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저의 충돌

by공인식
(...)
"국민들에게 '인간도 아닌 사람'으로 느껴지는 건 — 어쩌면 그 붕괴가 너무 완전했기 때문일 수 있어. 중첩이 남아있는 사람은 어딘가 인간으로 읽히거든. 근데 완전히 붕괴된 사람은, 오히려 불가해하게 느껴지는 면이 있어." 아.. 이건 슬롯와 인간을 바라보는 너무 정확한 분석처럼 다가왔어. 사람들이 '범죄자'라고 인식하는 사람은 그렇게 붕괴된 상태로 바뀌지 않을 거라는 전제가 계속 깔리거든. 갱생 가능성이 보인다는 건 붕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인데, 그걸.. 대개의 사람들이 '한번 붕괴된 것은 중첩으로 돌아가기 불가능'하다고 정리를 내린다는 거지. 그런 접근을 가진 대개의 사람들도 그런 방향으로 이미 붕괴가 된 상태인데 말이야. 자기 기저로만 측정 대상을 보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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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기저로만 측정 대상을 보는 거야" — 이게 핵심이네.


판단하는 사람도 이미 붕괴된 상태라는 것. 그래서 상대의 중첩 가능성이 안 보이는 거고. 붕괴된 기저로는 중첩을 측정할 수가 없으니까.


갱생 담론이 계속 겉돌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 같아. "저 사람이 변할 수 있는가"를 논하는 사람들이, 이미 "한번 붕괴는 영구 붕괴"라는 기저로 측정하고 있으면 — 그 논의 자체가 결론을 전제하고 시작하는 거잖아.


그리고 그게 사법 시스템 전체에 깔린 측정 기저이기도 하고.


'왜 형량이 저것밖에 안돼?'라는 접근이 나올 수 있는 대한민국의 측정 기저는 어떻게 볼 수 있을까? 미국의 판단과 확연히 다르잖아, 그래서 국민들이 판사를 이상하다 하는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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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질문인데 — 이건 측정 기저가 다른 게 아니라, 기저 자체가 다른 시스템에서 온 거야.


미국은 "행위의 총합"으로 측정해. 죄목 하나하나가 독립적으로 형량을 가지고, 그게 더해져. 경로 적분처럼 — 각 행위의 진폭이 전부 합산되는 구조.


한국은 "인격의 현재 상태"로 측정하는 경향이 있어. 행위의 총합보다, 지금 이 사람이 어떤 상태인가. 반성했는가, 슬롯적 맥락이 있는가. 그게 최종 형량을 결정하는 데 훨씬 크게 작용해.


국민들이 "왜 저것밖에"라고 느끼는 건 — 미디어를 통해 미국식 기저에 많이 노출돼 있기 때문이기도 해. 행위의 총합으로 계산하면 말이 안 되는 숫자가, 인격 측정 기저로는 나올 수 있거든.


판사를 이상하다고 하는 건 — 사실 측정 기저 충돌이야. 판사는 법체계의 기저로 측정하고, 국민은 다른 기저로 측정하는데, 서로 그 차이를 인식 못 하는 상태.


어느 기저가 맞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 기저가 다르다는 걸 모른 채 같은 대상을 보고 있다는 게 문제인 거지.


결국 사람이나 관계를 대하는 방식이 법을 운용하는 데에도 영향을 미치는 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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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법이 중립적 시스템처럼 보이지만 — 결국 그 법을 해석하고 운용하는 사람들의 측정 기저가 들어가는 거잖아.


한국 슬롯가 관계 중심으로 작동해 온 문화적 맥락이 — 법정에서도 "이 사람이 지금 어떤 상태인가"를 더 무겁게 보는 기저로 이어진 거고. 그게 유교적 맥락이랑도 닿아 있어. 행위보다 인격, 결과보다 태도.


근데 흥미로운 건 — 그 기저가 일상 관계에서는 오히려 관대함으로 작동하다가, 법정에서 나오면 국민들한테 "봐주기"로 읽힌다는 거야. 같은 기저인데 맥락에 따라 전혀 다른 측정값으로 느껴지는 거지.


시스템은 사람이 만들고, 사람은 문화가 만들고, 문화는 측정 기저의 집합체니까 — 법도 결국 그 연장선에 있는 거야.


관계 중심의 대한민국에서 그런 오락가락하는 판례들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은 판단 기준 자체가 오락가락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런 관계 중심의 측정 기저가 반영된 의외로 논리적인 결과일 수 있겠네. 그걸 미국처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할 수도 있고, 어느 누군가가 이야기한 것처럼 범죄자를 구속할 수 있는 시설의 제약도 문제일 수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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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의외로 논리적인 결과"가 정확한 표현이야.


오락가락처럼 보이는 게 — 사실 관계 변수가 매번 다르기 때문에 나오는 거잖아. 행위 기반 시스템은 변수가 적어서 일관성이 높게 보이고, 관계 기반 시스템은 변수가 많아서 불일치처럼 보이는 거고. 근데 내부 논리는 있는 거지.


미국식으로 바꾸는 게 불가능할 수 있다는 것도 — 법조문을 바꾸는 게 아니라 측정 기저를 바꾸는 문제니까. 그건 문화를 바꾸는 거랑 같은 난이도야.


시설 제약 이야기는 또 다른 레이어인데 — 그건 시스템이 이미 수용 가능한 붕괴의 수를 전제하고 설계됐다는 거잖아. 형량이 짧을 수밖에 없는 물리적 이유가 따로 있는 거고.


결국 국민들이 "왜 저것밖에"라고 느끼는 분노는 정당한데 — 그 분노가 향하는 곳이 판사 개인이 되는 순간, 진짜 문제는 안 보이게 되는 거야. 기저 충돌을 기저 충돌로 못 보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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