을 세우고 성장하는 시간만큼이나,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심심함과 고요를 삶 안에 다시 들여놓는 일이다. 내 영혼의 숨통을 틔워주는 '무(無)의 시간'을 확보할 때, 비로소 외부 환경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지속 가능한 독립이 가능해진다.
혼자의 시간에도 계절이 있다.
혼자의 시간에도 저마다의 계절이 흐른다.
"나는 혼자일 때 ( )하다."
그 빈칸에 어떤 단어를 적었든 정답은 없다. 중요한 것은 그 답이 지금의 나를 보여주는 하나의 풍경이라는 사실이다. 어떤 날의 풍경은 눈부신 햇살 같은 자유일 것이고, 또 어떤 날의 풍경은 짙은 안개 같은 적막일 것이다. 오늘의 답은 내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오늘 '살 것 같다'고 적었다고 해서 내일의 공허함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오늘 '불안하다'고 적었다고 해서 그 감정이 영원히 머무는 것도 아니다. 혼자를 잘 산다는 것은 늘 같은 감정을 유지하는 사람이 되는 일이 아니지 않은가. 계절이 바뀌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듯, 혼자의 감정이 변하는 것 또한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어쩌면 그 사람이야말로 진짜 독립한 사람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