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까지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만남까지 부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 그리고 우리는 사람과의 만남으로 이루어지는 슬롯 속에서 살아간다.
만남.
'만나다'는 사람을 마주 대하는 일이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누군가를 만나고, 또 헤어지며 살아간다.
'만남'이라는 두 글자를 들으면 사람마다 떠오르는 의미가 다를 것이다.
그렇다면 나에게 만남은 어떤 의미일까?
아프다.
.
.
.
이 세 글자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나에게 만남은 아프고,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천륜이라는 만남조차 나에게는 아픔이고 슬픔이었다.
이 문장을 쓰는 지금도 한 가지 질문이 머릿속을 맴돈다.
왜 나의 만남은 아픔의 연속이었을까?
자연스럽게 나라는 사람을 돌아보게 된다.
내가 어떤 사람이었기에,
나는 어떻게 살아왔기에,
그동안의 만남은 나에게 아픔으로 남았을까.
분명 만남은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그런데 그 만남을 부정당하는 순간,
그 만남으로 이루어진 나의 시간과 삶까지 부정당하는 것은 아닐까.
아무리 관계가 힘들어졌더라도 그 시작까지 부정당하고 싶지는 않다.
그 순간만큼은 서로 진심이었고,
행복했던 것도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아플 수 있다.
하지만 그때는 그때였고, 지금은 지금이다.
관계가 끝났다고 해서 처음의 진심까지 거짓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늘 어떤 이가 말했다.
"둘은 만나지 말아야 하는 사람들이 만난 것 같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리고 몇 시간이 지난 지금,
비로소 내 마음을 정리하고 싶어 글을 쓴다.
글을 쓰면 아프다.
쓰는 동안 마음이 저리고,
몇 번이고 눈물이 난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는 이유는 글의 끝에서 나는 늘 용서를 만나기 때문이다.
나를 아프게 했던 시간을 써 내려가다 보면,
왜 내가 아팠는지,
상대는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를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시간을 견디며 살아낸 나를 만나게 된다.
그래서 나는 가슴이 찢어질 듯한 시간을 지나면서도 계속 글을 쓴다.
이 글을 시작으로,
'만나지 말아야 했던 만남'이라고 말하는 그 관계를 기억하려 한다.
그리고 그 만남의 끝이 어떻게 남게 될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내 마음속에서는 원망으로만 남겨 두고 싶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