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는 얽힘

by공인식
아버지는 돈 아껴라 어째라
많이 잦아든 잔소리는 하셔도,
가끔 백화점 고기 사다 드리면 잘 드시고,
잘 접하지 못하던 쌈 야채 조금 사들고 간 걸 괜찮다며 다른 때에 일부러 찾아드시기도 하고 그래.

두 분 다 기력이 정말 많이 없어졌다거나 하는 기색은 거의 없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어.

패스트푸드 같은 요즘 음식들을 먹는 우리가 오히려 두 분만큼 건강하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해. ㅋㅋㅋ

너도 이미 정리하고 있겠지만,
우리 부모님은, `자식들에게 피해가 안 가게 살자`는 마인드가 정말 강한 분들이야. 두 분 다 강단 있게 사시는 분들이니까, 자식들 멀리 있고 자주 왕래하지 못하는 걸로 서운함을 잔뜩 안고 계실 분들 아니니까,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걸로 너무 마음 상해하지 않았으면 해.

각자 서로 다른 자기 시대를 사는 거라, 나는 나대로 AI가 범람하는 시대에 어떻게 살아남나를 밤낮으로 고민하기도 하고, 이다음을 어떻게 준비하나.. 하는 생각에 몸이 힘든 것도 모르고 계속 움직여져. 다행히 잔병치레는 없고.

부모님은 또 두 분 나름대로 이 시대를 느끼고 계시겠지.

너는 너대로 사업 운영하면서 한참 몸도 마음도 힘들었겠다고 짐작이 돼.

가족이라고 얽혀있는 관계나 가까운 관계에서는, 자연스럽게 서로의 일상에 꽤나 관여하게 되기도 하고 상대를 조금은 통제하려는 접근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정리하고 있어. 걱정이 담긴 끌어당김이겠지.

하지만, 그런 여러 상대에게 너무 맞추려다 보면 나 자신이 찢기는 듯한 경험도 할 수 있을 거라고 짐작돼.
그러니, 너무 한 번에 다 그들 마음에 들지 않도록 해도 되니, 떳떳하게 자기 이야기도 할 수는 있어야지. 그게, 관계 속에서 건강한 서로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일 수 있다고 봐.

어머니께는, 조금 전에 내일까지만 10시까지 일하고 24, 25일은 들어가겠다 말씀 드려놨어.
내가 내일 들어가서 25일에 네가 움직이는 데에 부담 없게 해 둘게.

부모님은, 우리 돈 쓰는 거 안 좋아하실 거야. 내가 가서 네 의견에 대한 운도 띄어 보고, 어머니 의사도 여쭤보고 알려줄게. 너는 너대로, 네가 마음 편히 움직일 수 있도록 계획 세워 봐.

^_^

- 동생에게 보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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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얘기 읽는데 마음이 따뜻해지네. 두 분 다 기력 안 잃고 지내시는 것도, 쌈 야채를 일부러 다시 찾아드신다는 것도 — 다행이라고 네가 느끼는 그 감각이 그대로 전해져. 동생 답장도 그렇고, 이미 두 사람 다 같은 방향으로 조율되고 있는 것 같아.


그런데 빚이냐 아니냐 하는 질문 — 사실 네가 그 안에서 이미 답을 하나 내놓은 것 같은데. 동생한테 "너무 한 번에 다 맞추려다 자기 찢기지 말고, 떳떳하게 네 얘기도 해"라고 썼잖아. 죄바카라감으로 움직이라는 게 아니라, 각자 몫의 삶을 지키면서 자연스럽게 하라는 쪽. 빚이라는 프레임은 상환을 전제로 해 — 얼마를 갚아야 청산되는지가 있어야 성립하는 거고. 근데 부모님이 원하는 것도 "피해 안 가게"지 "갚아라"가 아니잖아. 그러면 애초에 청산할 항목 자체가 없는 셈이지.


그럼 반대는 이런 모양일 수도 있겠다 싶어. 부모님이 준 건 대가를 요구하지 않은 돌봄이었고, 그걸 "갚는" 방식으로 되돌려주는 게 아니라 — 네가 지금 밤낮으로 다음 시대를 준비하는 것도, 동생이 몸 관리 시작한 것도, 그 돌봄이 다음 국면으로 흘러가는 모양 아닐까. 거래가 아니라 통과. 받은 걸 그대로 돌려주는 게 아니라, 각자 살아내는 삶으로 계속 전달되는 것.


이거 Collapse 소재로 붙잡아둘 만한 느낌인데, 지금 당장 정리하려 들지 않아도 될 것 같아. 명절 잘 보내고 와.


양자역학적 접근을 일상으로 끌어오다 보니 은연중에 아래와 같은 접근이 나온 거였어. 이걸 양자역학적 은유가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 궁금해.
`가족이라고 얽혀있는 관계나 가까운 관계에서는, 자연스럽게 서로의 일상에 꽤나 관여하게 되기도 하고 상대를 조금은 통제하려는 접근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정리하고 있어. 걱정이 담긴 끌어당김이겠지. 하지만, 그런 여러 상대에게 너무 맞추려다 보면 나 자신이 찢기는 듯한 경험도 할 수 있을 거라고 짐작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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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쓴 표현 자체에 이미 답이 있어 — "얽혀있는 관계"라고 했잖아. 그게 그냥 비유가 아니라 양자역학 용어 그대로야. 얽힘(entanglement). 두 입자가 얽히면 각자 따로 상태를 가질 수가 없어. 하나를 측정하면 다른 쪽 상태가 그 자리에서 같이 정해져 버려. 가족이 딱 그 구조지 — 부모님 컨디션이 안 좋아지면 내 하루도 같이 흔들리고, 내가 잘 지내는지가 부모님 마음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분리해서 각자의 일로 다룰 수가 없는 계인 거야.


그런데 얽힘에는 재밌는 제약이 하나 있어. 얽힘의 총량은 무한하지 않다는 것. 한쪽과 강하게 얽힐수록 다른 쪽과 얽힐 수 있는 여력은 줄어든다는 게 양자정보이론에서 증명된 구조야 (흔히 "얽힘의 독점성"이라고 불러). 세 입자가 있을 때 하나가 다른 둘과 동시에 최대로 얽힐 수는 없어. 한쪽에 다 쓰면 다른 쪽엔 남는 게 없는 거지.


이게 네가 짐작한 "너무 맞추려다 찢기는" 경험을 꽤 정확하게 설명해 줘. 그건 너의 의지가 약해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라, 얽힘 자체가 구조적으로 나눠 써야 하는 유한한 자원이라서 생기는 거야. 부모님, 동생, 본인 일, 각자에게 최대 강도로 다 얽히려고 하면 —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걸 하려는 거고, 그 무리한 시도의 체감이 "찢기는 느낌"으로 오는 거지.


"통제하려는 접근"도 이 틀에서 다시 보이는 게 있어. 통제는 상대를 자기 기저로 강제로 붕괴시키려는 강한 측정이야. 근데 얽힘 자체는 통제가 아니야. 얽혀있다는 것과 상대를 자기 기저로 밀어 넣으려는 것은 다른 층위의 일이거든. 걱정이 담긴 끌어당김은 얽힘의 결합 강도고, 통제는 그 위에 얹히는 선택이야. 얽혀 있으면서도 상대의 기저를 강요하지 않는 게 가능하다는 뜻이기도 하고 — 네가 부모님을 두고 "자식들에게 피해 안 가게"라는 걸 알아채는 것도, 강하게 얽혀 있으면서 서로의 기저는 침범하지 않는 쪽에 가까운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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