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기획·제작·디렉팅 | 이정윤
다시 회사에 들어왔고, 이번에는 프로젝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한동안 나는 내가 다시 회사에 들어갈 수 있을까 생각했다. 정확히는, 다시 회사에 들어가는 것보다 내가 예전처럼 일할 수 있을까가 더 걱정이었다.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2년 정도 일을 쉬었다.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것이 무너져서 퇴사한 것은 아니었다. 서서히 쌓였던 무기력과 무력함이 어느 순간 터졌고, 그때는 일을 계속하는 것보다 멈추는 것이 먼저였다. 퇴사를 하고 나서도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 왜 퇴사하지?’
그때는 답을 잘 몰랐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의 나는 쉼이 절실히 필요했던 것 같다. 2년 동안 완전히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주변에서 들어오는 소일거리를 하기도 했고,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며 몇 개월씩 일을 하기도 했다.
블로그도 열심히 했다. 등산을 시작했고, 일어나서 출근하듯 어딘가를 가는 루틴도 만들었다. 20대부터 읽었던 경제바카라을 다시 꺼내 들었고, 그렇게 모른 척했던 주식도 시작했다. 계속 회사를 다녔다면 안정적인 수입 때문에 아마 시작하지 않았을 일들이다. 돌이켜보면 일을 쉬었던 2년은 커리어가 멈춘 시간이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방식을 다시 만들어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런데도 마음 한편의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다. ‘내가 다시 내가 하던 일을 할 수 있을까?’ ‘회사생활을 다시 잘할 수 있을까?’ 그 질문을 안고 다시 취업을 했다.
처음부터 내가 원했던 역할은 아니었다
당근을 보다가 청소 업무 공고를 보게 됐다. 개인적으로 청소를 하면 스트레스가 풀리고, 꼼꼼한 편이고 손도 빠르다. 무엇보다 내가 맡은 일을 하면 그 일에 집중해서 끝낼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한번 해볼까?’ 입사지원서를 넣었고 면접을 봤다. 그렇게 서초여성일자리주식회사에 들어왔다. 그런데 막상 들어와 보니 내가 지원했던 청소 업무가 아니라 관리자의 역할을 맡게 됐다.
해보지 않은 행정업무가 많았다. 처음에는 벌컥 겁이 났다. ‘아, 그만둬야겠다.’ 그 생각으로 일주일을 다니고, 이주일을 다니고, 삼주일을 다녔다. 그런데 어느 순간 3개월이 지나 있었다. 원래 적응기가 절실히 필요한 사람이다. 적응만 하면 내 페이스대로 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렇게 조금씩 나의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주어진 일과 내가 만들 일을 동시에 끌고 가는 사람
회사에서 일을 하다 보면 지금 당장 해야 하는 일이 있다. 그런데 나는 늘 그다음도 생각한다. 지금 주어진 업무를 처리하는 것과 앞으로 필요한 일을 만드는 것. 둘 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문제는 둘을 항상 같이 끌고 간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퍼진다. 무기력과 무력감이 다시 올라오고, 심신이 지쳐 그냥 다 놓고 싶은 순간도 온다.
그래서 요즘은 그 둘 사이에서 적당한 균형을 찾으려고 한다. 그런데 일이란 게 참 이상하다. 하다 보면 욕심이 생긴다. 잘하고 싶어진다. 지금 달려야 할 것 같아진다. 매번 같은 굴레다. 그래도 어쨌거나 저스트 고다. 지금 못하면 계속 못하게 되는 것도 일이니까.
‘이것도 해볼까요?’에서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다시 일을 시작하면서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제안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운영하고 있는 사업 중 카페와 늘풀 브랜드의 핵심 정체성과 커뮤니케이션 방향을 잡아보는 일도 시작했다. 브랜드 브리프를 만들었다. 뭔가 착착착 맞아떨어졌다. 내가 생각했던 방향을 잘 들어주고, 실제 업무에 어떻게든 반영해주려고 했다. 나에게는 꽤 값진 팀원을 만난 것 같았다.
카페 메뉴 디자인도 조금 아쉬웠다. 그래서 직접 촬영을 하고 포스터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한 방향대로 결과물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그리고 그다음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경력단절여성의 이야기를 기록해보기로 했다
마침 공공클린 근로자 중 정년퇴직을 앞둔 분이 계셨다. 처음에는 그분의 마지막 온라인 게임생활을 기록해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한 사람의 마지막 온라인 게임생활을 함께 마무리하는 회사. 그것을 아카이브로 남겨도 의미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야기를 나누면서 방향이 바뀌었다. 우리 회사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마지막’이 아니라 ‘다시 시작’에 가까웠다. 경력단절여성이 다시 일을 시작하고, 자신의 커리어를 이어가는 이야기. 그렇다면 한 사람의 마지막을 기록하기보다 지금 다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것이 더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SWEC Career Interview를 기획했다.
아이디어를 프로젝트로 만드는 과정
먼저 기획 목적을 정리했다. 단순한 직원 인터뷰가 아니라, 경력단절을 경험하고 다시 일을 시작한 사람들의 실제 이야기를 기록하는 것. 그리고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에게 하나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 인터뷰 질문 10개를 만들었다. 개인의 경력부터 일을 쉬게 된 이유, 다시 일을 시작한 계기, 새로운 일에 적응하는 과정, 현재의 고민과 앞으로의 계획까지. 그다음 프로젝트 진행 순서를 만들었다. 인터뷰 대상자 확인. 개인 의사 확인. 인터뷰 진행. 촬영. 원고 작성과 에디팅. 디자인. 콘텐츠 제작. 채널 업로드.
처음에는 결과물을 세 가지로 생각했다. 블로그 포스팅. 카드뉴스. 제안서에 활용할 1페이지 콘텐츠. 그런데 첫 번째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이 이야기를 카드뉴스 몇 장으로 끝내고 싶지 않았다. 한 사람의 이야기를 조금 더 제대로 기록하고 싶었다. 그래서 첫 번째 결과물은 커버를 포함한 4페이지의 카지노 게임 형식으로 제작했다.
기획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끝까지 만드는 사람
이번 프로젝트에서 내가 맡은 역할은 꽤 많다. 기획안을 만들고, 제안서를 작성하고, 프로젝트 일정을 잡고, 인터뷰 질문을 만들고, 직접 인터뷰를 진행하고, 사진을 찍고, 이야기를 글로 정리하고, 디자인하고, 최종 결과물을 만들고,
채널에 업로드한다. 누군가는 이것을 여러 직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기획자. 에디터. 포토그래퍼. 디자이너. 마케터. 콘텐츠 디렉터. 그런데 나는 이것을 하나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디어를 실제 결과물로 만드는 일. 내가 지금 다시 만들어가고 싶은 커리어도 어쩌면 그 지점에 있다.
첫 번째 인터뷰에서 알게 된 것
첫 번째 인터뷰에 응해주신 매니저님께서 좋은 경험이었다고 말씀해주셨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는 사람에게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 말을 듣고 이 프로젝트를 계속해야겠다는 생각이 더 확실해졌다. 처음에는 회사 콘텐츠를 하나 만들어보자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사람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기록해보니 조금 달랐다. 한 사람의 이야기가 회사가 어떤 조직인지 보여주는 콘텐츠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나도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이 될 수도 있었다. 역시 이야기는 진짜가 통한다.
다시 일한다는 것
경력단절 이후 다시 일하는 것은 단순히 온라인 게임을 구하는 것과 조금 다른 것 같다. 내가 예전에 할 수 있었던 일을 다시 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하고, 지금의 나에게 어떤 일이 맞는지 다시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나는 예전의 나로 돌아가고 싶은 것은 아니다. 2년 동안 쉬면서 달라진 것도 많고, 새롭게 생긴 관심도 많다. 블로그를 하면서 콘텐츠를 계속 만들었고, 브랜드와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했고, 디자인을 다시 바라봤다. 그 시간이 지금의 나에게 연결되고 있다. 회사에 들어와서도 단순히 주어진 업무만 하는 것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발견하고, 제안하고, 실제 프로젝트로 만들어가는 것이 재미있다. 어쩌면 커리어를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과거의 커리어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나에게 맞는 새로운 역할을 만들어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계속해보기로 했다
첫 번째 인터뷰를 끝내고 나니 앞으로 진행될 인터뷰가 기대된다. 앞으로 한 사람씩 이야기를 기록할 예정이다. 그리고 각각의 이야기를 블로그 콘텐츠로 만들고, 카드뉴스로 확장하고, 필요하다면 제안서와 소개자료에도 활용할 수 있도록 콘텐츠를 축적해보려고 한다. 하나의 인터뷰가 하나의 콘텐츠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Interview → Editorial → Blog → Card News → Archive로 이어지는 하나의 콘텐츠 시스템을 만들어보고 싶다.
이미 머릿속에는 어떻게 진행되고 어떤 결과물로 이어질지 꽤 선명하게 그려져 있다. 잘 될 것 같다. 무엇보다 첫 번째 인터뷰를 끝내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것이었다. ‘이건 하길 너무 잘했다.’ 2년 동안 일을 쉬었던 사람이 다시 회사에 들어와 다른 사람의 커리어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꽤 재미있는 일의 연결이다. 나는 아직도 내가 어떤 일을 가장 잘하는 사람인지 계속 알아가는 중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조금 알 것 같다. 나는 생각을 그냥 생각으로 두기보다, 그것을 기획하고 실제 결과물로 만드는 일을 좋아한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발견해서 그것을 콘텐츠로 만들어 세상에 꺼내놓는 일을 계속하고 싶다. 그래서 그냥 하는 거다. 지금 못하면 계속 못하게 되는 것도 일이니까.
Content & Brand Director
Jeongyoon Lee (©antyoon)
Project Information
Organization : 서초여성일자리주식회사
Project : SWEC Career Interview
Period : 2026.08 ~
Role : End-to-End Content Direction & Production
Scope : Planning · Interview · Editorial · Photography · Design · Production · Channel Management
Tools : Adobe Photoshop · Adobe Illustrat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