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쌓아 밀어 올리는 힘
집에 식물 몇 가지가 있다. 아비스, 신홀리페페, 보석금전수, 핑크싱고니움. 초심자가 키우기 쉽다는 식물들이다. 여전히 잘 자라고 있다. (관련 글: https://fishingproductfr.com/@anewmoon/434)
그중에 보석금전수는 금전수 품종 중 많이 자라지 않는다고 해서 데려온 식물이었다. 초보 식집사여서 너무 크게 자라는 식물은 부담스러웠고, 급수 주기가 길어서 키우기 쉽다는 말에 들여왔다. 통통한 줄기에서 양쪽으로 가지런히 나온 잎이 반질반질 윤기가 나는 게 예쁘기도 했고.
순서로 치면 보석금전수가 제일 먼저 왔고, 그다음 다른 화분들을 들여서 같이 키우기 시작했다. 다른 식물들은 목말라하는 게 금세 눈에 보이고, 물을 주면 잎이 팽팽해지는 게 바로 눈에 보였다. 끊임없이 새 잎을 내면서 생동감 있게 자랐다. 반면 금전수는 마르지도, 무르지도 않고 노상 그 상태였다. 금전수만 볼 때는 몰랐는데 다른 화분들과 함께 있으니 많이 자라지 않는다고 한 금전수는 흡사 대답 없는 아이 같았다. 변함없는 모습이 좋을 줄 알았는데 재미가 없었다. 잎의 윤기가 여전하여 예뻤지만 다른 식물들처럼 열심히 새 잎을 피우는 성장의 모습이 없어 아쉬웠다.
그러던 중 최근에 보석금전수 화분에서 새끼손가락 같은 연두색 잎이 쏙 올라와 있는 것을 보았다.
어머나!
정말 반가운 모습이었다. 검붉은 줄기와 짙은 초록색 잎 사이에 샛연두의 새순이라니!
놀람과 기쁨, 그 예쁨을 눈으로 감상하며 쓰담쓰담해 주고는 사진 찍는 걸 잊어버렸다. 며칠 뒤 '아, 사진 찍을걸' 했을 땐 그 새순이 이미 이렇게나 커버린 후였다.
한참을 미동 없이 지냈던 금전수는 가만히 있던 게 아니었다. 겉으론 움직임이 없었지만 흙속에서 열심히 양분을 모아 새순을 내는데 애를 썼다. 오랜 시간을 기다려 밖으로 새순을 내밀었고, 그렇게 올라온 새순은 놀라울 만큼 빠르게 자랐다.
보석금전수의 새순을 보면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성장'이란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무언가를 이뤄내려면 그것에 시간과 에너지가 쌓여야 한다.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듯 생기는 결과란 없는 것이다. 전혀 성장의 티가 나지 않아 재미없다고 여기는 내게 보란 듯이 새잎을 내고 며칠 만에 힘차게 밀어 올린 이 녀석이 멋있기까지 했다. 그래, 무엇이든 보이지 않는 시간을 쌓고 견디는 것이 있는 거구나. 그 시간과 에너지가 쌓이고 쌓이다 보면 언젠가 새순이 되어 피어오르는 거구나.
투여한 시간과 노력만큼 결과가 나오는 것은 당연한 얘기다. 그러나 빠르게 변화하고 바쁜 시대를 살아가다 보면 잊는다. 아니 잊고 싶어진다. 그렇게 무언가에 오랜 시간과 에너지를 쓰며 노력하는 것이 맞나 의심이 든다. 도대체 결과는 언제쯤 얻어지는 걸까. 오래 지속한다고 정말 달라지기는 할까. 이런 생각들을 하는 사이 지속할 동력은 떨어진다. 그렇게 하다 말다의 시간이 반복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되는 것 같다.
보석금전수처럼 그렇게 진득하게 삶을 살아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고자 한 일을 의심 없이 그저 오늘도 하고, 내일도 하고, 시도하고, 개선하면서. 나는 지금 흙 속에 있고, 그 속에서 자양분을 열심히 모으는 중이라고 스스로를 격려하면서 말이다.
끝을 모르더라도 내가 바라는 걸 꿋꿋하게 조금씩 해나가다 보면 언젠가, 어딘가에 나의 새순을 밀어 올리는 날이 오지 않을까? 어둡고 막막한 흙속에 있다고 가만히 있지 말자. 그럴수록 꿈틀꿈틀 내 멋대로 계속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