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미술이 소비되는 방식이 달라졌다

감각이 대중화된 시대, 진짜 부는 무엇을 소유하는가?

by앤트윤antyoon

예술이 점점 상업미술과 순수미술의 격이 희미해진다기보다, 뭔가 순수미술이 점점 상업미술의 방식으로 많이 소비되고 있는 것 같다. 마치 예전에는 쉽게 접하기 어려웠던 파인다이닝을 이제는 손쉽게 먹고 있는 느낌이랄까.


온 세상의 포트폴리오를 누구나 쉽게 보고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면서, 상업미술만 하던 사람들도 점점 감각을 키우기가 쉬워졌다. 예술가들 역시 상업적으로 많이 소비되고 있고, 특히 여러 브랜드와 다양한 분야에서 콜라보를 진행하다 보니 그 결과물 자체가 또 하나의 포트폴리오로 남는다.


그러면 일반 디자이너들은 그것을 손쉽게 보고 정보를 얻고, 참고하고, 따라 할 수 있다. 예전에는 특정 예술가나 디자이너만 가지고 있던 감각과 표현 방식이 너무 쉽게 공유되고, 누구나 시도할 수 있는 것이 되면서 점점 감각의 경계가 모호해진 것 같다.


그래서 요즘은 감각이 없어졌다기보다, 오히려 감각이 너무 많이 공유된 시대가 된 것 같다. 무엇이 세련된 것인지, 무엇이 새로운 것인지에 대한 정보가 너무 쉽게 유통되니까.


그런데 이것도 결국 인간이 어느 정도 살 만해졌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호화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정말 부라는 것은 내가 의뢰한 디자인을 디자이너의 아이디어, 컨셉, 기획, 설계 그대로, 단 하나도 현시점과 타협하지 않고 완성할 수 있도록 모든 비용을 쓸 수 있는 재력에 가까운 것 아닐까.


단순히 비싼 것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의 수고와 아이디어와 시간을 온전히 살 수 있는 것. 그 수고의 가치를 알아보고, 결과물이 당장 시장에서 얼마나 효율적인지와 상관없이 디자이너가 생각한 것을 끝까지 구현할 수 있도록 비용을 지불하는 것.


어쩌면 인간이 역사에 남을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데에는 결국 이런 ‘소유의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무엇을 살 수 있느냐보다, 어떤 사람의 생각을 어디까지 현실로 만들어낼 수 있는가.


그 차이가 결국 우리가 남기는 것의 차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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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이 대중화된 시대, 진짜 부는 무엇을 소유하는가?


예전에는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예술가의 감각과 디자인 언어가 이제는 누구에게나 공개된다. 포트폴리오와 협업의 결과물은 끊임없이 공유되고, 한 사람의 독창적인 감각은 수많은 사람의 레퍼런스가 된다.


그래서 이제는 좋은 감각을 갖는 것보다, 어디까지 자신의 생각을 타협하지 않고 구현할 수 있는가가 더 희소한 가치가 된 것은 아닐까.



Credit

글. 이정윤

사진. 이정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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