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에주 전투(Battle of Liège)는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자마자 벌어진 초기 전투로, 1914년 8월 4~16일 독일군이 벨기에 동부의 요새도시 리에주(Liège)를 공격한 전투입니다.
슐리펜–몰트케 계획이 실제 전쟁에서
처음 부딪힌 장애물이라고 보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독일은 프랑스 국경의 강력한 요새선을 정면으로
돌파하기보다 벨기에를 거쳐 프랑스 북부로
우회하려 했습니다.
특히 몰트케는 네덜란드를 침공 대상에서 빼면서
독일군의 진격로가 더 좁아졌고,
그 결과 리에주의 도로·철도망을 신속하게 확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해졌습니다.
#Battle_of_Liege
리에주는 도시를 중심으로 12개의 현대식 요새가
고리처럼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독일군은 처음에는 보병의 기습공격으로
요새 사이를 뚫으려 했고, 에리히 루덴도르프도
이 공격에 참여해 시내 진입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독일군은 비교적 빠르게 리에주 시내를 장악했지만,
주변 요새들은 계속 저항했습니다.
그래서 독일은 일반 야포로는 파괴하기 어려운 요새를 처리하기 위해 305mm 오스트리아-헝가리제 중박격포와 420mm ‘빅 베르타’ 초중포 같은 거대한 공성포를 투입했습니다.
요새들은 집중 포격을 견디지 못하고 차례로 함락됐고, 8월 16일경 리에주 요새군의 저항이
사실상 끝났습니다.
전략적으로 보면 결과는 독일의 승리였습니다.
다만 벨기에군의 저항 때문에 독일군의 진격 일정에
차질이 생겼고, 무엇보다 독일이 벨기에의 중립을 침해하면서 영국의 대독 참전 명분이 강화되었습니다.
그러나 흔히 말하는 것처럼 “리에주 때문에
슐리펜 계획이 완전히 무너졌다”고 보는 것은
과장입니다.
독일군의 최종 실패는 이후의 병력 배치, 보급 문제,
프랑스·영국군의 대응, 그리고 마른 전투까지
함께 봐야 합니다.
한 줄로 정리하면:
리에주 전투 = 슐리펜–몰트케 계획의 서부 대공세가
시작되자마자 만난 첫 번째 강력한 저항이며,
'요새 vs 초중포’라는 1차대전의 특징을
처음 극적으로 보여준 전투입니다.
원하시면 이어서 “리에주 전투 독일군의 벨기에 진격 몽스 전투 마른 전투”까지 한 흐름으로 설명해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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